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예수 동아리
 
 
 
 

자주가는 링크

 
 
 

회원 알림

 

회원 알림

다음
 
  • 방문
  • 가입
    1. 해음
    2. 장재원
    3. 지금 여기에
    4. 블루버드
    5. GRACE
    1. 밀라
    2. Junction Ari..
    3. 김괘걸
    4. 이여사
    5. 금빛날개
 
카페 게시글
-----* 강경수 칼럼 *----- 스크랩 바울 서한집은 몇 번이나 편찬되었을까?
강경수 추천 0 조회 20 15.03.24 10:53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 바울 서한집은 몇 번이나 편찬되었을까?

 

 

     2013. 11. 27.  처음 씀

     2015.  3.  24.  수정 추가

 

 

 

  바울 서한집은 몇 번이나 편찬되었을까?

  이 중요한 물음에 대해, 확실하게 답변할 수 있는 학자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정확한 자료가 없기 때문이에요.

 

  학자들이 웬만큼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정황은, CE 130년대경에 마르키온(Marcion)과 관련해서입니다.

  마르키온은 소아시아의 시노페(Sinope, 흑해 연안) 출신으로서, 선박 여러 채를 보유할 만큼 부유했는데요. CE 130년대 초쯤에 로마로 건너왔는데, 처음에는 원시 가톨릭 교인들과 사이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로마 교회에 20만 세스테르티우스(일꾼 5만 명의 일당에 해당함)나 기부도 했고요.

  그런데 CE 130년대 후반쯤에 시리아 영지주의자, 케르돈(Cerdo)과 교류하면서 차츰 영지주의 쪽으로 기운 것 같습니다. 또한 자신이 입수한 바울 서한집이 "유대주의자들"(즉 원시 가톨릭 교인들)의 오염으로 물들어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유대주의자들의 오염"을 걸러낸 바울 서한집을 편찬했는데, 이게 CE 140년쯤이었습니다. 

  마르키온은 CE 144년쯤에 로마 교회로부터 쫓겨난 후, 독자적인 교회를 건설해 나가는데요. 이 마르키온파 교회는 지중해 동부에서는 가톨릭 교회의 최대 라이벌이었습니다.

  이런 정도가 CE 130년대경에 마르키온과 관련된 정황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학자들의 이런저런 추측을 귀동냥하고 저 나름대로 저울질한 내용을 간단히 적겠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추측일 뿐이고, 공부를 하다 보면 나중에는 또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니까요. 현재의 제 개인적인 추측을 그냥 적어놓을 뿐입니다.

 

  바울 서한집은 몇 번이나 편찬되었을까?

 

  (1) CE 100년 전후해서 "바울파"가 바울 서한집을 최초로 편찬했을 듯.

  이 편찬자는 "에페소서"의 필자로 추정되고, 아마 "에페소서"를 바울 서한집의 소갯글로 맨 앞에 실어놓았을 것 같습니다.

  또한 아마도 "필레몬서"에 나오는 노예 오네시모스가 편지 수집을 도와주었을 것입니다.

  이 판본에 편지 몇 편이 실려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테살로니카 후서"가 빠져 있는 건 꽤 분명해 보입니다. 그래서 최대 9편의 편지가 실려 있었을 듯.

  콜로새서/에페소서는 같은 계열로서, 사상적으로는 영지주의 쪽에 가깝고, 가부장제 측면에서는 바울보다 "보수적"입니다. 이 판본의 편찬자는 대체로 이런 성향이었을 겁니다.

  이 "바울파"의 판본은, 아무래도 외부 출판용이 아니라 "바울파 내부 자료용"으로만 쓰인 것 같습니다.

 

  (2) CE 110년쯤에 원시 가톨릭파(proto-Catholics)가 바울 서한집의 장점을 발견하여, 나름대로 편집한 원시 가톨릭 판본을 펴냈을 것입니다. 여기에 유대계 크리스천 편지인 "테살로니카 후서"가 들어간 것 같습니다.

  이 "원시 가톨릭파" 판본은, 바울 서한집이 "외부 출판용"으로 편찬된 최초의 판본일 것 같군요.

  마르코 복음서가 CE 120년경에 집필된 것 같은데, 마르코 저자가 참조한 게 바로 이 "원시 가톨릭 판본"으로 보입니다.

 

  (3) 마르키온은 이 원시 가톨릭 판본을 입수하여, 자기 나름대로 "유대주의자들의 오염"을 걸러낸 판본을 CE 140년쯤에 편찬해 냈습니다.

  우리가 읽는 판본과 가장 다른 책들은 "로마서"와 "갈라티아서"인데, 현재 내용의 30% 정도가 각각 빠져 있습니다.

 

  (4) CE 150년대쯤에 가톨릭 교회가 바울 서한집을 편찬해 냈는데, 여기에는 "목회 서신" 세 편이 들어가 있습니다. 제 눈에는, 이 가톨릭 편찬자(들)와 "목회 서신들"의 필자는 다른 인물로 보입니다.

  우리가 읽는 바울 서한집은, 기본적으로 이 가톨릭 교회 편찬본입니다.

  이 가톨릭 편찬자(들)는 바로 "사도행전"의 저자(들)로서, 논의의 편의상 "루카 학파"로 부르겠습니다. 이 "루카 학파"는 "사도행전"을 집필한 뒤에, 마르키온이 편찬한 복음서와 바울 서한집을 각각 개작하여 가톨릭 판본들을 만든 것 같습니다.

 

 

  위와 같은 큰 시나리오에 따르면, 바울 서한집은 "최소한 네 번 이상" 편찬된 걸로 보입니다.

  각 파벌들마다 자기 나름대로 집어넣고 빼고 했을 것이고, 사본들이 돌아다니면서 각 지방마다 사소한 편집, 뒷날의 삽입(interpolations) 등도 거쳤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바울의 편지들을 읽다 보면 논지가 지그재그로 왔다갔다하는 대목이 수두룩하고, 원래 형태를 짐작할 수 없는 대목도 많습니다. 편집 과정을 여러 차례 거쳤기 때문입니다.

   

  이상의 내용이 현재의 제 개인적인 추측입니다.

  이 중요한 문헌이 몇 차례의 편집 과정을 거치면서 지그재그로 왔다갔다했는데요. 이 때문에 현대 독자들이 바울 서한집의 전체적인 모습을 쉽사리 파악할 수 없게 됐습니다.

  어쨌거나 바울 서한집은 기독교 운동의 창건 문서로 볼 수 있고, 신약의 주된 주춧돌을 이룹니다. 바울 서한집을 제대로 모르고서는 기독교의 기원과 신약의 형성 과정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주제는 무척 중요한데도 전체적인 윤곽은 애매몽롱한 점, 바로 이것이 우리가 바울 서한집을 읽어나갈 때의 애로사항일 것입니다.

 

 
다음검색
댓글
  • 15.03.24 17:38

    첫댓글 어제 전시회를 빌미 삼은 모종의 음모에 의해 전혀 모르고서 '하느님의 교회'에 갔습니다....어머니의 사랑에 관한 사진과 글이 난무하더니 마지막에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를 들이밀고 거기다가 그 어머니라는 여성분의 사진을 보여주며 '어머니 하느님'이 지금 재림해 계시고 나아가 절대 죽지 않는다고 열변을 토하는데 제가 죽을 뻔 했습니다..후하...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