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인환(미술평론가)
과묵한 화가 신종섭은 작품 활동에 잇어서도 항상 거의 조용했다. 그의 그러한 성격은 작품세계에 있어소도 그대로 반영되어지고 있다. 그의 일관되다시피 해 온 작업영역은 풍경소재로 모아지는 일이 많다. 「자연에 대한 순화」가 최대의 명제이자 관심사인 그림들이다. 정물도 드문드문 나타난다. 자연은 이 화가에게 영원한 소재창구가 되리라고 생각되거니와 도시민인 그가 도시의 일상을 저버리고 자연에 깊이 참탐해 들어가는 이유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터이다. 「자연예찬」이야말로 우리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정신유산이며 예술의 핵심이었다.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도봉산과 북한산이 이웃하며 가지런히 산자락을 드러내고 있는 우이동골짜기가 현주소인 화가로서 그들 산의 모습을 화폭에 담는 일은 이제 하루의 일과가 되었다. 산은 동양사상에서 지고함을 나타낸다. 대개의 건국설화가 영산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동양 특유한 신선사상의 요람이 산이다. 특출한 아름다움을 지닌 명산들을 거느리고 있는 이땅에서 태어났음을 감사하며 그러한 자각아래 산을 그리는 화가 신종ㅅ헙의 작업에 특별한 의미를 둘 수 있을 것 같다. 일종의 시적영감과 같은 짙은 서정성을 바타에 깔고 화가는 자연대상에 접근해 들어가고 있다. 그의 종래의 작업은 자연풍경이나 사물의 형태를 변형시키면서 분할적으로 처리하여 모자익 효과를 십분 호라용하는 표현차원에서 시작되었다. 보석처럼 빛나는 색채가 형태를 감싸면서 분할된 색면은 율동적이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화면에서 풍겨나오는 낙천적인 울림을 간과할 수 없다.
화가의 근작은 앞에서 언급되어진 것과 마찬가지로 산이 가장 주된 테마가 되면 산의 형상을 비교적 단순화시키고 평면적으로 여과시킨 화면전개로서 나타난다. 일종의 절제의아름다움이라고나할까. 그 축약된 화면에서 산의 형상은 번거로운 절차없이 수평적으로 진행되며 통합된 단일색조가 화면을 지배하고 있다. 동양 수묵화에서 볼 수 있는 여백적 공간같은 것이 시원스레 펼쳐지는 색면공간이다. 모든 형태전개가 윤곽적이기는 하지만 묘사적인 것은 아닌가. 형태의 세부는 배제하고 윤곽의 가장 큰 덩어리로만 화면에 짜임새를 가하고 있는 만치 다분히 추상화된 화면이라고도 말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완만하며 유연한 형상의 윤곽은 다채로운 색띠의 강약의 흐름으로 유도되고 형상의 내부는 평면적인 분할면속에서 다색적인 색채의 진동이 미묘한 시각적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전원시적 감흥이 돋보이기도 한다. 형상은 함축적이고 색채는 현란하며 윤기가 있다. 화가의 감수성은 거기 비해 침정적이라고 표현해도 될 듯 싶다. 산이 주제가 되는 산의 연작작품들이다. 신종섭의 전원시적 산의 연작작품들은 화가의 고운 심성과 마찬가지로 티없이 맑고 곱다. 이 청신하고 청정한 작품에 투영된 일종의 결벽증같은 ㅎ ㅘ가의 심성을 헤아리며 이제 50대의 나이에 접어든 그의 「자연예찬」을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한다. 작품 발표도 비교적 과묵한 편인 화가는 1980년 이래 세번째 개인전을 표고 있는 셈이다. 오랫동안 교단을 지켜오면서 좌절을 맛보기도 했던 화가가 그것을 극복하고 이룬 결실의 한 편린이다. 산이 있고 맑은 하늘이 있는 이 고장에 사는 우리 모두가 자연예찬론자가 될 수 밖에 없다. 그 모든 생각과 정신을 포용하고 잇는 작품세계가 갖는 설득력이란 그와같은 공감대에 기인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19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