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 대안학교 탐방(실상사 작은학교) - 22. 6. 15
2022년 6월 15일 물날 날씨 : 하늘에 줄곧 구름이 잔뜩 끼어있다. 그러다 하늘이 개었다가 흐렸다가 하면서 수시로 바뀐다. 낮에는 두세 차례 빗방울이 제법 굵게 내리기도 한다.
제목 : 중등 대안학교 탐방(실상사 작은학교)
5시 20분에 일어나서 아침을 채비한다. 오늘은 일을 하지 않고 중등 대안학교 탐방으로 실상사 작은학교에서 하루 겪어보기를 하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8시까지 학교에 가기로 해서 5시 40분에 아이들을 깨워 서둘러 아침을 먹인다. 6시 30분에 떠나는데 조금 마음이 급하고 정신이 없다 보니 미리 챙겨논 새참을 가져가지 못했고 학교에 줄 선물로 채비한 매실청 한 병을 깨트리는 실수가 있었다.
한시간 십분쯤 달려서 약속한 8시가 되기 전에 학교에 닿으니 작은학교 학생들이 몇몇 운동장에 나와 있어서 오늘 우리를 안내해 줄 하수용 선생님을 찾으니 교사실을 알려줘서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차를 대접받아 학교를 찬찬히 둘러보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아침부터 작은학교 학생들은 농구를 하거나 끼리끼리 이야기를 나누면서 뭔가 활기차게 하루를 여는 것 같아서 보기 좋았다. 신기했던 건 어떤 학생이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들으며 방방이에서 뛰는 것이었다. 그냥 뛸 때와는 느낌이 어떻게 다른지 다음에 꼭 해보고 싶을 정도 였다. 그리고 또 한가지 특이한 게 운동장에 슬랙라인(서양 줄타기) 줄이 매여 있다. 그 줄 위를 제법 익숙하게 타는 학생이 있어 호기심이 든 시우도 여러 번 타면서 균형을 잡고 길게 걸어보려고 한다. 도훈이는 아직 낯선 곳이라서 그런지 한 번 해보라고 선생이 권유해도 움직일 생각을 하질 않는다.
8시 20분쯤 강당에 모든 식구가 모여 아침열기 같은 것을 하는데 여는 노래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빨주노초파남보’를 손뼉 치며 불러서 반가웠다. 우리 학교 소개 시간이 잠깐 있어서 학교 소개와 작은학교에 오게 된 까닭을 들려줬다. 아침열기가 끝나고 학생들은 곳곳으로 나뉘어 청소를 한다. 날을 보니 흐렸다가 갰다가 하면서 자주 바뀐다. 작은학교는 이번 주가 집중 수업 기간이라 여러 주제로 나뉘어서 수업을 하는데 우리는 생태 뒷간 만드는 집짓기 수업을 같이 하기로 미리 이야기되어 있었다. 9시가 되어 자재를 짐차에 싣는 일부터 시작했다. 걸어서 2~3분 거리에 기숙사가 있는데 이름이 별장과 달장이라 붙여져 있어서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 별장과 달장이 있는 바깥 한 편에 각각 생태 뒷간을 한 동씩 짓고 있었다. 이틀 전부터 시작했을 텐데 벌써 기초 작업이 다 끝난 채여서 역시 중, 고등학생들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선생이 뭐라 이야기하기 앞서 벌써 작업 도구를 챙기고 자기들이 오늘 해야 할 일을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하긴 이런 모습은 작년 볍씨학교 제주학사 학생들에게도 똑같이 느꼈던 것이긴 하다. ‘선생과 부모의 손길이 가기 앞서 스스로 먼저 나서서 할 수 있는 힘은 6학년 시기에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일까?’라는 생각이 잠시 스치고 지나갔다. 너무 앞서서 욕심을 부리면 안 되지만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기대하는 마음이 커질 때가 더러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
두 개 모둠으로 나뉘어 일을 하기 엎서 간단하게 작업회의를 했다. 데크, 문틀, 루바 작업으로 일이 나뉘어졌는데 이걸 실제 짓기 전까지 어떤 공부를 했고, 또 다른 목공 공부를 했을까 궁금해졌다. 작업회의를 해서 도훈이와 시우는 오늘 루바를 박는 일을 맡아서 해보는 것으로 이야기가 되었다. 그래서 먼저 치수를 재고 치수에 맞게 루바를 재단하는 것으로 일을 시작한다. 절단기가 있었지만 우리가 다루기엔 위험한 것이라 도훈이와 시우가 직접 할 수 있는 도구를 써서 힘을 합쳐 일했다. 오랜만에 하는 톱질이라 어색하고 쉽지 않아 보였는데 하다 보니 예전에 하던 감각을 찾아서 금방 익숙하게 잘 해낸다. 마침 시우와 같은 어린이집을 나온 형의 형이 시우를 알아보고 틈틈이 도움말을 줘서 더 편하게 하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낯설어하고 일하기 싫어하던 도훈이도 재미를 붙이고 열심히 일을 하게 되었다.
10시 30분에 처음으로 쉬는데 도훈이와 시우는 그 전에 한 차례 쉰 게 있어서 쉬지 않고 더 일을 하겠다고 할 정도로. 처음 몇 번만 선생이 직접 해 주기도 하고 보조로 도와주기도 했는데 나중에는 둘이서 합을 맞춰 일하는 게 자연스러워지면서 12시가 될 때쯤에는 한쪽 벽면을 다 박을 수 있었다.
12시 30분이 되어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내려가니 요리를 맡았던 학생들이 채비한 것은 빠에야와 감자 오믈렛, 기본 밑반찬이다. 다른 중등 대안학교에 몇 곤 다녀봤지만 이렇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음식이 나온 곳은 처음이어서 신기했다. 더군다나 맛도 있어서 도 어떤 맛난 음식을 만들었을까 싶기도 했다. 커다란 사발에 반찬과 빠에야를 담아서 먹는 게 이상했던지 도훈이는 이렇게 먹는 게 맞냐고 묻는데 로마에 왔으면 로마 법에 따라야 한다고만 말해줬다. 먼저 다 먹은 학생이 물을 받아서 그릇을 씻어 마시는 걸 보고 도훈이와 시우도 자연스럽게 따라서 발우공양을 하게 된다. 사실 이번에 학교에 탐방을 오면서 학교에서 생태 뒷간을 쓴다는 것만 이야기해줬지 발우공양을 한다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 그냥 자연스럽게 작은학교가 어떤 학교인지 겪어 보자는 뜻이었는데 다행히 거부감 없이 잘 끝냈다. 두 아이를 보니 처음 해보는 것일 텐데도 얼굴을 찡그리거나 싫다는 말 없이 그릇을 깨끗하게 비우는 게 놀랍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학기 싫은 게 많고 힘들다는 표현을 자주 하긴 하지만 언제 어느 때, 어디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잘 알고 있어서 그렇다.
점심 먹고 2시까지 쉬는 시간이라고 해서 툇마루에 앉아서 형들과 누나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구경하며 쉬었다. 2시에 다시 일을 하기 시작해서 다른 쪽 생태 뒷간 벽면을 쌓는 일을 하다가 3시 30분쯤 한 차례 쉬면서 새참을 얻어먹었다. 그 사이 빗방울이 떨어지기도 하고 날이 개기도 하면서 시시때때로 날이 변하는 건 아침나절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4시 50분쯤 두 번째 벽면 쌓는 일을 끝낼 수 있었다. 5시에 일을 마친 다른 형님들과 모여서 마음 나누기를 하면서 하루 겪었던 소감을 나누는데 두 아이 다 재밌었다고 한다. 먼 길을 되돌아가야 해서 뒷정리를 끝까지 도와주지는 못하고 오늘 우리를 줄곧 알게 모르게 도와주신 하수용 선생님 배웅을 받으며 하동으로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에 작은학교에 다닐 수 있겠냐 물었더니 시우는 ‘아니요, 과천이 더 좋아요.’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도훈이는 ‘기숙사에서 지내는 것만 아니면 괜찮아요.’라고 한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낮까지 9시간이나 낯선 곳에서 있었고 대부분 일을 하면서 지낸 것이라 두 청소년이 정말 애썼다. 작은학교에 있는 형님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하루 동안 가깝지만 조금 먼 듯 함께 지내며 많은 걸 보고 배우기도 했을 것이다. 어떤 앞날을 꿈꾸고 그리는가는 자기 의지도 뚜렷해야겠지만 좋은 본보기도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오늘 작은학교에서 만난 형님들은 유쾌하고 멋있었다. 자기 일을 스스로 찾아 만들 줄 알았고, 동무와 알맞게 일을 같이 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 진지함을 가지고 일에 빠져드는 모습이 돋보였다. 당장 확신할 순 없지만 2~3년 뒤에는 시우와 도훈이도 저렇게 되지 않을까? 이번 일놀이 자연속학교에서 보여준 모습을 통해서 가까운 미래를 내다보고 기대해 본다.
7시가 되기 전에 악양에 들어서서 휴가를 받아 과천으로 올라가는 최명희 선생님을 배웅하고 올라오니 저녁 시간이 늦었다. 오늘 하루 귀한 경험과 기억에 남을 하루를 안겨준 실상사 작은학교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정말 고맙고, 일을 줄곧 해야 했는데도 불평 없이 재미있게 해 준 우리 멋진 도훈이와 시우가 고맙다. 오른 하루 정말 충실하게 잘 살았다.
첫댓글 실상사에서 율브라더스를 만나고 왔나봅니다. 그리운 사람들이 있는 그 곳에 늘 마음만 보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