오늘은 다시 홀로 운행을 준비하며 시작해봅니다.
9시 15분,
"울 동네가 저 위짝 동네보다 더 많이 팔아주지?" 하시는 어르신.
"원래 있는 사람들이 더 안 사줘~ 우리는 가난한 동네, 위짝은 있는 동네~" 하며 허허 웃으십니다.
한창 물건 팔고 가려던 길, 윗집 어르신이
"커피 한 잔 하고가~ 물 끓여놨을겡~" 하십니다.
어르신 토방에 앉아 넓은 풍경보며 기다리고 있던 찰나, 아랫집 어르신도 커피 두잔하고 요구르트 하나 갖고 오십니다.
"얼씨구? " 하시며 주시는 커피.
덕분에 커피 2잔 마십니다. 커피 대접 한다고 커피 잔만 달랑 들고오는 것이 아니라, 대접에 담아 갖고 오시는 두 어르신의 모습을 보며, 작더라도 대접한다는 것은 이렇게 해야하는 것임을 배워봅니다.
9시 25분,
"울 망구가 계란 한 판 샀다 던디, 월마여?" 하시는 어르신.
지나가는 점빵차 붙잡고 계란 외상값 지불해주십니다. 그러곤 "애간장도 하나 줘바~" 하시고 가격을 들으셨는데,
어르신께서 깜짝 놀라십니다. 간장 가격이 만원이 넘는 줄 모르셨었나봅니다.
갖고 온 2만원 모두 다 주시는 어르신. 시장 갈일이 드물다 보니 물가사정 파악하는 것이 녹록치 않습니다. 그래서 이따금씩 물건 살 때면 어르신들은 흔히 다시 물어봅니다.
"또 올랐네?"
하지만 우리 가격은 그대로였음을 말씀드립니다. 어르신들의 기억은 몇년전 자신이 마지막으로 샀던 그 물건가의 가격일테니 말입니다.
9시 35분,
어르신이 저 멀리서 손짓하십니다.
"계란 두 판하고, 또... 음 까먹엇네." 하시는 어르신.
오늘따라 계란이 많이 나갑니다. 무슨 일인가 싶었더니 돌아오는 연휴, 자식들 손자들 해주려고 계란을 많이 사십니다.
"손주들한테 후라이라도 해줘야지" 하시는 어르신.
손주들 입맛이 어르신들과 같으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다보니 뭐라도 헤먹이시려 계란을 많이 사십니다. 정작 본인들은 한 판 사시면 한 달도 넘게 드시면서, 손주들만 오면 1~2판은 기본으로사시는 어르신들. 어르신들에겐 계란은 손주와 자식들을 위한 최애 식재료라고 생각이 됩니다.
9시 50분,
오늘도 어르신 댁에 물건 갖고 가려고 이것저것 챙겨봅니다. 어르신이 좋아하실만한 것, 잘 드실만한 것, 잘 넘길만한것 중심으로 챙깁니다.
어르신 댁에 가니 오늘도 누워계시는 어르신. 요근래 1달째입니다. 건강상에 이상이 있으신건지. 어르신께 가도 괜찮은건지 여쭤보니 오늘은 그냥 가라며 손짓만 하십니다. 못보던 의료용 침상에 누워계시는 어르신. 건강상태가 더 안좋아지신것 같아 걱정이네요.
10시,
"점빵차 갔나? 내가 그리로 올라갈까?" 연락 주시는 부녀회장님.
내려가는 길이라 가는길에 들린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울집은 음료수 이런거 잘 안사먹어~ 막 배즙, 도라지즙 이런거만 먹다보니 사놔도 잘 안먹네~"
"콩나물하고, 두부하고....호박 있나?" 하시는 회장님.
마침 애호박 갖고 왔었는데, 하나 사가십니다. 원하시는 것을 모두 사셔서 기분 좋아지신것 같은 회장님.
점빵차 지나갈 때 알고 미리 전화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10시 20분,
매주 소주 2병씩 사시는 어르신. 근 3주째 공병 갯수가 2병 더 늘어났습니다.
지난주 입원하신 이후로 어르신 공병 갯수가 늘었습니다. 어디서 사시는건지 알 방법은 없지만, 약속한 1주일에 2병이 2배나 늘어나는 것은 큰 영향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어르신께 여쭤보니,
"자녀가 사주는 거니깐 괜찮아~" 하시는 어르신.
어르신 본인도 그 약속을 알고 계시는듯 싶었습니다. 일단 알겠다고하며 어르신께 소주 2병 드리고 돌아왔습니다.
10시 30분,
오늘도 돼지고기 사러 나오신 어르신.
"어르신, 지난번에 사갖고 온 것보다 양이 좀 더 줄었어요. " 하고 말씀드리니,
알겠다고하시며 돼지고기 갖고 가시는 어르신. 주문만 미리 하신다면 돼지고기도 받을 수 있습니다.
10시 45분,
집 마당에 모여계시는 어르신들. 한쪽에는 요양보호사가 콩국수를 맛있게 드시고 계셨습니다.
무슨일인가 가봤더니, 양파를 모두 다 엎다는 어르신.
"올해 양파 망했어~ 상태가 영 아니네~ 다 엎어분댜~" 하십니다.
일조량이 부족하고 비가 많이와서 속이 차야하는데, 속이 차지 않은 양파. 이상기후와 관련 있겠지요.
앞으로 더욱 날씨가 이상해질텐데 어르신들의 농업이 어떻게 될지 걱정을 해봅니다.
11시 10분,
회관에 밥 먹는 날인가봅니다. 어르신들 모여계십니다. 어르신들께서도 계란을 주문하십니다.
그러던 찰나 뒤에 앉아계시던 어르신.
"나 외상값 안갖고 왔는디, 어쩐담, 아짐 나 돈 좀 빌려줘보소~" 하십니다.
담에 받으면 되지요~ 말씀드리며,
"외상값이 이어져야 담에 얼굴 한 번 또 보지요~" 하니 어르신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십니다.
돈 못받을 걱정하는 것 보다 어르신 못볼 수 있다는 걱정이 더 먼저입니다.
기억 잘하시고 또 건강하게 외상값 주시러 오는 어르신의 모습 볼 수 있길 희망합니다.
11시 45분,
"나 많이 기다렸소?" 하시는 어머님.
항상 오전 마지막 코스입니다. 집 대문 앞 나무 그늘 아래 차를 세워놓고 기다립니다.
"어머님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어머님 얼굴 봐야 갑니다~" 말씀드립니다.
어머님도 좋아하시며, 필요한것들 다 사십니다.
어르신들 덕분에 오전도 즐겁게 지나갔습니다.
13시 30분,
"하~!!!!" "후~!!!!"
소리가 쩌렁쩌렁합니다. 무슨일인가 싶었더니 우리 마을 최고 스타, 건강체조 강사님이 오셔서 하고 계셨습니다.
어르신들 얼굴에 생기가 돕니다. 곳곳에서 "하~!!!" 하시며 소리 치십니다.
에너지를 발산하니 어르신들도 좋아라하십니다.
"저 우리 김강선 선생님께 고맙다고 해주게나~! 덕분에 이렇게 즐거운 시간 보내지 않는가?" 하시며 웃는 어르신들.
회관에 많이 모여계시지만 밝은 에너지가 생동하기 어렵기에, 즐거운 에너지가 생동할 수 있도록 어르신들에게 문화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그덕에 어르신들은 1주일에 1번이지만, 그 1번이라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실 수 있으십니다.
14시 10분,
웃으시며 토방에서 나오시는 어르신 부부.
"지난번에 놓고 갔더만~ 아휴~ 얼마나 고마운지 몰러~ 내가 나갔다가 술을 못받아서 어쩌나 싶었어~~ 고마워~~"
매주마다 반주 삼아 드시는 어르신 부부. 가끔은 술을 매주 이렇게 드시는 것이 걱정도 되지만, 이것이 어르신 부부의 또 다른 낙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14시 30분,
부녀회장님 급히 연락오셨습니다.
"아휴, 내가 밭에 일하러 나왔는데, 울 회관에 두부 8모좀 갖다놔줄수 있는감? 담에 줄께~" 하시는 회장님.
안될게 또 어딧겠습니까~ 바로 받고 회관 냉장고 안에 두부 8모 갖다 놓고 출발합니다.
14시 45분,
늘 외상을 값고 외상을 또 하시는 우리 어르신. 당장 필요한 것들이 있으면서도 외상값은 내야하는 심적부담이라 그러시겠지요. 항상 올 때마다 5만원씩 값고 외상을 더 하시곤 합니다. 그러면서, "내가 울 동네서 젤 많이 갈아주지?" 하시는 어르신.
그 많이 팔아주는 것이 어르신들에게는 누군가에게 자신이 큰 도움이 되는 존재라는 것을 인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이 됩니다.
15시 20분,
"고추장 있어?" 하시는 어르신.
하필 앞서 고추장이 팔려서 남은것이 없는 고추장. 어르신께 매장에서 갖다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매장와서 바보니, 없는 고추장.
이를 어찌하나 싶어 어르신께 말씀드리니,
"니미 염병할, 아 울 손주들 온다해서 만들어 줄려고 하는데, 안되~~ " 하십니다.
"제가 읍에서 사다드릴까요?" 여쭈니,
"미안하지만, 그래줘, 필요하단 말이야." 하십니다.
어르신이 원하는 똑같은 고추장, 같은 가격으로 살 수 있을진 모르겠으나, 일단 가봅니다.
실제 우리보다 더 비싸게 파는 고추장. 같은 제품이지만 유통 구조의 차이가 컸습니다. 일단 급한대로 물건을 사고 갖다 드렸습니다.
어르신께는 비용에 대해선 이야기 안하셨습니다. 어르신은 어디서사나 점빵에서 사는 금액으로 사셨다고 생각하실테니 말이지요.
이동점빵의 존재 이유가 여기에도 있겠죠. 나가지 못하시는 어르신들에게 손과 발이 되어 집 마당에서 장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
그로 인해 어르신들이 필요하신 것을 살 수 있도록 돕는 일, 그것이 점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