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 불날
제목 : 나만의 시간과 일찍 학교에 오는 아이들
이른 아침에 학교에 와서 현관문을 열 때면 어둠을 가르고 조금씩 빛이 퍼지는 느낌이 듭니다. 다른 누군가 없을 때 혼자 이 공간에 처음 발을 들인다는 건 뭔가 모험을 떠나는 기분이 들게 하기도 합니다.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학교에 가장 먼저 온다는 사실이 저를 설레게 합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거든요.
철마다 느낌이 다르긴 하지만 7시가 조금 지난 시각에는 아직 어둠이 깔려있어 고요하고 편안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차를 한 잔 끓이고 오늘 아이들과 해야 할 공부 흐름을 머릿속으로 그려봅니다. 그리고 수업에 필요한 준비물을 채비하거나 당장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해 놔야 할 일을 하곤 합니다. 시계 초침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한 교사실에 앉아 있노라면 하루를 새롭게 여는 기운을 공기 속에서 들이마시는 것도 같습니다. 뭔가 이상한 그림 속 풍경 같은 게 아니라 실제 교사실에 앉아 이른 아침에 홀로 느끼는 마음이 그렇습니다.
이렇게 학교에 혼자 있는 시간을 저는 맑은샘학교에 온 첫해부터 지금까지 좋아하고 즐기고 있습니다. 학교란 본디 늘 떠들썩하고 아이들로 활기가 가득 찬데 아무도 없는 이른 시각에 혼자 있을 때는 평화로움이 떠돌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좋습니다. 그래서 학교에 혼자 있다는 것이 외롭지 않고 오히려 편안해서 이 시간을 더 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때와 비슷할 때가 있는데 학교살이하는 날 아이들을 재우고 어둠이 깔리고 고요함이 퍼지는 늦은 밤이 그렇습니다. 학교에 혼자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루가 끝나고 쉼을 찾아 자리에 눕기 전까지 잠시 하루를 돌아보고 호흡을 가다듬다 보면 또 편안한 마음이 들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이른 아침과는 다르게 피곤이 몸을 다 뒤덮기 전까지 남은 나른한 기운을 즐기기도 합니다. 하루를 잘 살았는지, 내일은 뭘 해야 할지 짧게 내다보다 보면 어느새 잠이 들기도 하지요.
학교살이는 자주 하는 게 아니라지만 이른 아침에 홀로 있는 시간은 학교에 나오는 거의 날마다 맞이할 수 있는 저만의 시간입니다. 작년에 채원이 어머니가 아침에 일찍 채원이 짐을 챙겨두고 갈 때가 많았는데 교사실에 있는 절 보고 학교에서 자는 거 아니냐고 자주 물었던 게 기억납니다. 8시 30분까지 출근하면 되는데 한 시간이나 일찍 나오니 그렇게 물어보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겠지요. 왜 그렇게 일찍 출근하느냐고 질문을 받은 때가 더러 있었는데 일찍 나와서 혼자 있는 시간이 좋고 수업 채비도 하고 하루를 여는 마음을 채비를 갖추는 게 좋아서 그렇습니다. 다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제 기운껏 하루를 열고 아이들을 맞을 채비를 할 수 있으니까요. 아침에 일어나면 집에서 더 있기보다는 학교에서 뭔가 하는 게 더 성미에 맞는 것도 있습니다. 학교에 가는 버스 안에서 오늘 해야 할 일과 아이들과 나눠야 할 공부거리를 가다듬는 것이 때로 이런저런 좋은 생각으로 잘 이어져서 그 시간을 잘 쓰는 편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이른 아침을 편안하게 즐기고 하루를 여는 기운을 끌어올리는 시간을 줄어들게(?) 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거의 한 달쯤 된 것 같은데 옹달샘 몇몇 어린이들이 공식으로 학교 문을 여는 8시보다 일찍 학교에 오는 일이 그것입니다. 학교에 일찍 나오는 당번 선생님이 8시까지 와서 학교를 전체로 살피고 부엌살림을 정리하기 때문에 어린이들은 8시부터 학교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8시 전에 제가 이미 학교에 있고 그걸 알고 있으니 그 시간대에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올 수 있게 된 것이에요. 일찍 오는 아이들은 날마다 비슷해서 반갑게 인사 나누고 나면 저는 제 할 일을 마저 하고, 아이들은 자기 기운껏 책을 보거나 놀잇감을 가지고 놀곤 해서 그렇게 방해된다거나 제 시간을 뺏긴다는 느낌을 받진 않습니다. 때때로 일찍 온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같이 놀기도 하니까요. 다만 조금 걱정되는 것은 한 아이가 일찍 오면 다음 날은 다른 아이가 일찍 나와서 어린이 가운데 가장 먼저 온 것을 기뻐하고 다른 아이들에게 자기가 몇 시에 왔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7시 20분쯤에 학교에 온 아이가 있어서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지난주부터 옹달샘 집마다 상담을 하고 있는데 부모님에게서 대체로 들은 이야기는 아이가 학교를 너무 좋아해서 빨리 학교에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집마다 사정이 달라 학교에 나올 수 있는 시간대가 다를 수밖에 없는데 아이들이 지각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다 같은 것 같습니다. 거기에 될 수 있으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나오고 싶어 한다는 게 놀라울 뿐입니다. 학교에 일찍 오고 싶은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학교에 일찍 오는 것 자체가 좋을 수도 있고 일찍 오는 아이들끼리 노는 게 좋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좋아서 일찍 오는 것인지는 알 수 없고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 어쨌든! 아이들이 학교를 빨리 오는 것을 좋아하고 그것 때문에 저녁에 너무 피곤해하거나 학교 공부에 영향을 주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학교 가는 것을 싫어하고 힘들어하는 아이도 많다는데 학교를 빨리 오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라니! 상을 주지는 않더라도 학교를 좋아해 줘서 고맙다고 손뼉을 마주치며 기뻐할 수는 있을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일찍 온 아이들 모습을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7시 40분쯤 교사실로 가방 맨 채 달려들면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며 뒤에서 안기는 건 신윤우입니다. 지난주부턴가 학교에 오는 때가 조금씩 더 당겨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뒤이어 같이 온 지안이도 인사를 하는데 목소리와 표정이 밝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윤우가 학교 빨리 가자고 재촉하는 걸 힘들어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일찍 와서 동생들과 노는 게 좋기도 한 모양입니다. 신윤우와 지안이가 온 다음에 물 한 잔 마시려고 부엌으로 내려가니 남윤우가 들어옵니다. 반찬 통을 가져와서 반찬 통을 내려놓은 다음 저에게 배꼽 인사를 합니다. 저도 물론 같이 배꼽 인사를 하지요. 남윤우는 학교에 일찍 오고 싶어서 9시 전에도 자곤 한다는데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늦은 것 같아요. 8시 조금 전에 온 어린이는 시화입니다. 씩씩한 목소리로 인사하고 먼저 온 아이들과 곧바로 도미노를 가지고 놉니다. 이때부터 조금씩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장난과 놀이를 왔다 갔다가 하면서 학교를 어린이들 기운으로 채워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주와 해솔이가 교사실로 들어서서 인사를 합니다. 유주는 고개를 비스듬하게 숙이면서 인사하는 게 특징이에요. 약간 수줍은 듯한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하는데 볼 때마다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납니다. 제가 부끄럼쟁이라고 그래도 말없이 웃는 유주는 요즘에는 저를 놀리기도 하고 제법 편해진 것 같아요. 해솔이는 오늘도 기운차게 와플블록을 가지고 놀면서 자주 하는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고 손가락을 튕기는 손가락 딱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3.1 만세운동길>이라는 책을 봅니다. 역사에 관심이 많고 궁금한 것이 많은 해솔이라 공부 시간에도 물어보는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오늘 아침 8시를 전후로 해서 온 아이들이 여섯입니다. 그 다음에 누가 어떤 차례로 왔는지는 다 헤아릴 수가 없네요. 어느새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이 오고 선생님들도 출근해서 학교는 새로운 하루를 벌써 열었으니까요. 그래서 이제는 저만의 시간을 포기하고 뭔가 들썩들썩한 가운데 아이들을 맞으며 공부 채비를 마저 하고 아이들을 살펴봅니다. 아이들은 날마다 학교에서 잘 놀고 웃음이 넘치는 게 곳곳에서 보입니다. 그러다가도 하지 말라는 일을 해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장난이 심해지기도 하지만요. 하루를 마치고 아이들이 다 돌아가기 전까지는 어느 곳에서든 시끌시끌하고 뭔가 새로운 일이 일어나는 게 학교입니다. 날마다 지내는 게 비슷해 보여도 슬쩍 보기만 해도 다 다르니 아이들과 지내는 일은 즐겁고 신나는 일이 됩니다.
그러니 저만의 시간도 소중하고 좋지만 아이들과 떠들썩하게 지내는 남은 시간이 더 재미있고 저를 살아나게 해서 더 좋습니다. 아이들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제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는 제가 잘 알거든요.
첫댓글 부지런한 옹달샘 친구들~! ^^
ㅠ ㅠ .. 샘께 죄송스럽고 사알짝 염려가 있었는데 그리 말씀해주셔서 다행이고 감사할 뿐이에요....
‘다만 조금 걱정된다’ 라고 하신 부분은 꼭 살피도록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