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7일 물날 날씨 : 낮에는 딸기청에이드가 잘 팔릴 만큼 따뜻하더니 저녁 포장마차 때는 겉옷을 벗었더니 춥다.
제목 : 학교살이와 포장마차
어린이들이 가장 하고 싶은 공부 첫 번째로 꼽은 학교살이를 하는 날이다. 어린이들은 마냥 즐겁지만 즐거운 학교살이도 일인 선생은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3월은 새학년 새학기라 해야 할 일들이 많아 코도 훌쩍 할 새가 없다. 그래도 어린이들이랑 더 빨리 가까워지려면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걸, 하고 싶어하는 걸 해야 한다.
학교살이는 하루 학교에서 같이 놀고 먹고 자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지만 뭔가 특별한 기억이 남는 걸 하고 싶다는 생각인 들어 포장마차를 해보자고 했다. 생각한 것보다 어린이들이 훨씬 좋아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잘 모르지만 특별한, 해보지 않은 공부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이쁘다.
몇 주 전부터 무엇을 팔지, 어떻게 팔지, 팔 것들을 어떻게 채비할지를 어린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묵, 식혜, 떡볶이, 군고구마를 팔기로 하고 재료를 채비했다. 누리샘은 한 해 동안 지구를 아껴 쓰기 공부를 중요하게 삼기로 했다. 마을 장터를 열어볼 밑그림을 그렸는데 마을 장터 때 ‘쓰레기 없는 장터’를 하기로 했다. 그래서 포장마차도 쓰레기 없는 포장마차를 해보기로 했다.
장날은 아침부터 바쁘다. 아침 일찍 나와 떡볶이 장을 만든다. 단맛과 짠맛과 매콤한 맛이 어울리게 하려니 쉽지 않다. 대파와 파뿌리, 디포리와 다시마 양파를 넣어 육수를 진하게 우린다. 떡볶이와 꼬치어묵 두 개에 들어 갈 거고, 두 차례를 하기로 한 터라 큰 들통에 3/4쯤 물을 담으니 무겁다. 어린이들이 오기 앞서 해두고 나니 어린이들이 오기 시작한다.
어린이들은 아침열기 시간에 꼬치어묵을 팔 채비를 한다. 어묵 꼬치를 사서 꼬치어묵을 팔면 꼬치를 여러 차례 쓸 수는 있지만 사서 쓰는 꼬치는 유해물질이 있어서 우리가 대나무를 깎기로 했다. 지난 해날 대나무를 잘라 어린이들이 칼로 다듬을 수 있게 채비를 해 두었고, 달날 정성스레 깎고 사포질을 하고 삶아 두었다. 아침에 어린이들은 꼬치에 어묵을 끼운다. 사람이 여럿이랑 금세 해치운다. 이제 제법 손도 야물어서 알려주는 대로 하는 어린이들이 많아 다시 해야 할 일이 많지 않다. 그 옆에서는 지난주에 만들어둔 엿기름을 믹서기로 갈아 다음에 식혜를 담글 때 쓰려고 채비한다. 꼬치어묵 채비가 끝나고 나서는 떡볶이에 들어갈 양파, 대파, 양배추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큰 반찬통에 넣어둔다. 일을 하는 모습을 보니 언제 이렇게 훌쩍 컸나? 이렇게 멋지게 크는 동안 참 많이도 애를 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뭉클하다.
식혜는 지난주에 만들어 얼려두고, 꼬치어묵과 떡볶이 채비도 잘 됐는데 고구마가 오지 않아 걱정이다. 오늘 배송이 온다는데 글쎄 예정 시간이 저녁 6시다. 기사님 전화번호가 있어 전화를 드리니 양지마을에서 자주 만나 인사를 나누는 기사님 목소리다. 맑은샘학교로 오는 고구마 언제쯤 오는지 늦게 오면 받으러 갈 수 있는지를 여쭈어 보니 3시 무렵이라고 하시고 1시쯤 다시 전화를 해보라고 하셔서 전화를 드리니 3시 전에 갖다 주실 수 있다고 하신다.
점심 시간에 포장마차와 군고구마통을 꺼내둔다. 숯을 만들어 두려고 불을 피우니 불을 찾아 헤매는 불나비처럼 어린이들이 군고구마 통 곁으로 모인다. 조심히 해보고 싶은 걸 할 수 있도록 알려주니 신이 난다.
오늘 낮공부는 3월을 뜨겁게 달군 선거. 그 가운데 가장 핵심인 투표를 하는 날이다. 몇 해 전 글쓰기교육연구회 연수에서 시험지를 나눠주기 전에 시를 쓰게 해보라는 한 선생님 말씀이 기억나 투표에 앞서 후보에 출마한 다섯 어린이에게 시를 쓰게 하니 그 간절함과 떨림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시가 나온다. 물론 너무 떨려 시를 쓰지 못하는 어린이도 있다.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없는 선거 결과에 기쁘지만 기쁜 티를 조금만 내고, 슬퍼하는 동생들과 동무들을 다독이는 모습을 보니 기특하다. 어린이들 마음으로 살면 세상이 좀 나아질거라는 말씀은 진리인가보다.
개표가 다 끝난 뒤 우리는 서로를 달래고 슬픔을 추스르자마자 포장마차 채비를 한다. 떡볶이, 딸기청에이드, 식혜, 군고구마, 꼬치어묵 저마다 맡은 일을 한다. 마침회가 끝나면서 어린이들이 하나 둘 모이고 부모님들도 여럿 오신다. 갑자기 사람이 많아지면서 모두가 정신이 없다. 잔돈 채비를 미처 하지 않은 모둠 선생 때문에 어린이들이 혼란스럽다. 그 안에서 제 일을 찾기도 하고 빈자를 메우기도 하면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포장마차를 마쳤다. 팔려고 채비한 것들이 다 팔리고 나니 한숨이 나온다.
채아가 “힘들었지만 재미있었어요.”하니 공부가 제대로 된 셈이다. 낙선의 슬픔이 컸던 이안이는 언제 눈물을 흘렸나 싶게 이리 저리 계산을 하고 선생 계좌번호를 외우고 다니며 부모님들께 입금하시라고 알린다. 슬픔을 동무들 위로와 일놀이로 극복했으니 더할 나위 없다.
저녁밥은 어머니들이 채비해주셔서 맛있는 햄버거를 먹고 다시 하리공원으로 간다. 포장마차를 끌고 밀고 가려니 쉽지 않다. 하지만 여럿이 무거운 포장마차를 굴리고 간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큰 공부를 하는 것이다. 하리공원에서는 졸업한 형님들도 부모님들도 오셔서 누리샘을 응원하신다. 그 귀한 마음을 배운다.
며칠 동안 채비하고 오늘은 하루 종일 일을 했지만 손에 쥔 돈은... 하지만 공부삼아 한 것이고 어린이들이 재미있어했으니 그것으로 됐다. 우리 동하도 학교에서 편하게 그림 그리며 노는 것을 고르지 않고 하리공원에서 동무들, 동생들 곁에 있는 것을 골라 한 시간 내내 포장마차를 지키는 걸 보니 같이 세월의 힘을 느낀다.
산더미 같은 설거지는 어머니, 아버지들 몫이다. 말씀드리지 않아도 손발이 척척! 손이 많이 가는 교육활동은 어머니, 아버지들 없이 한다고 생각하면 엄두를 내기 어렵다. 작은 교육공동체 힘을, 우리 학교 어머니, 아버지들 오늘도 참 고맙다.
씻고 하루생활글 쓰고 나서도 놀고 싶다고 한다. 얘들아 제발 자자. 하지만 학교살이니 어린이들이 하고 싶은 걸 조금이라도 더 하게 해야지. 어린이들끼리 신나게 놀다가 어린이들이 꼭 하고 싶어하는 불 끄고 숨바꼭질을 30분 한다. 선생이 속아 넘어가는 것이 왜 그리도 재미있는지 보고도 못 본 체 지나가야 제 맛이다.
그렇게 누리샘 어린이들은 특별히 재미난 추억을 하나 만들었을까? 그랬으면 좋겠는데... 잘 자. 사랑해.
첫댓글 선생님 정말 애쓰셨어요 감사해요😭❤️
꼬치까지 대나무를 다 직접 깎은 사진보구 놀랐네요..
밑그림 그리시고 미리 채비하시고
아이들 이끌어주셔서,
좋은 배움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수고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와 존경이란 단어가 떠오르지만 그 말도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느껴지네요.
그리고 선생님 건강도 잘 챙기시며, 함께 재미난 날들 많이 보내요~ 지치시지 않게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어... 재미나게 술술 읽는 중였는데.. 맨 마지막에서 눈물이 눈에 차버렸어요......... 감동여요.... ㅠ ㅠ
포장마차와 선거. 둘다 너무 큰 일들이라 선생님 아이들 모두 힘들었을텐데 좋은 시간들이었을 것 같네요.
함께간 제 회사(?)동료들도 아이들 모습이 너무 행복해보이고 좋아보인다며 요즘시대 이런 아이들과 학교 모습이라니! 놀라워했어요. 사랑으로 아이들에게 참교육 해주시는 최명희 선생님 정말정말 고맙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와.. ㅠ
잘 자. 사랑해...
가 이렇게 눈물이 나네요ㅠ
시험지 보기 전에 시쓰기.. 아이들에게 토닥임이 되었을 거 같아요!
코 훌쩍할 새도 없이 아이들과 사랑을 나누시는 최명희 선생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오!! 글로 또 이렇게 남겨주시니 그날 하루가 감동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선생님 바람대로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으로 사랑으로 마음깊이 남았을 거에요!!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