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늘 입학설명회에서 해야할 단 한 가지는 행사 사회였다.
뭐 어떻게 되겠지, 하고 아무 생각 안 하고 있다가 오늘 아침에 오프닝 멘트를 뭔가 구상 해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만 뒀다.
역시나 뭐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이 올라왔던 것이다. (귀차니즘 대잔치)
이번 행사는 누가 큐 사인을 주면 그 시점에 누가 써놓은 사회자 대본 읽는 게 아니다. 이 세가지가 통합된 일이었다.
나는 대부분의 경우 멍석 깔아놓으면 그 위에서 노는 사람(발표하는 사람)의 처지였다.
할 말이 머릿속에 대충 그려져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진행요원 일과 경계가 없다는 점이 꽤 어려웠다.
지금까지 사회를 도맡아 주셨던 민주아버지와 우리 기획사 사장님(으뜸일꾼)이 직접 발굴한 신예 도현아버지가 어떻게 해서 대단한 건지를 내가 직접 경험하면서 깨달았다.
누가 큐 사인만 줘도 대본은 즉석에서 적당히 둘러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때 그때 상황에 맞게 들어오고 나가는 것은 정말 노하우가 필요한 문제였고, 오늘 바로 그 역량을 길렀던 것 같다. 나도 나의 주 사회활동 영역에서 이런 상황을 처리할 일도 더러 있을 것이라 예습이 됐다.
다행히도 나의 어설픈 부분은 노학섭 선생님과 한주엽 선생님이 도와주셨다.
학부모로서 선생님들을 보다가 선생님들과 '실무'를 같이 해보니 정말 새로운 느낌이다.
두 선생님이 정말 스타일이 다른데, 노학섭 선생님은 '지금쯤은 이런 이런 안내를 해주셔야 하는 거에요''지금 여기서 이 일 하고 계시면 안되고 저기 가서 이런 안내를 해주셔야 해요'하고 웃으면서 귀띔을 해준다. 반면 한주엽 선생님은 그 시점을 기다리지 않고 들어와서 아마도 내가 했어야 할 말을 대신 처리해주고 있다.
선생님들은 일년이면 입학설명회만 두번 이상? 있고 배움잔치 등 이런 종류의 행사를 치르는 일이 정기적으로 꾸준히 있으니 2-3년만 되어도 이미 풍부한 경험을 가지게 되시는 것 같다. 같이 일을 해보니까 이 분들이 뭘 잘하시는지가 더 잘 보였다.
또 한가지는 전정일 선생님이 얼마나 발표를 잘 구성하고 답변을 잘 하시는지 보게 된 것이다.
사실 맑은샘 식구라면 전정일 선생님 발표를 정말 '물리도록'(?) 많이 들을 수가 있는데, 부모입장에서 들을 때와 이 행사를 진행하는 사람 입장에서 들을 때의 느낌이 너무 달랐다. '저 질문은 대답하기가 꽤 까다롭겠다' 싶은데 너무나 설명을 잘 하신다.
노학섭, 한주엽 선생님한테서도 실감했지만 전정일 선생님 역시 이 일을 오랜 세월동안 반복해서 해오시면서 내공이 단단하게 쌓여계신 것을 매우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하긴 같은 주제를 줄곧 다루다보면 그 사안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질문은 대체로 정해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어디 웹사이트 같은데 가보면 질문하기 코너에 '자주 묻는 질문'(FAQ)란이 따로 있는 것일테다. 자주 들어오는 질문이나 민원?에 경험이 쌓이다보면 대응능력이 좋아질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전정일 선생님은 이제 사람 키우는 일에 좀 더 신경을 쓰시면 좋겠다. 그래야 선생님도 운신의 폭이 더 넓어지실 것 같다.
교사회 소개 시간은 교사가 각각 자기가 가진 역량과 특징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었다. 한주엽 선생님이 15분 정도 소요될 것 같다고 하셨는데 25분은 걸린 것 같다. 선생님들이 자신이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과 특장점을 아주 야무지게 설명을 잘 하셨다.
한주엽 선생님이 "제가 교사진 중에 제일 젊고요"할 때 진짜 속으로 빵 터짐... 그건 관점에 따라 약점이 될 수도 있어요 ㅋㅋㅋ 근데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주는 데는 한몫했던 것 같다. '너스레 떨기' 파트는 진짜 이분을 따라올 자가 없음 ㅋㅋㅋ
노학섭 선생님은 분명 2019년에 맑은샘에 입성했을 때 말수가 적고 결코 화려한 언변을 자랑하는 분은 아니었는데 4년 동안 굉장히 성장하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씀을 너무 조리있게 잘 하심... 행사 진행 잘 하시는 건 전부터 알고 있었고.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구나 싶었다. 내가 잘 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더라도 그 세부 요소 안에 내가 잘 못했던 것들이 포함된 경우가 있는데 그냥 피하지 않고 하다보면 어느 순간 그걸 그냥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있는 것 같다.
이야...진짜...노학섭...선생님... 마이 크셨어요~~
오늘 설명회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이한주와 남민주, 두 청소년들의 모습이었다.
이 친구들의 답변이 좀 부족하다 싶으면 내가 채워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두 청소년들 모두 너무나 의젓하고 지혜롭게 잘 했다.
이 이야기를 입학설명회 오신 손님들께만이 아니라 우리 식구들 모두 있는 자리에서도 들려주면 좋겠다 싶을 정도였다.
나는 저 나이 때도 저렇게 못했을 것 같고, 지금도 부모 입장에서 말해달라고 하면 저렇게 조리있게 설명하기 어려울 것 같다.
나는 오신 분들께 이 친구들이 얼마나 재능이 큰 아이들인지 추가 정보만 조금 드렸다. 사회 보는 사람이 손댈 데가 없는 완벽한 시간이었다.
넓힌운영모임 구성원들(교장1+교사대표2+일꾼)이 함께 준비하는 행사는 입학식 이후로 처음이었던 것 같다.
외부손님을 치러야하니 은근 조심스러워지는데 그 긴장을 짬짬이 1-2분씩 비는 시간에 농담따먹기 하면서 보내는 것도 진짜 재미있다.
당연히 일 배우는 것도 재밌고.
행사는 무사히 마무리 됐고, 오늘 행사의 최종 결실은 입학 아동의 수로 판가름 날 것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을 해본다. 숫자가 그렇게 중요한가?
맑은샘학교가 18년? 정도 이어오면서 여러가지 안팎의 여건 변화를 다 겪어왔다. 학생수가 많으면 많은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다 어찌 사는 방법이 다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끼리 재미있게 잘 지내고 있는가 하는 문제일 수도 있다. 그냥 재밌으면 됐다고 생각한다. 손님들도 재미있게 일하고 있는 우리 기운과 동조하셨는지 늦게까지 남아 적극적으로 질문해주시는 분들도 많았다.
우리에게서 매력을 발견했으면 오시겠지. 다른 곳이 더 매력적이면 그리로 가시겠지. 포기하지 않고, 욕심도 내지 않고, 이 자리에서 이미 충분히 만족했고 손님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렸다.
나는 바깥에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몰랐는데, 손님들 음식 채비하고, 아이들 돌보아 주시고, 청소해놓고, 여기저기 숨어서 애써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이분들이 도와주셔서 우리가 큰 행사를 안정적으로 치를 수가 있었다. 나에게 값진 경험을 선사해주신 입학설명회의 모든 관계자들과 집에서 저마다 '잘 되고 있으려나' 궁금해하셨을 맑은샘 가족분들께 감사드린다.
첫댓글 애쓰셨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상세히 기록해 주시니 좋네요~^^
애쓰셨어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