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의 원인 중에 모르기 때문에 두려움인 경우도 있습니다.
어두운 밤길을 가다가 모르는 사람이 다가오면 두렵습니다.
세상살이를 시작하면서 어찌해야 할지 몰라 두렵습니다.
부부살이를 시작하면서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거나 해서 두렵습니다.
자녀와 부모들 서로를 알지 못해 두렵습니다.
코로라19가 어떻게 될지 몰라 두렵습니다.
어떤지 어떻게 될지 몰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우리에게 당신께서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당신께서 함께 계셔서 저는 참 좋습니다.
거창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특별히 별다른 것을 해주시는 것 같지 않지만,
늘 우리 곁에서 함께 숨 쉬고
함께 풍랑을 맞고
함께 그저 계심에 위로가 됩니다.
물론 아직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당신이기에 두려움을 이길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물론 또 바람에 떨게 되기도 되겠지만 말입니다. 지금은.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두려움은 벌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또한 두려움은 벌과 관련됩니다.
잘못한 아이가 부모에게 걸릴까 두려워하듯이,
우리네는 하느님께 이웃에게 누군가에게 무언가에게 잘못했을 때 벌벌 떨며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죄의 종이 아니라 사랑의 종입니다. 두려움의 종이 아니라 믿음의 종입니다.
죄를 용서받았다는 믿음에서, 주님께서 사랑이심을 믿음에서, 누군가에게서 죄를 용서받았고 누군가의 죄를 용서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우리는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주님, 이미 완전히 용서받았음을 믿는 이들과 완전한 사랑을 믿는 이들과 “세상 모든 민족들이 당신을 경배하리이다.” 당신의 사랑과 용서로 저희 서로 사랑과 서로 용서로, 두려움 없이 걸림돌 없이 저희 서로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