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게 지내는 것처럼 - 22. 6. 16
2022년 6월 16일 나무날 날씨 : 하늘이 맑고 낮에는 덥다. 일하니까 땀이 등으로 흐를 정도다.
제목 : 늘 그렇게 지내는 것처럼
여느 날 아침처럼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미리 아침밥 채비를 하고 5시 40분에 아이들을 깨운다. 처음에는 멍하니 앉아서 있다가 “이제 채비하고 가자”라는 말에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볼일도 보면서 나갈 채비를 갖춘다. 어느덧 아흐레째, 하동 악양에서 날마다 매실을 따는 일이 익숙해진 만큼 여기서 지내는 것도 자연스러워졌고 몸이 저절로 그렇게 따라가게 된다. 어제 생각보다 일을 많이 한 셈이라 아침에 많이 피곤해할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고 자기 기운껏 일을 잘한다.
오늘은 왕규식 선생님이 베트남 일꾼을 네 분 구해서 매실을 딴다고 했다. 지난 주에는 알이 작았던 매실이 많이 익기도 하고, 너무 익어서 떨어지는 매실이 많아져서 빨리 걷어야 하긴 한다. 지난 주말에 매실 원정대가 한 차례 훑고 지나간 터라 이제 아이들 손에 닿는 곳에는 매실이 그다지 많지 않다. 그래서 매실 따기가 쉽지 않고 자연스레 상자를 채우는 양도 적다. 그러다 보니 매실 따는 게 힘들어지고 또 재미없어지기 시작한다. 자기 기운껏 따고 쉬면서 특히 둘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두 시간을 일하니 선생이 한 것과 합쳐 세 상자를 채웠다. 매실을 많이 피곤해하고 힘들어해서 아침 먹고 좀 자자고 했는데 막상 아침 먹고 나니 아이들은 그냥 놀고 싶은 마음이 더 큰 모양이다. 아침에 해야 할 일을 마치고 고양이 보러 나가더니 한참을 들어오질 않는다.
그래서 그냥 놀게 내버려 두고 피곤한 몸을 뉘어 쉰다. 점점 피로가 쌓인 게 몸으로 느껴지는 때라서 쉴 수 있을 때 잘 쉬어야 한다. 날마다 아이들 밥 해 먹이고, 뒷정리하고, 미리 밥 채비에 부엌 청소, 빨래까지 돌아보면 늘 해야 할 일이 있고 제때 챙기지 않으면 하나씩 헝클어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점심을 챙겨 먹은 뒤에는 섬진강으로 간다. 이제껏 하동에서 있으면 한 차례만 갔던지라 과천에 올라가기 앞서 한 번은 더 놀아야겠다 싶어서 가기로 한 것이다. 평사리 공원으로 가니 지난번과 다르게 바람도 불지 않고 적당히 해가 뜨거워서 몰놀이 하기에는 더없이 좋다. 한 시간쯤 몰놀이를 하고 돌아와서 새참을 먹으니 또 일을 나가야 한다. 아이들은 일을 안 나갔으면 하는 마음이 크지만 여기에 온 목적이 뚜렷하니 일을 해야 할 때 해야지 별 수 있나.
산으로 올라가니 베트남 일꾼 네 분이 부지런히 일을 했는지 아이들이 딸 매실이 더 적어졌다. 눈에 잘 안 보이는 매실을 찾아서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한두 알씩 모아서 상자에 쏟는데 양이 많지는 않다. 아침나절과 마찬가지로 2시간 채워서 일했는데 선생이 한 상자와 좀 더 한 것과 두 아이가 한 것을 합쳐서 겨우 한 상자를 채워서 두 상자를 한 셈이 되었다. 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 기운껏 애써서 하라고 했고, 힘들다고, 싫다고 짜증을 내지 않으니 그것 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여겨진다.
잠집에 돌아와서 아이들이 해야 하는 일은 날마다 같다. 서로 일 나누기 해서 설거지, 방 청소, 그리고 자연속학교 일지와 작업일지, 하루생활글 쓰기다. 때에 따라 시간이 조금 달라지긴 하지만 대개 8시 40분에 마침회를 하니 그대까지 시간을 알맞게 나눠 해야 할 일을 제시간 안에 끝내면 그 뒤로는 자유시간이다. ‘해야 할 일을 제시간 안에 책임 있게 하기’를 이번 자연속학교에서 애써서 실천하고 있는데 조금 몸에 붙어가고 있는 것 같다.
8시쯤 시우 아버지가 오셨다. 지난 주말에 아이들과 나무날에 내려오겠다고 약속한 게 있어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힘들게 내려온 것이다. 본디 계획은 이틀을 같이 지내고 과천에 올라갈 때 같이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정이 생겨서 내일 아침 9시에 다시 올라가야 한다고 한다. 얼마 같이 있지도 못하는데 아이들과 한 약속을 꼭 지켜야 한다며 먼 길을 운전해서 내려온 부모의 마음이 위대하고 멋지게 보인다.
나도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부모가 되어보질 못해서 잘 모르겠고 자신할 수가 없다. 선생인 처지에서라면 마찬가지로 약속은 지켜야 한다. 아까 낮에 섬진강에서 놀 때 도훈이가 “노쌤, 달리기 한 번 해요.”라고 했을 때 “나중에”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이어서 도훈이가 하는 말이 “어른들은 나중에 하자고 했다가 안 하던데.”였다. 좀 쉬고 싶은 마음에 무심코 “나중에”라고 말한 것이데 부탁을 들어주기 싫거나 귀찮아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처럼 느껴질 것 같아 “나는 한다고 한 약속은 지켜.”라고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실제 돌아가기 앞서 시우와 같이 모래판 달리기 시합 두 판을 했다. 어린이들과 한 약속은 그것이 어떤 마음에서였건 그 마음과 처지를 살펴 들어주려고 애쓰는 것, 그것이 어른이 책임져야 할 몫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서라면 나도 힘듦과 번거로움을 제치고 내려와야 한다면 내려오겠지.
9시 30분에 아이들을 재우고 시우 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10시 30분이 되었다. 오늘만 지나면 하동에서 일과 놀이로 온전히 지내는 날이 하루 남았다. 지금껏다치거나 크게 아픈 데 없이 씩씩하게 잘 지내준 아이들이 고맙다. 내일 하루 부지런히 일하고 마무리를 잘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