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둑놈들
어제 산림청의 반박글을 봤다. 애처로웠다. 벌목을 하고 어린 나무를 심으면 생물다양성이 증가한다고 주장하는 대목에서는 내심 측은지심까지 일었다.
계속 말바꾸기하는 거야 원래 공무원 종특이니까 그렇다 쳐도, 이 논란의 원인이 무엇인지 도무지들 모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모른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도대체 산림청 관료들은 '숲'을 뭐라고 여기는 걸까. 목재 생산 기지? 탄소 흡입 공장? 제발 숲을 개개 나무로 환원하지 말고 '효율성'으로만 측정하지 말자는 이야기에 계속 목재 생산을 잘 하겠다, 나무를 벌목하고 어린 나무를 심어야 탄소 흡수를 더 잘한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외고 앉았다. 그 놈의 잘난 효율성 때문에, 그 놈의 잘난 계량화 때문에 지금 기후위기에 봉착했다는 걸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저 공부만 잘하고 게으른 관료들은.
그래서 산림청을 해체하자는 말을 하는 거다. 저들에게 맡겨놨다가는 국토가 엉망진창이 될 것 같아서.
최근, 미국에선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린뉴딜과 관련해 가장 주목 받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땅'이다. 그린 러시라 불리울 만큼, 사람들이 관심이 온통 농촌을 향해 가고 있다. (이렇게 형성된 탄소 배출권 시장에 대해서는 나중에 실컷 비판하고) 농촌 땅을 환경친화적인 재생농법으로 바꾸자, 미국 온실가스 중 10%를 땅에 격리시킬 수 있다, 이게 요점이다.
토양의 표피층을 농기계로 갈아엎어서 농사를 짓는 경운 농법은 탄소를 격리하지 못한다. 흙이 죽기 때문이다. 루즈벨트가 대공항 시절 환경보전단을 만들어 친환경 농법에 도전했던 것도 산성화된 표피층에서 발생한 거대한 흙 태풍 때문이었다.
농촌의 땅이 탄소를 격리하게 하려면, 무경운 농법으로 돌아서야 한다.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화학비료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유기질이 풍부해지고, 다양하게 식물들의 뿌리가 얹혀 있고, 토양 속에 공극이 다양하게 살아 있어야 탄소를 격리시킬 수 있다.
이미 파리 협정 때도 나온 이야기다. 이후 그 놈의 전기차 타령에 묻히긴 했지만, 각국 농림부 장관들이 모여 농촌 '땅'의 힘을 복원시키면 놀라울 정도로 많은 양의 탄소를 격리시킬 수 있다는 내용을 함께 결의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농촌 땅뿐만이 아니다, 탄소를 격리하는 땅은. 많은 과학자들이 지목하는 대표적인 세 가지. 숲의 흙, 농사 짓는 땅의 흙, 그리고 슾지다. 최근의 한 연구(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따르면, 이 세 가지 토양은 지구 온실가스의 37%를 격리시킬 수 있다.
이 세 개의 땅만 잘 관리하고 재자연화하면 훌륭한 탄소 감축원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여러 연구에서도 나무보다 숲의 토양이 더 탄소를 많이 격리한다는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농사 짓는 땅은 무경운 등의 재생 농업으로 바꾸고, 숲은 가급적 원시림의 토양 조건이 되도록 숲 가꾸기를 해야 한다는 게 유럽을 비롯한 최근의 연구 동향이다.
그런데 숲은 이보다 더 광활하고 체계적인 에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단지 탄소 흡수원만으로 환원될 수 없다. 숲의 토양은 물을 저장하고 홍수를 조절하는 시스템이며, 그 안에 사는 다양하고 부지런한 미생물들은 생물다양성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수많은 곤충과 동물들이 숲의 흙과 나무 사이에서 살아간다. 생명의 집이다. 이 집이 부서지고 생물다양성이 훼손될수록 인간도 점점 이 지구에 거주하기 힘들어진다.
헌데 우리의 산림청은 나무를 싹 다 베어버리고, 토양을 오염시키고, 이 에코 시스템을 파괴하는데도 어린 나무를 심으면 탄소도 막 줄고요! 생명다양성도 막 높아져요! 이렇게 정반대의 해괴한 소리를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막판에는 늘 '우리는 목재 생산이 필요해요. 사실 우리가 이러는 건 당신들이 쓸 목재 때문이에요. 네, 나무를 베어야 해요' 라며 시민들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맞다. 목재가 필요하다. 한국은 최대 원목 수입국 중 하나다. 아니, 다른 나라에서 싹둑싹둑 베어낸 나무를 잘만 수입해 쓰면서 왜 국내에서는 안 되냐는 산림청의 볼멘 소리가 그리 막 틀린 이야기도 아닐 것이다.
'안 보이는 데서 벌목하는 건 상관 없고, 눈에 보이니까 이 난리들야.' 어제 본 산림청 반박글의 행간에 스며든 불만이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많이 나무를 베어낸다는 것이다.
미국인의 경우, 1년에 한 사람당 커다란 원시림 나무를 5 그루를 베어낸다. 소비 때문이다. 소고기, 콩, 커피, 팜유, 초콜렛 등 때문에 세계 도처에서 원시림 나무들이 벌목되고 있다. G7 국가들은 1년에 한 사람당 그 소비 때문에 원시림 나무 네 그루를 베어낸다. 걱정하지 마시라. 한국도 1사람당 네 그루를 베어낸다(Research Institute for Humanity and Nature).
우리 눈에 안 보여서 그렇지 북반부 시민들은 일상을 살아가며 매일 못 사는 나라의 원시림을 베어가며 살아간다. 가뜩이나 기후변화 때문에 토양이 사막화되고 숲이 소멸되고 있는데도, 매일매일 원시림을 죽이고 나무를 베어가며 살아간다.
전혀 의도치 않게, 산림청의 불만이 상기시키는 질문은 이런 거다. 잘려나가는 남반부 원시림에는 눈 감으면서, 자국 숲에 대해서만은 이렇게 까탈스럽게 구는 이 '위선'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물론 방법이 있다. 덜 쓰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덜 써도 무리가 가지 않는, 요컨대 '욕구'가 아니라 '필요'에 기초한 생산-소비 시스템. 그러니까 민주당이 싫어하는 '생태-사회주의'. 물론 그렇게 거창한 말이 아니어도, 적재적소 딱 필요한 만큼만 잘라내는 현명한 시스템.
그래야만 어떤 벌목 가이드도 없이, '외국에서도 막 잘라왔는데, 이제 그냥 한국에서 자르자니까!' 라고 외치는 산림청의 저 막가파식 폭력에 맞설 수 있다. '과학'이라는 외피를 썼지만 숲을 생물다양성의 존재론적 집으로 여기는 아니라, 그저 목재 가치로, 탄소 흡수원으로만 여기는 자칭 임업학자들의 편향된 시각에 맞설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건 벌목이 아니라, 숲이 과연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지에 대한 난상토론일 것이다. 벌목에 대한 최소한의 가이드를 시민사회가 함께 만드는 일일 것이다.
공청회 한 번 없이, 우아, 문재인 정부의 그린뉴딜에 맞춰 산마다 벌목을 하고 나무 30억 그루를 심어 탄소중립을 이루겠습니다!, 이렇게 외쳤다가 환경-시민단체들로부터 두들겨 맞고 매일 말바꾸기를 시도하는 산림청의 하찮고 비루한 변명들은 이제 그만 들어도 된다.
이번의 시골행. 깜짝 놀랐다. 시골집 노모를 따라 산행을 나섰다가 벌목 현장과 맞닥뜨렸다. 산 세 개가 모두 벌목됐다. 세상에, 내 고향도 이렇게 됐다. 작년 가을에 싹 다 베어냈다고 한다. 원래 여기 산들은 천연 변이가 이루어지고 있던 숲이었다. 산림청이 탄소 흡수 잘한다고 칭찬하는 상수리나무 등의 활엽수와 소나무가 섞여서 한참 우거지던 숲이었다. 그게 잘려나갔다. 그래놓고 괴상하게 임도 옆에 은행나무를 심어놨다. 본디 은행나무는 인간의 발소리를 따라 숲을 내려가 인간 마을에서 살아가는 공생체다. 그로테스크.
엄마가 말했다.
"몰라. 도둑놈들이 작년에 싹 다 베어갔어."
엄마 말이 맞다, 도둑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