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원효 스님 소개
스님의 법명은 원효(元曉), 법호는 화정(和靜), 속성은 설씨(薛氏), 초명은 서당(誓幢)이다. 신라 진평왕 39년(617)에 압량군 불지촌(押梁郡 佛地村 : 지금의 경산군 자인면)에서 태어났다. 스님은 10세에 출가하였는데 남달리 총명하여 출가 때부터 스승을 따라 경전을 배웠다. 성인이 되어서는 불법의 오의(奧義)를 깨달음에 있어서는 특정한 스승에 의존하지 않았다. 스님은 경학뿐만 아니라 유학(儒學)에 있어서도 당대 최고의 선지식이었다.
고구려 고승으로서 백제 땅 전주 고대산에 주석하고 계신 보덕 화상(普德和尙)의 강하(講下)에서 <열반경>, <유마경> 등을 수학하였다. 영취산 혁목암(靈鷲山赫木庵 : 지금의 통도사 산내암자)의 낭지(郞智) 화상에게서도 사사하였으며, 당대 최고의 신승(神僧)이신 혜공 화상(惠空和尙)에게서도 사사하였다.
34세에 의상과 함께, 당나라 현장 법사와 규기 화상에게 유식학을 배우려고 요동까지 갔지만 그곳 순라군에게 첩자로 몰려 여러 날 옥에 갇혀 있다가 겨우 풀려나 신라로 되돌아왔다.
10년 후 45세 때에 두 번째로 의상과 함께 이번에는 바다로 해서 입당하기 위해 백제국 항구로 가는 도중 비를 만나 산속에서 길을 잃고 해매다 겨우 토굴을 찾아서 하루 밤을 지내게 되었다. 갈증이 나 토굴속에서 고여 있는 물을 떠 마셨는데 물맛이 매우 달고 시원하였다.
그러나 아침에 깨어보니 토굴이 아니고 오래된 공동 무덤이었으며 물을 떠마시던 그릇은 바로 해골이었다. 부득이한 사정이 생겨 하룻밤을 더 지내게 되었는데 이에 귀신의 작란(作亂)에서 활연대오(豁然大悟)하였다.
유심(唯心 : 모든 사물의 법칙은 오직 한마음에서 일어남)
知心生故種法生(지심생고종법생)
心滅故 不二(심멸고촉루불이)
마음이 생기면 만물의 갖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마음이 멸하면 무덤, 해골물이 둘이 아님을 깨달았구나.
활연대오를 한 원효스님은 발길을 되돌려 신라로 돌아왔다. 그리고 미친 사람으로서 또는 거지행세를 하면서 거리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민중포교에 들어갔다. 이러한 생활 속에서도 <화엄경>을 주석하였다. 스님은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 줄 건가, 하늘 받칠 기둥을 깎으려 하네. 誰許沒柯斧我斫支天柱(수허몰가부아작지천주)”라는 노래를 불렀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님의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다만 무열왕이 그 노래를 듣고 뜻을 알았다. 귀부인을 얻어 훌륭한 인재를 낳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알아차린 무열왕은 스님을 요석궁으로 들게 하였다. 이후 선사는 설총(薛聰)을 낳은 후 실계(失戒 : 스스로 계율을 파하였다 함)하였다 하여 속복(俗服)으로 갈아입고 스스로 소성 거사(小性居士)라 하면서 광대들이 무농(無弄)하는 큰 박을 본 따 무애호(無 瓠 : 나무를 깎아 만든 바가지)를 만들어 천촌만락(千村萬落)을 돌아다니면서 노래하고 춤추며 교화하였다. 이로 인하여 가난한 사람, 어린아이들까지도 모두 부처님의 이름을 알고 염불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스님의 일생은 화쟁(和諍)의 교법(敎法)에 의하여 자리(自利)를 구하고 대중교화를 통하여 이타(利他)를 행함으로써 상구보리 하화중생으로 일관하였다.
스님은 인간의 청정한 마음이 현실에 훈습되어 불각심(不覺心)이 일어난 무명업상(無明業相)을 미오한 현실생활 속(俗)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끊임없이 추구하고 수행함에 의하여 완성된 인격(眞)을 이루어 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데 전생을 바쳤다.
신문왕 6년(686)에 세수70세 법랍 60세로 입적하셨다.
■경주 해회선원 회주
현대불교신문 2002-02-20 357 [오도송으로 보는 한국禪] 무산스님 - 원효스님 ‘唯心’
2. 원효성사와 무애행
민중 더불어 노래하고 춤추며
부처님 가르침 쉽게 접하도록
원효 스님(617~686)은 지금으로부터 1천3백여 년 전 이 땅에 한국불교사상과 철학사상의 새로운 장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불교를 처음으로 대중화·실천화한 고승이다. 간혹 스님의 위상은, 그러한 사실들보다는 스님의 기행이나 파계행각만 잘못 이해되는 경우가 없지 않다스님은 일정한 스승 없이, 일정한 주처 없이 공부하다가 45세 무렵 늦은 나이임에도 유학을 시도하였던 정열적인 구도자였다. 유학 도중에 해골바가지 옆에 고인 물을 마시고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가던 길을 되돌아 왔다. 그 깨달음이란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一切唯心造)’는 유심(唯心)의 도리였다.
스님은 세계 최고, 최대의 저술가로서, <열반경종요>나 <십문화쟁론> 등의 저술들을 통해 모든 학계나 종파를 초월한 통불교(通佛敎)를 천명하여, 향후 한국불교의 전통이 되게 하였다. 모든 경전을 회통하여 하나로(一乘) 종합시켜 독자적인 사상으로 창조하였는데, 이는 용수보살이 대승불교를 완성한 이래 중국의 각 종파불교를 종합 회통한 일대 불교혁명이었다. 그리하여 신라이후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중국이나 일본의 불교에 끼친 영향도 매우 커서 성사 혹은 보살로까지 숭앙되고 있다.
스님이 지은 <금강삼매경소>는 자존심 높은 중국인도 논(論)이라 높여 불렀고 그의 <대승기신론소>와 <별기>는 세계의 성인이라 칭송받고 있는 마명과 용수의 저술과 더불어 3대 저술로 널리 알려져 있다. 스님은 이러한 저술을 통하여 모든 학술을 원융무애한 화쟁사상(和諍思想)으로 승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민중교화를 위해 보살행을 널리 폈다.
스님은 요석공주와 결혼하여 파계하고 자기를 ‘아랫것 중의 아래’라는 뜻의 복성거사(卜姓居士) 혹은 소성거사(小姓居士)라 하며 무아행을 폈다. 즉 항간에 나가 표주박에 걸림이 없다는 ‘무애(無碍)’라는 글을 새겨 천촌만락(千村萬落)을 돌아다니며, 거지나 창기들을 비롯한 하층민중들과 더불어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염불을 외면 극락에 갈 수 있다고 교화하였다. 이 때부터 불교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이는 <화엄경>의 ‘모든 것에서 거리낌없는 사람이라야 한 길로 삶과 죽음을 벗어날 수 있다(一切無碍人 一道出生死)’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스님의 오도적 삶을 크게 확대하고 사상의 깊이를 심화시켰으며, 오로지 일심사상으로 돌아가 널리 중생을 이익 되게 하였던 것이다.
■황인규/동국대 강사
현대불교신문 2001-07-11 326 [高僧 다시보기]원효성사와 무애행
3. 원효 스님 소개 페이지
1) 부다피아 고승열전 원효대사(元曉大師) 페이지
2) 부다피아 쌍계사 페이지내의 원효 스님 페이지
3) 부다피아 동사열전 페이지내의 원효 스님 페이지
4) 원효, 의상에 세가지 의문 풀다
5) 원효 화쟁사상 ‘대립의 화해’ 보다 ‘서로 통하는’ 경지
6) 원효 ‘십문화쟁론’ (책)
4. 원효 스님과 관련된 전설
1) 경주 기림사 전설
2) 양산 천성산 내원사 전설
3) 소요산·자재암 전설
4) 부산시 동래 원효대 전설
5) 영일 오어사 혜공 스님과의 전설
6) 경주 분황사 전설
5. 원효 스님 관련 책, 논문, 세미나
1) 역사로 읽는 원효 (책)
2) 원효 ‘판비량론’ 필사본 국역 (논문)
3) ‘원효’ 고영섭 저 (책)
4) 원효 스님 염불수행법 (책)
5) 인간의 도리로 본 원효 (책)
6) 일심·화회·무애로 본 원효 (책)
7) 원효의 '금강삼매경론’ 주석서 낸 은정희 교수
8) 김상현 교수 ‘원효 연구' (책)
9) 원효어록 100선 (책)
10) 원효설화의 미학 (책)
11) 원효사상전집 (책)
12) 원효가 파계승된 까닭은? (책)
13) 원효의 화쟁논리 - 사토 시게키 지음 (책)
14) 승가대 ‘원효전서 일자색인집’ 펴내 (책)
15) 원효 편문수일(片文蒐逸) 펴내 (자료집)
16) 정신의학으로 본 원효 번뇌이론 (논문)
17) 원효 중관철학은 화해의 입장 (논문)
18) 다시 찾은 원효 ‘금광명경소’ (논문)
19) 원효의 대중교화와 사상체계 (논문)
20) 원효 ‘발심문’ 한국 최초 청규(淸規)서 (논문)
21) 국제원효학회 심포지엄
22) 국제원효학회 학술회의·번역자 워크숍
23) 원효학 국제학술 세미나 토론 요지
6. 원효 스님 관련 링크 (현대불교신문, 부다피아 사이트내)
1) 불교TV 8부작 ‘원효’방영
2) 국제 원효학회 창립
3) 종교학자 원융회통사상에 경탄 (미국종교학회 원효학 발표회)
4) 화쟁사상 대립 해결 열쇠
5) 속세를 떠난 원효’ (이이화씨 ‘한국사 이야기')
6) 산사의 샘물 (동두천 소요산 원효암의 약수가 짧게 언급되어 있다)
7) 울진 불영사 의상전에 모셔져 있는 원효대사의 영정 사진을 볼 수 있다.
8) 섭생에 관한 원효스님의 말씀 (사찰음식 페이지)
9) 대행스님이 원효스님의 예화를 들어 삶고 죽음의 문제를 설명하심 (길을 묻는 이에게 페이지)
10) 포항 오어사 유물 전시관 개관 소식 (원효대사 삿갓과 수저가 있다)
11) 불교적 작품 '원효대사'를 쓴 춘원 이광수
12) 금강삼매경 소개 (상)
13) 금강삼매경 소개 (중)
14) 금강삼매경 소개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