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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출시된 타미야의 헷저 키트 박스 아트)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2년간 연이어 발발했던 1943년 유태인 게토 봉기와 1944년 바르샤바 시민들의 봉기까지는 나치 독일에게 철저하게 보복을 당하고 엄청난 숫자의 저항군과 무고한 시민들까지 참혹한 죽음으로 몰아넣은 비극의 사건이었다면 오늘 마지막으로 소개할 1945년 체코슬로바키아에 프라하에서 발생한 봉기는 나치 독일의 패배로 끝난 사건입니다. 사실 성공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당시 나치 독일은 불과 패망을 며칠 앞둔 바람 앞에 촛불같은 상황이었고 체코 저항군이 봉기 시작 나흘만인 5월 8일 독일 진압군에게 항복을 한 후에 불과 하루 만에 프라하로 진격해들어온 소련군에 의해서 독일군은 항복을 하는 상황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카데미 과학에서 최근에 발매한 헷저 "프라하 1945" 키트. 나치 독일이 사용한 헷저와 달리 전면에 탱크 저격용
주포를 기관총으로 바꾼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카데미 과학의 프라하 시민군이 탈취한 헷저 키트는 나치가 점령한 국가들에서 발생한 저항 사건 3개를 연이어 소개해드리도록 만든 계기였습니다. 스코다 공장에서 생산된 3대의 헷저 탱크에 저항군들은 자기들 식대로 페인팅을 한 후에 몰고 나와서 봉기를 진압하려는 나치 무장 친위대와의 전투에 사용하게 됩니다.
프라하 봉기의 전말(1945년 5월)
배경
한마디로 프라하 봉기는 1945년 5월 5일 체코슬로바키아에 프라하에서 레지스탕스들이 주축이 되어 패망을 눈 앞에 두고 있던 나치 독일에게 저항을 한 사건이며 불과 3일 후에 소련 붉은 군대가 프라하에 도착하면서 교전을 멈추게 됩니다. 그 다음 날인 5월 9일 독일군은 항복을 하면서 결론적으로 프라하시는 해바을 맞게 됩니다. (하지만 사실상 이사건으로 체코가 자주 독립을 할 수 있는 명분을 마련해주는데는 실패하였고 전후에 체코는 폴란드와 같은 다른 동유럽 국가들과 함께 소련의 위성국가로 전락하게 됩니다.)
굳이 이유를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프라하 봉기의 이유는 당연히 점령국인 나치 독일이 다른 피점령국과 마찬가지로 전쟁 지원을 위해 물자를 탈취하여 경제가 황폐화되고 정치적으로 일체의 권리를 박탈하였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국민들에게 강제 노역까지 강요하게 되자 수년간에 걸친 폭압으로 불만은 극에 달하게 됩니다. 문제는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는 계층이 하류 노동자층만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중류층을 형성하고 있는 상공인들과 하급 공무원들까지도 희생을 강요당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특히 체코가 점령 당한 후에 나치 독일은 자국의 국민들에게 체코의 땅을 주어서 정착하게 만들었는데 그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체코 국민들의 불만을 증폭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결국 전쟁 직후 무려 300만명의 독일 이주민들이 강제로 체코에서 추방당하게 됩니다.)
또한 레지스탕스 조직은 수일내로 도착할 소련의 붉은 군대를 지원하기 위한 내부 저항을 시작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체코에서 활동해오던 크고 작은 레지스탕스 그룹들은 모두 모여 7,500명 규모가 되었는데 그들의 그동안 주요 임무는 체코 내에 철도와 도로를 파괴하고 기습 공격을 가하곤 해서 독일군의 활동을 방해하는 역활을 해왔습니다. 그결과 당시 독일군들은 낮에만 물자 수송이 가능하였고 심지어 낮이라고 해서 매일 수송이 가능한 것도 아닐 정도로 레지스탕스들의 공격이 빈번하였고 위협적이었습니다.
여기서 체코 레지스탕스를 부르는 명칭이 사실은 우리나라 한국 전쟁에 남한에서 악명을 떨치던 공비들을 부르던 "빨치산"(partisan)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군요. 사실 소련 붉은 군대와 이미 긴밀하게 협조 체제를 해오던 체코의 레지스탕스들은 상당수가 공산주의의 "빨간 물"이 들어버린 상태였고 순수한 저항 세력으로써의 "레지스탕스"라기 보다는 이미 전후에 자신들의 조국을 공산국가로 만들 욕심을 갖고 있던 "빨갱이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체코 라디오 방송국 점령
4월 30일에서 5월 1일 동안 나치 무장 친위대 사령관이며 동시에 체코 경찰의 우두머리인 칼 헤르만 프랑크 장군은 프라하 라디오를 통해서 어떠한 저항세력이든 "피바다" (sea of blood) 속에 쳐박아버리겠다는 강경한 어조의 연설을 방송하였습니다. 그런 배경에는 소련군의 프라하 점령이 눈앞에 현실로 다가온 상황에서 초조해진 나치 독일이 마지막 협박으로 체코 국민들의 저항을 막아보려는 시도였지만 이런 협박에 아랑곳 않고 분노에 찬 프라하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프랑크 장군은 거리에 시민들을 군사력과 경찰력을 동원하여 진압하려 하였고 불응하는 시민에게는 발포를 하여도 좋다는 허락을 내립니다.
(독일군 철모를 쓰고 전투 중인 체코 저항군)
5월 5일 아침에 이미 저항군에 가담한 일부 체코 경찰들이 먼저 체코 라디오 방송국을 점령하기 위해서 진입을 시도하면서 봉기는 시작되었습니다. 문제는 독일 무장 친위대가 이미 방송국 방어를 위해 기다리고 있었고 곧바로 저항군과 독일군 간에 교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방송국 뒤편에서 치열한 총성이 들리는 가운데 방송국 직원들은 시민들에게 봉기에 가담할 것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방송하고 있었습니다.
봉기
5월 5일 오후 1시경 무장한 체코 레지스탕스들이 가세한 저항군은 라디오 방송국에 무장 친위대를 몰아내고 점령에 성공합니다. 라디오 아나운서는 프라하 시민들에게 전투를 위해서 거리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해달라고 방송을 하였습니다. 이어서 저항군은 게슈타포 본부를 점령하였고 그날 오후에 프라하 시장은 공식적으로 독일에 대한 복종을 철회하겠다는 발표를 합니다. 거리에 나온 시민들은 저항군의 공격에 가담하여 그동안 쌓인 분노를 표출했는데 심지어 독일어로 된 거리에 교통 신호판들을 철거하고 상점에 독일어 간판도 떼어낼 정도였습니다. 폭도들은 눈에 띄는 독일인들에게 폭력을 가했고 독일인들도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총기를 집어들고 폭도들에게 사격을 가하는 아비규환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프라하 시내에서 총격전으로 무고한 시민들이 사망하는
끔찍한 상황이 전개됩니다. 사진은 프라하 거리에 시민들의
시체들)
5월 5일 늦은 밤에 저항군은 나치가 도시 외곽에서 탱크와 장갑차를 끌고와서 진압하려한다는 정보를 듣게 됩니다. 저항군 역시 도시 근방에 탱크 공장에서 3대의 헷저 탱크를 끌어내왔지만 앞으로 다가올 강력한 무장 친위대 기갑부대의 위력과 독일 공군의 무자비한 공중 지원과 비교하면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저항군이 탈취한 3대의 헷저 탱크 중에 한대)
5월 6일 아침까지 무려 1,000개 이상의 바리케이드가 프라하 거리에 세워졌고 저항군은 독일 진압군이 본격적으로 도착하기 전까지 도시의 절반을 점령한 상태였습니다. 곧 시내에 독일군 수비대들은 저항군들에게 포위되었고 저항군은 포위된 독일군들에게 전기 공급과 수도, 전화선을 끊어버리고 압박을 가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무장 친위대는 포위된 상황에서도 무고한 체코 시민들을 상대로 보복을 자행하였습니다.
독일의 반격
정보대로 도시 외곽에서 온 독일군 진압부대는 시내에 포위된 독일군 병력과 독일인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시내 중심부로 진격하게 됩니다. 진압부대의 또 하나의 임무는 저항군에게 점령된 철도와 도로를 빼앗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저항군이 지속적으로 교통 거점을 점령하는 경우 서쪽에서 진격해오는 미군들이 독일군과 교전 없이 곧바로 독일로 쳐들어갈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불과 며칠 후에 독일이 항복을 하는 당시 상황에서 별 의미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프라하 시내에 진입한 독일군 진압부대의 하노마그 장갑차)
5월 6일 독일군은 라디오 방송국을 재탈취하기 위해서 공격을 시작합니다. 독일군은 방송국 건물 속에 진입하고 인근 바리케이드로 엄폐하고 공격을 가합니다. 건물 내에서 총성이 울리는 상황에서 심지어 독일공군 전폭기까지 동원하여 방송국 근방을 폭격을 가했습니다. 결국 라디오 방송국은 독일군에게 점령되었지만 이미 체코 저항군은 방송 기재를 다른 곳으로 옮겨서 그곳에서 여전히 시민들에게 봉기 상황을 중계하고 저항군의 메시지를 방송하고 있었습니다.
(독일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프라하 시내의 건물들)
미군이 근방 도시인 필센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프라하 시민들은 희망에 들떴습니다. 그러나 저항군은 미군과 소련군 간에 전투 지역 분할 계약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즉 프라하에서 서쪽으로 70km까지가 미군의 전투 허용 지역이었고 프라하는 소련군이 담당하는 지역이었던 것입니다. 저항군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미군에게 신속히 프라하를 공격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미군은 묵묵부답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항군은 소련군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고 독일군의 반격은 점차 증가하고 있었습니다.
친위대의 공격
5월 7일이 밝았습니다. 무장 친위대 기갑부대가 프라하 외곽에 도착했습니다. 아직까지 저항군 진압에 결정적인 승기를 잡지 못하고 있던 독일군 보병부대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곧바로 판터 탱크를 앞세운 독일 정예 기갑부대의 공격이 시작되자 상황은 끔찍하게 변해갔습니다. 게다가 독일 공군의 공중 지원 폭격까지 시작되자 프라하 시내에 오랜 역사를 간직한 건축물들과 기념물들이 폭격으로 무참하게 파괴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포위되어있던 독일군 수비대는 조금씩 저항군들을 제압하고 진격을 시작하게 됩니다. 특히 저항군에게는 독일 탱크를 제압할 대전차 무기가 턱없이 부족했고 탄약도 떨어져가기 시작했습니다.
결말.
5월 8일 연합군 측에 어느 누구도, 미군이든 소련군이든 자신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도착하지 않자 결국 체코 저항군은 독일군과의 협상을 시작합니다. 독일군은 저항군의 즉각적인 항복과 독일군의 방해받지 않는 프라하 철도 및 도로 사용을 요구합니다. 그 댓가로 프라하는 더이상 파괴되지 않을 것을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체코 저항군이 지금 당장은 독일군에게 항복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더라도 그들이 연합군에게 항복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런 탓에 저항군은 불필요한 시민들의 희생과 건물과 역사 유물의 파괴를 막고 협상을 하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1945년 5월 9일 프라하에 도착한 소련 붉은 군대를 환영하기 위해 거리로 몰려나온 시민들)
그들은 예상은 맞았습니다. 항복을 한 바로 다음 날 소련군은 프라하로 진격해들어왔고 나치 독일은 항복을 했습니다. 또한 미군도 프라하 외곽까지 이르게 되었고 미소 양군은 그곳에서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프라하 봉기 사건이 전쟁 후에 소련군의 강력한 힘에 눌려서 보잘 것 없는 공산주의 위성국가가 되어 수십년을 피점령국가나 다름없는 운명을 감수해야 했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역사의 그림자였습니다. 한편으로 한국 전쟁으로 인해서 만약 우리나라가 북한에게 패배했을 경우 체코보다 더 끔찍한 상황이 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나라의 국력이 약할 때 얼마나 끔찍한 댓가를 치뤄야 하는 것인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첫댓글 마지막 문구 3줄은 참 와닿습니다. 문득 프라하 시내의 저런 건물들이 나오는 디오라마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재밌는글 오늘도 즐겁네요^^
감사합니다. 강해야 더러운 꼴 안본다! 뭐 이런 얘깁니다. 얘기인즉슨!
이런일도 있었군요!
저도 마지막 문구에 공감이 갑니다.
감사합니다.
캄사합니닷!!!! 사실 휴머니스트님 응원에 힘 받아서 오늘 하루 쉬는 날인데 긆좀 써봤습니다.
착취와 억압의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미국이든 소련이든 독일이든 그놈이 그놈인듯 싶습니다.
강대국들은 약소국이 자주독립하는 꼴은 보고싶지 않은가 봅니다.
맞는 말씀이네요...ㅡ
훔... 사진들이 모형 작업에 참조하기에도 기가 막힌 것들을 찾아내셨어요. 큭~
전 유빈아빠의 의견에 살짝 기울어져 동의합니다.
한가지 덧 붙이면, 해방 이후 미군정의 잘못으로 인해서(통치의 편의만 위해) 일제잔재를 남기게 되고,
오늘 날 까지도 기득권 세력 중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자신들의 치부를 덮기위해 역사마저 왜곡하려 하는
그들의 시도가 계속되고 있는 현재가 너무 개탄스러울 뿐입니다.
아마도 형님께서 전후의 프랑스의 부역세력 처단에 대해서 나중에 언급 해 주실 것 같은데,
프랑스와 비교하면 더욱 씁쓸해 질 것 같네요.
프랑스 국민들의 부역자 심판은 다른 어느 나라들보다 엄격하고 가차없었지요. 함장님 말씀도 맞는 말씀입니다.
1999년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대학생으로 유럽 배낭여행 때 들렸던 폴란드에서 사진과 같은 동상을 본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언어적인 소통에 제한이 많아서 왜 폴란드인이 독일군 철모를 썼을까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오늘에서야 의문이 풀렸습니다. 아항~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3.12.07 0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