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포함해 세 나라의 여성들을 비교해보면서 나의 고민은 풀어지기 보다는 오히려 더 심화되고 확장되었다.
경제대국 일본, 신흥경제발전국 한국, 저개발국 필리핀의 속을 들여다보면서 겉모양은 다르지만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공조 속에 여성들의 삶과 성에 대한 생각은 하나같이 비슷하다는 걸 알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딸로 태어나면서 부터 시작되는 차별들에 대한 경험, 그리고 차이와 차별에 가장 민감한 여성의 몸에 대한 경험과 사회적 이슈, 너무나 구차해서 말하기도 귀찮을 만큼 뿌리 깊은 가사노동에 대한 이야기부터 성폭력과 성노동자, 그리고 이주여성들까지... 자본주의는 여성의 노동력을 가족과 성산업이라는 두 개의 카테고리에 분리시켜 윤리와 도덕이라는 잣대를 이용해 출산과 쾌락의 귄리를 여전히 보호와 통제 속에 가두어 놓고 있다.
우린 이걸 다시 뒤집어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왜 딸로 대표되는 여성성은 남성성보다 약하다는 이미지를 벗지 못하는지
왜 비정규직의 70%가 여성이고 갈수록 여성의 빈곤화가 심화되고 있음에도
국가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을 못하는지
왜 성매매로 발생하는 경제규모가 24조 원대로 국민총생산의 4.1%나 되고 33만 명
정도가 성매매 종사하고 있음에도 여성의 권리와 성노동자의 권리는 서로 이반이 돼야 하는지
왜 혈연을 중요시하는 한국사회에 가난한 동남아의 이주여성들이 시집
(이 현상은 결혼이란 말보다는 시집이란 말이 맞다)오는 것이 사회적으로 용인이 되고 있는 것인지
왜 출산은 그 자체로 인정되지 못하고 결혼과 가족 그리고 사회가 만들어낸
온갖 이데올로기에 종속 되어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신체적 권리조차 제약을 받아야 하는지
왜 경제가 발전한 나라에서 조차 여성의 역할과 지위는 왜 경제가 발전하지 않은
가난한 나라의 여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인지...
하지만 솔직히 이런 고민들만큼 내 머리 속에 정리된 결론은 없다. 어떤 이야기로 그림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어떤 인물이 가장 정확한 해답이 될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일차적으로 나 역시 이 문제에 있어서는 여전히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런 시각으로 여성과 자본주의 문제를 다룬 연구서들이 많지 않다는 것도 이유라면 이유겠다. 따라서 본 작업은 전작 ‘쇼킹패밀리’가 가족주의를 해부하기 위해 탐구하며 영화를 만들어간 과정이었듯이 ‘레드마리아’도 그런 과정이 되리라 믿는다.
다만 확실한건 그 문제들을 짚어가는 과정으로서 현재 아시아 여성들, 특히 일본과 필리핀, 한국의 여성들의 삶을 종합적으로 돌아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일본의 식민지 시절부터 자본주의화 과정까지 긴밀하게
영향을 받은 한국과 필리핀은 여성문제에 조차 그 영향권 아래에 있어 왔고 지금도 많은 연결점이 있어, 여성과 자본주의라는 주제를 탐구하는데 매우 유의미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시아 세 나라 여성들의 경험의 재구성을 통해 자본주의가 놓치고 간 많은 것들을 확연하게 볼 수 있고,
무엇보다도 현재를 사는 여성들의 고민과 실재적 문제 그리고 대안을 모색하는 행보 속에 우리가 시도해 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새로운 역사’로 만드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지도 탐구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