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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경수 칼럼 *----- 스크랩 신약에서 말하는 "영원한 생명"
강경수 추천 0 조회 97 15.04.08 12:09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신약에서는 "영원한 생명" "영생"이라는 개념이 자주 나오는데요.

  그래서 "영원한 생명" "영생"에 대해 신약에서 어떻게 말하는지... 대충 훑어보겠습니다.

  요즘에는 인터넷 성경 검색이 다 되니까, 이런 작업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군요.

 

 

  먼저 논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영원한 생명" "영생" 주제를 이해하기 위해 꼭 읽어야 할 신약 단락들을 쭉 적어 놓겠습니다.

 

1. 바울의 편지들

 

  ♠ 갈라티아  6:7~8

  ♠ 코린토 전서  15장

  ♠ 로마서  2:1~16, 5장~8장

 

2. 요한 공동체 문헌

 

  ♠ 요한 복음서  3장~6장, 10장, 12:20~50, 17장

  ♠ 요한 1서  1:1~4, 2:18~27, 3:11~18, 5장

 

의 두 문헌을 중점적으로 읽고, 다음의 두 문헌은 참고만 하세요.

 

3. 공관복음서들

 

  ♠ 마르코  9:42~50, 10:17~31

  ♠ 마태오  25:31~46

  ♠ 루카  10:25~37

 

4. 가톨릭 문헌

 

  ♠ 티모테오 전서  1:12~17, 6:3~21

  ♠ 티토서  1:1~4, 3:1~11

  ♠ 사도행전  13:13~52

  ♠ 유다서  1:20~21  (*삼위일체식 신조가 들어간 가톨릭 편집층임)

 

이상입니다.

 

 

  그럼 "영원한 생명" "영생"에 관련된 신약 단락들에 대하여, 몇 가지 특징을 간단히 적어 보지요. 

 

 

  (1) 신약의 유대계 크리스천 문헌에는 "영원한 생명" "영생" 표현이 안 나타납니다. 심지어는 히브리서나 베드로 전서에도 "영원한 생명" "영생" 표현이 안 쓰였어요.

  이건 중요한 포인트이므로, 기억해 두기 바랍니다.

 

 

  (2) "영원한 생명" "영생" 주제를 중요하게 다루는 문헌은 "바울의 편지들"과 "요한 공동체 문헌", 이 두 종류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상적 기초 위에서 "영원한 생명" "영생" 개념을 다룰까요?

  그건 다름 아니라, "영"(spirit)-"육"(flesh)을 뚜렷이 대립시키는 세계관을 기초로 "영" 쪽을 추구하는 방향에서 "영원한 생명" "영생" 개념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즉, "영원한 생명" "영생" 개념은 "영"(spirit) 개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무난할 듯.

 

 

  (3) "바울의 편지들"과 "요한 공동체 문헌"의 한 가지 큰 차이점은, 바울 사상에서는 "몸"(body) 개념이 중요하게 쓰이는 반면 "요한 공동체 문헌"에는 "몸" 개념이 안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원래의 요한 저자가 어떤 영지주의자인 건 의심할 필요가 없는데, 과연 원래의 바울을 영지주의자로 볼 수 있는가... 이런 학술적인 의문이 생기는 것입니다.

 

 

  (4) 공관복음서들이나 가톨릭 문헌에서는, "영원한 생명" "영생" 개념을 좀 실천적인 방향에서 적용시키고 있어요. 이런 "실천적 적용" 면에서는 파벌들마다 그 이해가 각각 다르겠죠?

  따라서 "영원한 생명" "영생"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관복음서들이나 가톨릭 문헌은 그냥 참고로만 읽어야 하겠습니다.

 

  두 가지 사례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A. 마르코 10:17~31의 기사에서는 "부"를 배척하는 성향을 드러냅니다. 이처럼 "부"를 배척하는 성향은, 크게 보아 두 가지 전제를 밑바탕에 깔고 있는데요. 첫째, 강력한 종말론을 전제하고(마르코 9:1 참조), 둘째, "떠돌이 선교사" 비슷한 생활방식을 전제합니다(마르코 6:1~13 참조).

  반면에 티모테오 전서 6:3~21의 논의에서는 "부" 자체를 배척하지는 않죠? 2세기 중반의 가톨릭 교회 상황이라 이미 종말론이 다소 퇴색했고, 또한 온건한 스토아 윤리 사상이 이미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실천적"이거나 "윤리적"인 방향에서는 파벌들마다 그 이해가 각각 다르게 마련입니다.

 

  B. 다음 두 구절의 차이점을 곰곰이 음미해 보세요.

 

사람은 자기가 뿌린 것을 거두는 법입니다. 자기의 육(flesh)에 뿌리는 사람은 육에서 멸망을 거두고, 성령(spirit)에게 뿌리는 사람은 성령에게서 영원한 생명을 거둘 것입니다. (갈라티아 6:7~8)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마태오 25:46)

  위의 갈라티아 6:7~8 구절은 "영-육의 대비" 위에서 "영원한 생명"을 제시하는 반면, 아래의 마태오 25:46 구절은 "실천적" "윤리적"인 방향에서 "영원한 생명"을 끄집어내고 있죠? 이런 차이점을 유념해 두기 바랍니다.

 

 

  이상으로 "영원한 생명" "영생"에 관련된 신약 단락들을 간단히 훑어봤는데요.

  "영원한 생명" "영생" 개념이 "영-육의 대비"라는 고대 종교인들의 세계관에서 연유했으며, 더 나아가 각 파벌들이 윤리적/실천적인 방향에서 "영원한 생명" "영생" 개념을 적용하고 있는 모습도 살펴보았습니다.

 

  "영-육의 대비"라는 건, 어디까지나 고대 종교인들의 세계관이겠죠? 현대인의 관점에서 이런 고대 종교인들의 세계관을 어떻게 재해석할 것인가, 그리하여 "영원한 생명" "영생"이라는 고대 종교인들의 통찰을 어떻게 재해석할 것인가... 등등은 앞으로 남은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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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04.10 00:29

    첫댓글 저도,
    영원한 생명,
    지옥과 천국에 대한 고전적 해석을 대체할 해석이 미정립 상태인데...
    이글을 통해 새로운 실마리를 찾게됩니다.
    고전적 믿음으로 죽어서 심판받아 천국 지옥으로 간다고 하면 되겠지만...
    첫째 심판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과연 하느님,절대자를 가장 근접하게 표현한것이 사랑이라 생각하건데,
    어찌 그런분이 심판을 행하실까?
    그것은 고대적인 사고이고 또한 종교 교리적 해석이자, 권선징악과 유사한 개념이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이 죽으면 에너지의 소멸이나 분산으로 사라진다는 것도 일견 생각해 볼 수 있지만 믿고 싶지 않은 방향이고...
    그럼 영원한 생명의 발전적인 의미는?

  • 15.04.10 00:38

    무엇일까...
    에 대한 물음을 생각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어렴풋이...
    그 무엇에도 속박받지 않는 자유한 영혼으로서(구원 받은 영혼, 예수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한 사람으로서)...
    그의 생각 믿음, 기억이 주변이나 영향을 받은 모두에게 유전되어 이어진다는 의미의 영원한 생명을 생각하곤 하였지만 무엇인가 부족한 것은 있지만 사후 죽어서의 세계인지라 더 발전되지 못한 부분으로 놔두고 있었지요.

  • 작성자 15.04.10 09:28

    "영원한 생명"이란 건, "영-육을 뚜렷이 대비시키는 세계관에서 육을 버리고 영을 추구하는 방향"인데, 바울과 요한 공동체의 신학이 많이 다르긴 해요. 그런데 그런 신학적 차이점들을 무시하고 간단한 도식으로 파악하면, 육 쪽은 "죄-죽음"의 방향이고, 영 쪽은 "거룩함" "의로움" "새로운 영과 진리"를 따라 궁극적으로 "영원한 생명"이 나옵니다.
    (1) 따라서 "영원한 생명" 개념을 현대인의 관점에서 재해석하자면, "영-육의 대비" "죄-죽음" "거룩함과 의로움" 등을 고대 종교인들이 어떻게 파악했나... 이런 이해가 먼저 선행되어야 하겠고요.

  • 작성자 15.04.10 09:37

    (2) 고대인들이 말하는 "영원한"이란 건 "육을 떠나 영 쪽으로 초월한"... 이런 뜻이거든요? 따라서 "영원한 생명"이란 건, "뭔가 초월적인 영적인 생명" 이런 뜻인데, 이걸 현대인의 관점에서 어떻게 재해석할 것인가... 이게 문제겠죠?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그 무엇에도 속박받지 않는 자유한 영혼으로서(구원 받은 영혼, 예수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한 사람으로서)..." 이런 구절은 소박하나마 고개가 끄덕여지는데, "모두에게 유전되어 이어진다"나 "사후 죽어서의 세계"... 이런 구절들에서는 고개가 갸우뚱해지는군요. 요한 공동체 문헌을 자세히 읽어 보면, 영원한 생명은 "지금 이곳에서 체현되는 어떤 것"으로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 작성자 15.04.10 09:54

    (3) 바울 사상에서는 "몸" 개념이 강력하죠? 이 때문에 "그리스도의 몸 = 교회", 이런 신비적인 교회관도 나오고요. 또한 이런저런 파벌을 불문하고, 고대 종교인들에게는 "세례"나 "성찬례" 같은 성사들이 어마어마하게 중요했어요. 따라서 교회론, 성사론 등도 현대인들의 관점에서 재해석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런 측면에서는 위의 "가톨릭 문헌"을 정독하는 게 조금 도움이 될 듯.

  • 작성자 15.04.10 10:07

    (4) 윤리적인 관점에서 살펴보자면, 공관복음서들에 나오는 윤리관은 강력한 종말론을 전제하거나, 초기 기독교의 분파주의를 반영하거나, 떠돌이 선교사들의 생활방식을 반영하거나 등 "비실용적인" 요소들이 많거든요? 이런 면에서는 가톨릭 문헌을 좀 정독해 볼 필요가 있을 듯.
    가톨릭의 윤리관에는 "온건하고 보수적인 스토아 윤리 사상"이 많이 들어와 있거든요? 그런데 이건 그 당시의 로마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이라, 현대인들의 입맛에는 안 맞는 것들이 많겠죠? 이런 윤리적 측면에서도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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