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회 개천예술제 - 진주성 전투 재현극
1592년 임진왜란 진주성 전투 - 6일간의 전쟁
뮤지컬 [진주대첩]
일시 : 2010년 10월 8일, 9일 저녁 8시
장소 : 진주성 공북문 잔디광장 특설무대
진주대첩 역사 재현 퍼포먼스인 “진주성 전투 재현극”은 과거 임진왜란 당시 3,800여명의 수성군으로 수비를 한 당시 진주대첩의 현장을 배경으로 극화 시켜 재연하고자 한다.
- 제1차 진주성 전투 -
1592년 음력 6월 이후 전국에서 봉기한 의병들의 맹활약으로 기세가 꺾인 일본군은 병력을 집중하여 어떻게든지 하삼도의 관문인 경상도를 손아귀에 넣으려 했지만 전란 이래 진주성만은 공략하지 못하였다. 진주성은 앞은 남강이 흐르고 후방 삼면은 험준한 형세로 석벽을 높이 쌓아 올린 매우 견고한 성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남도를 장악할 수 있는 본거지이자 전라도 침입의 교두보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요충지가 바로 진주성이라 여기고 공략을 명령하였다.
1592년 음력 10월 4일 일본군은 2만의 군사를 이끌고 진주성을 포위하였다. 성안에는 진주목사 김시민을 위시한 3천 8백여 명의 병력과 백성들이 합세하여 결전 준비를 갖추었고, 성밖에서는 경상도 의병이 일본군을 배후에서 견제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군은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다가 마침내 주위의 민가를 모조리 불지르고 총탄과 화살을 마구 쏘아대며 공격을 시작하였다. 일본군에 맞서 성안의 군사들은 현자총통을 비롯한 총포와 화살로, 백성들은 돌과 뜨거운 물로 대항하였다. 게다가 임계영, 최경회가 이끄는 전라도 의병 2천여 명이 성밖에서 진주성을 지원하였다. 그러나 음력 10월 9일 진주 목사 김시민이 시체 속에 숨어있던 왜군의 총에 맞아 전사하고 말았다. 진주성을 공격한 지 이레 만인 음력 10월 10일 일본군은 퇴각하였고, 마침내 민관군(民官軍) 할 것 없이 단결하여 항전하였던 조선은 진주성을 방어해냈다.
이 제1차 진주성 전투는 진주대첩으로 한산대첩, 행주대첩과 더불어 임진왜란 삼대대첩의 하나로 일본군이 호남으로 진출하려던 계획을 좌절시킨 전략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