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TS 간증문 이벽호 형제
지금은 찬 바람이 부는 겨울의 초입이지만, PDTS에 문을 두드리게 된 때는
아직 무더운 때 였습니다. 그러나 그 때 제 심령은 차가운 북서풍과 함께
눈보라마저 몰아치는 상황이었습니다. 후임을 약속받고 온 교회에서 난데없이
사직의 압력을 받고 사임을 하게 되었던 때였기 때문입니다. 한 목회자의 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것도 아픔이었지만 사랑으로 섬기던 교회 성도들과 헤어
지는 것도 괴로웠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거리에 나설 상황이 암담하기도
했습니다. 기도를 하면 마음 깊은 곳이 뭔가가 건드려져 울컥울컥 대기 일쑤
였습니다. 분노를 내어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눈물을 쏟으며
절망의 깊은 늪에 빠져드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주위에서는 “더 좋은 길이
예비 되어 있을 것이라”는 말을 하지만 허공의 소리처럼 들릴 뿐이었습니다.
목사님은 믿음이 좋으시니 잘 이겨내실 거예요” 라는 말을 들을 때는 “뭐야?
위로라고 하는 말이야? 협박이야? 하며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이런 분노와 절망감을 반복하며 살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정리되지 않은 심령으로 개척하여 새로운 사역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또 다른 교회의 부교역자로 옮기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았고 담임 목사자라로
간다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막연하기만 한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예비하신 시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즉 인생의 전반전을 마친 지금
후반전을 준비하기 위한 half-time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만난 곳이 PDTS
였습니다. PDTS는 아내가 이미 3년 전에 마쳤기 때문에 낯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제 신앙의 색깔과 너무 다르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PDTS의 과정을 참여하면서 동일한 사역에
종사하는 목사 형제들이 모여서 아픔과 상처를 고백하고 서로 공감하며 위로
하며 사랑을 나누는 시간들이 계속되면서 이상하게도 허전한 영혼의 방들이
하나씩 하나씩 채워져 가고 있었습니다. 신앙의 본질을 지킨다고 하면서도
종교적 열망으로 살았던 내 영혼의 감춰진 얼룩들이 씻겨지는 것을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나아가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상실감과 거부감으로 깊게
파인 내 영혼의 상처를 보듬으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흘리신 보혈이 내 심령 안에 뜨겁게 뜨겁게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열심있는 종의 모습도 아닌 게으른 종이었지만 여전히 당신의 아들로 여기시고
기다려 주시는 아빠의 품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내 영혼 깊은 데서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내 심령에 써 있네!”
라고도 고백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선포되는 말씀과 삶으로 경험되어진 아버지의
행하심이 나를 다시 새롭게 세워주는 힘이 되었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도전의
현장이 되었다. 훈련을 진행하는 가운데 어제는 개척교회를 시작하는 첫 예배를
드리며 주님 앞에서, 주님과 함께 시작했습니다. 내 마음에 부으시는 자유함과
감격으로 가슴 벅찬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의 인도자만이 아닌 새로운 예배자로
서게 되었습니다. DTS를 하는 과정속에서 지난 10여 년간의 부교역자로서의
사역과 삶의 현장에서 배운 신앙의 훈련보다 더 알찬 회복의 열매가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