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때 고려인재를 중국 각성에서 뽑았다.
고려사 권42 세가 42 공민왕조, 경술19년(1370년)에 보면,
향시에는 각 성과 직례부와 주에서는 도합 5백명을 선출한다. 그러나 인재가 많은 곳은 규정된 수에 구애받지 않으며 적은 곳은 규칙대로 공에 충당한다.
하남성 40인, 산동성 40인, 산서성 40인, 섬서성 40인, 북평성40인, 복건성30인, 강서성 40인, 절강성 40인, 호광성 40인, 광동성 25인, 광서성 25인이다.
중국지도참조 고려의 강역을 나타냄(필자가 정리)
그러나 경사는 직속부와 주에서 100인을 뽑았다고 한 이 문장은 고려가 향시에서 인재를 선발할때 왜 대륙의 성 이름이 나오는가?, 여러분, 고려가 대륙에서 사람을 뽑았다는 얘기입니다. - 24쪽, 대륙으로 고증한 신 난중일기 정욱지음.에서 참조
고려가 각 성에서 인재를 등용한 것은 각 성이 바로 고려의 지방체제의 기관이기 때문이고, 고려의 강역이기 때문인 것이다. 고려황제 공민왕은 전국 지방 각처에서 인재를 고루 등용한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원이 중국이고, 중국이 고려와 따로 있었다는 역사이야기는 한낮 소설에 불과한 것이다. 고려는 바로 중국에 있었다는 명백한 역사이다.
- 역사전문 러브 선
첫댓글 코레아가 가우리=가운디-가운데이고 가운데가 중앙입니다 즉가우리족이 최소범위 아시아전체를 관리했던 중추집단입니다 중원이 현 중동일지도 모릅니다. 고려시대 전투도에 터번쓰고 싸우던데요? 그리고 여자들 기생머리 스타일도 터번하고 같고요...현중국은 동궉으로나오니 중국아 아니란말이고....
고려, 가우리 가운디,,= korea,corea,core(핵심,가운디)
공민왕의 "천산대렵도"를 보면 변발을 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티벳의 사원에 보존하고 있는 그림에도 고려왕자의 복식이 청나라풍 모자와 의복으로 그려져 있는걸로 보아 과거 고구려의 의복을 상상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몽골영향이 있어서가 아니라, 원래 그럴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