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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하여 “어찌하면 주역점(周易占)을 잘 칠 수 있을까?”의 이론적 설명이다.)
우선은
[요리]에서 그 요리에 적합한 식재료(食材料)를 잘 마련해야 한다.
이는 [주역점]에서 점의 사안(事案)에 대하여 득괘(得卦)를 올바르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요리]에서 솜씨를 발휘하여 음식을 맛나게 잘 만들어야 한다.
이는 [주역점]에서 나온 괘상(卦象)을 사안(事案)에 맞게 잘 풀이 해야하는 것이다.
[주역점]에서 득괘(得卦: 괘를 얻는 것)를 올바르게 한다는 것은?
[요리]에서 식재료 마련이 바로[주역점]에서 올바른 득괘(得卦)라고 했다.
식재료가 부실하면, 하고자 하는 요리가 엉망이 되 듯, 주역점에서 득괘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점 자체가 엉망이다.
어떻게 하면 좋은 식재료를 마련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올바른 득괘를 할 수 있느냐와 같다.
- 먼저 주역점을 치는 요체(要諦)는?
무심(無心)이다. (무공선생의 주역이론 27 참조)
무위무사(無爲無思)란 무심(無心: 자아의식이 사라진 상태)이다.
주역뿐 아니라 동양의 고전은 무심을 말하지 않는 것이 없다. 장자의 심재(心齋). 불가의 명경지수(明鏡止水). 등은 매우 친숙한 무심의 비유이다.
무심을 얻으려면 자연에 접근하야 하고, 자연에 접근하고자 사람들은 명상(瞑想)에 젖는다.
심리학에서 접근해 보면 무심에서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현상이 우연의 세계이고 주술의 세계이다. 이러한 세계는 미추선악(美醜善惡)을 벗어나 매우 인간적인 세계이다.
또 무심에서 동시성원리, 즉 상응(相應) 또는 감응(感應)으로 연결된다.
거기에는 깊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어떤 메시지가 개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 결과 괘상(卦象)을 얻게 되고, 괘상의 상징은 영혼의 감응에 따라 배열된 현실의 사물에서 온 것이다.
주역점에서 “무심하게” “무심결에” “의도 없이” 득괘하는 행위는 한마디로 우연의 개입을 위해서다. 의식이 개입하면. 다시 말해 무심하지 않으면 영혼의 전언(傳言)을 감지할 수 없게 된다.
- 식재료를 살 수 있는 돈(Money)에 해당되는 것이 득괘(得卦)를 할 수 있는 무심(無心)이다.
좋은 식재료의 마련하려면 우선 재료를 살 돈이 충분해야 한다. 그리고 좋은 재료가 많이 있는 시장에 가야하며, 또 재료를 잘 고를 수 있는 안목도 필요하다.
여기서 식재료를 살 돈은 주역점의 득괘를 함에 있어 무심의 경지요,
좋은 식재료가 많은 시장은 득괘법의 선택이며, 안목은 득괘 요령이다.
그런 다음에 요리를 잘하는 비법은 바로 괘상을 점의 사안에 맞게 잘 풀이하는 비법이다.
그리고 만든 요리를 잘 차려 내어 놓으면 손님이 맛있게 먹어 주는 것이 바로 주역점의 활용. 즉 점사(占辭)에 맞추어 잘 대처함이다.
- 그럼 득괘는 어떻게 해야 올바르게 잘 할 수 있는 것일까?
앞서 말한 주역점을 치는 요체로써 무심이 식재료구입에 필수 요건인 돈에 해당한다.
바로 무사무위(無事無爲). 즉 무심(無心)이다. 무심은 망아(忘我)며, 나아가 무아(無我)이다.
[무심이란 잠시나마 시공(時空)을 잊는 것]이다. 지금 시간이 몇 시인지, 얼마나 흘렀는지, 또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모두 잊은 무의식의 상태이다.
그럼 어떻게 그런 상태에 몰입할 수 있는가?
사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오로지 무념에 힘쓰지만 끝내 생각을 없앨 수는 없다. 그러기에 다만 지나간 생각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의 생각을 맞지 아니하며, 지금의 인연에 따라서 일처리를 한다면 자연히 점차 무념무상의 경지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기에 여기서 무심에는 일시적이란 단서가 붙는다는 점을 명기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무심(無心) 즉 무아의 경지에 들고자 한다면 명상(冥想)을 하라”고 한다.
그런데 말이 쉽지 그게 쉽지가 않다.
보통사람들이 명상을 한답시고 눈을 감고 꼿꼿이 한참을 앉아 있어봐야 온통 잡생각만 나고, 생각이 좀 없어질라치면 스르르 졸음이 온다. (억지로 졸음을 쫒느라 죽비를 친다)
그래서 불교의 참선과정에서는 화두(話頭)를 주어 풀어 보라고 하지만, 그것 역시 자칫 만 가지 자욱한 번뇌 속으로 들어가기 십상이다.
이는 무심(無心)의 메커니즘을 모르는 소치가 아닐까 한다.
앞에서 무심을 돈으로 비유했다.
돈이란 무조건 벌고 싶다고 해서 벌리는 것이 아니다. 먼저 돈의 메커니즘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돈이란 가치에 대한 지불수단이다. 따라서 돈을 불러들이고 싶다면 가치의 생성이 필수 요건이다. 가치를 제공해야 상응한 돈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단지 명상을 하라고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마치 낚싯대만 주면서 고기를 잡아 보라고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초보자에게는 그리해서는 안 된다. 미끼도 주고 또 기본적 낚시방법을 구체적으로 쉽게 알려주어야 한다.
이 미끼에 해당되는 것이 바로 호흡(呼吸)이다.
아래공식이 성립된다.
명상-> 낚싯대. 호흡-> 미끼. 기의 운행방법-> 낚시 요령. 무심->낚은 물고기.
무심(無心)에 들어가는 단계가 바로 두흉공(頭胸空)이다.
즉 머리와 가슴을 비우는 작업이다.
참고로 구도(求道)를 위해서는 집욕무(執慾無: 집착과 욕심을 없앰)와 더불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무공지도(無空之道)이다.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라. 쉽게 예기해서 호흡(呼吸: 들락거림의 음양)이 구도(求道)의 핵심임을 말한다.
두흉공에 앞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무심(無心)이란 마음의 이완상태를 갖기 위해서는 먼저 자율신경조절 훈련이 필요하다.
인체의 자율신경의 조절은 호흡(呼吸)만이 가능하다.
호흡에 심파(心波)를 실어 기(氣)의 운행이 필요하다.
즉 호흡에 내 념(念: 생각)을 가볍게 얹어 호흡과 같이 움직이며 들락거린다.
하다보면 차츰 일치되어 마치 기(氣)가 순환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호흡에는 두 가지가 있다. 뇌호흡과 단전호흡이다.
* 뇌호흡법(腦呼吸法)
나는 “ 호흡 뇌세탁법”이라 이름 붙였다.
즉 머리가 세탁기이고, 뇌란 내용물은 빨래꺼리이다.
미심(眉心: 양 눈썹 사이)을 통해 기(氣)를 불러들여 전두엽을 지나 후두엽에 적셔 행군다음 토해낸다.
이때 세제 역할은 침(玉水)으로 한다. 혀를 입천장에 바짝 붙여 침을 모우고 기를 토해 낼 때 조금씩 삼킨다.
다시 미심를 통해 기(氣)를 불러들여 뇌 전체를 적신 다음 내용물을 회전 시킨다.
뇌가 깨끗해지면서 머리가 빈 듯 맑게 된다.
* 단전호흡법(丹田呼吸法)
기초단계: 호흡은 길고 가늘게 그리고 부드럽게 하되 단전까지 밀어 넣는다. 단전에 손을 얹어 아랫배의 부풀림과 내림을 느낀다.
다음 단계: 주천(周天), 즉 기(氣)를 의념(意念)으로 끌어 올려 돌린다.
자율신경의 조절이 된다는 입증은 생시와 꿈을 구분하게 되는 점이다.
보통 생시에는 꿈이 아니다 는 것이 확인 되나, 실제 꿈에 생시가 아니다 는 것은 구분이 되지 않으나, 자율신경이 조절되면 꿈을 꾸면서도 아 이건 꿈속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다.
뇌와 단전 두 호흡이 끝난 다음 머리와 가슴을 편하게 이환시킨다. 이 과정이 두흉공이다.
머리와 가슴이 비어 맑아지면 자연 진공묘유(眞空妙有)가 일어나니 그 시점에 득괘(得卦)로 연결한다.
[요리]에서 솜씨를 발휘하여 음식을 맛나게 잘 만드는 것에 비유하여
[주역점]에서 나온 괘상(卦象)을 사안에 맞게 잘 풀이 하는 것이라고 했다.
- 그럼 주역점을 잘 풀이 하려면 어찌 해야 하는가?
1. 삼요(三要)와 십응(十應)의 관찰이 필요하다.
이는 인간사 오랜 경험에 의해 깊은 이치를 깨닫는 것으로 인간의 영적 지혜이다.
점(占)을 칠 때에 고요히 듣고, 조용히 생각하면서 모든 사물의 이치를 보면 그 기미(조짐)가 나타나니 따라서 자연스럽게 길흉화복을 알 수 있다.
2. 64괘 384효의 괘상 및 문자의 파악에 능통해야 한다.
주역에서는 팔괘(八卦)가 아래위로 겹쳐져 이룬 괘(卦)가 64개(8*8)가 있고, 그기에 따른 효(爻)가 384개(64*6)가 있어 이들 괘의 부호와 그 자리(動爻)가 모든 것(萬物)의 의미를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
그기에 붙여져 있는 말, 즉 괘사(卦辭). 효사(爻辭). 단사(彖辭). 상사(象辭). 계사(繫辭). 십익(十翼) 등은 도움말에 불과하다. 물론 그 중에서 괘사. 효사는 대표적 도움말인 셈이다.
괘는 부호화되어 있고, 그 말(辭)도 또한 상징화 되어 있다.
그러기에 주역(周易)의 해석에서는 답(答)이 무수히 많다. 아울러 틀린 답도 많다.
답이 무수히 많은 가운데 적답(適答: 적절한 답)이면 족하다고 할 수 있다.
원래 괘(卦)란 걸쳐 떠본다는 뜻이다.
인생의 삶에서 어떠한 진리를 찾기 위해서라든지, 또는 어떤 어려운 문제(사안:事案)가 생겨서 그 해결책을 자연(天.地.人)으로부터 얻고자 할 때 음양(陰陽)부호인 주역의 괘에 걸어서 떠보는 것이다.
따라서 오직 그기에 담겨져 있는 의미를 깊게 음미하고 궁구하여 적절한 것을 스스로 얻어내면 그 것이 적답이요, 적답이 나중에 맞아 떨어지면 그 것이 정답(正答)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적답은 무수히 많을 수가 있다. 그만큼 주관적인 해석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주역의 해석에는 정해진 모범답안이 없다.
역(易)이 원래 변화가 그 상징이듯 그 뜻의 해석은 시공(時空)에 따라 차이가 생기며 그 변화를 요구한다.
괘가 같아도 시기와 상황이 다르면 풀이도 달라진다는 점에서 그 변통성을 중요시 한다.
즉 주역을 다루는 핵심은 한마디로 [거시기]와 [머시기]를 찾는 작업이다.
3. 물상의 대입에 능해야 한다. 그러기위해 기본적으로 설괘전과 잡괘전은 훤히 꿰고 있어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사물들은 저 팔괘(八卦)의 물상(物象)들이다. 원리적으로 그렇다.
오행(五行)이 그렇듯이, 존재하는 모든 것은 팔괘의 분류에 소속될 수 있다. 이전의 사물은 물론이고 앞으로 존재 할지도 모르는 사물들 역시도 팔괘 안에 자기자리가 있다.
주역에 물상을 설명한 설괘전과 잡괘전이 있다. 대부분 소박한 상징들이고, 어떤 것은 좀 이상해 보이기도 한다. 또 시대적으로 보아 매우 오래된 상징들이다. 그러나 그 상징이 자의적이거나 두서없이 지어낸 것이 아니라, 일정한 근거가 있다는 것에 관심을 집중해 보라.
또 주역이 작동하는 방식은 기본적인 상징의 함축성을 토대로 하여, 상징 자체의 변환과 상징들 간의 조합에서 파생되는 새로운 상징적 의미를 수 없이 내포하고 있다.
주역점을 잘 치려면 기본적인 물상(物象)을 설명한 설괘전(說卦傳)과 잡괘전(雜卦傳)을 수없이 읽어 가급적 전부를 머리에 넣어라. 이는 주역이라는 비밀의 문(암호 해석문)을 열 수 있는 마스터 키(Master Key)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곳에는 세상의 만물이 팔괘에 대입시켜 다 표현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기본적 상징을 잘 결합시켜 조화를 이룰 줄 안다면 거의 무제한의 상징적 장치와 그 의미를 파악할 수가 있을 것이다. 기본의 공식적 핵(核: 알갱이)을 알면 다 풀 수가 있다. 끓인 국을 통째로 마시지 않더라도 한 숟가락으로 간을 보면 알듯이, 실제 자연은 이런 방법을 쓰고 있다.
수없는 색깔도 그 근원은 삼원색의 연출이고, 음악의 변화무상한 음률도 기본적인 음계의 조화에 있는 것이다.
4. 주역점의 활용에 익숙해 져야 한다.
생활화하고 많이 숙달시켜 익숙해져 달인의 경지에 가야 한다.
* 무공지도(無空之道)의 집욕무(執慾無)와 두흉공(頭胸空)이란?
두흉공에 대하여는 앞서 설명하였다.
집욕무란 집착과 욕심을 없애는 도심(道心)을 말한다.
주역(周易)의 천뢰무망(天雷无妄)의 괘(卦)에서 나온 무망의 도(道)로서 “人道를 행하라”는 것이다. 즉 “하늘의 거짓 없는 마음을 본받아 그대로 실현하라”는 것이다.
하늘의 거짓 없는 마음을 본받아 실현하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늘과 땅이란 태(太) 음양을 대신해 소(少) 음양인 부모(父母)를 통해 생(生)을 주고, 또 사(死)까지 부여하여 음양을 내린다. 즉 세상에 내 보냈다가 원위치로 되돌아오도록 했다. 양이 끝나면 음으로 되돌아오도록 했다.
그러니 하늘의 거짓 없는 마음이란
1. 세상 두루 구경하고 돌아올 때 아무 생각(미련)없이 돌아오라.
옛 말 에 이르기를
“이 몸이 태어나기 이전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를 생각해 보고, 또 이 몸이 죽은 후에는 어던 모습이 될까를 생각해 보라. 그러면 온갖 생각이 재처럼 식어지고 한 조각 본성만이 고요히 남아 저절로 만물을 벗어나 창조 이전의 세계에서 노닐게 되리라” 고 했고.
또 “이룬 것은 반드시 무너지게 됨을 알면 이루려는 마음이 반드시 지나치게 굳지는 않을 것이며, 산 것은 반드시 죽게 됨을 알면 삶을 지키려는 일에 반드시 너무 애쓰지는 않게 될 것이다.” 고 했다.
2. 세상의 모든 물건은 이용(사용)하고 그대로 두고 빈손으로 돌아오라.
(물론 김수한 추기경 같은 성인(聖人)은 가진 것까지 남에게 주고 돌아갔지만...)
옛 말 에 이르기를
“내가 있음도 알지 못하는데 어찌 물건의 귀함을 알리요”했다.
소강절 또한
“지난 날 내 것이라고 하던 것이 오늘에는 도리어 저 사람의 것으로 되었으니, 오늘 내 것이 내일에는 또 누구의 것이 될지 알지 못하겠노라”라고 했다.
자 이러하니 자연히 집욕무(執慾無: 집착과 욕심을 없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문제는 실천과제이다.
문득 문득 떠올려 보라.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의 모습과 죽은 후에 될 모습을 가만히 생각해 또 올려보라.
그러면 모든 집착과 욕심이 덧없는 것임을 깨닫게 되리라.
아울러 두흉공(頭胸空)을 통해 비움의 도(道)를 행한다.
그리고서 세상살이에 “그려려니...”하는 여유의 삶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옛 말 에 이르기를
“세상맛을 속속들이 알고 나면, 비가 되건 구름이 되건 모두 맡겨 둔 채 눈뜨는 것조차 귀찮게 된다. 사람의 마음을 모두 깨닫게 되면 소라고 부르건 말이라고 부르건 부르는 대로 맡겨 둔 채 머리만 끄덕일 뿐이다.” 고 했다.
또 왜 사느냐고 물으면 웃기만하고 대답이 없네.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 꾸준한 실천의 인내가 필요하다.
실천을 위해서는 거거거중지(去去去中知). 행행행리각(行行行裡覺)이 그 훈(訓)이다.
<부단 없이 궁구해 나아감으로써 알게 되며, 이를 몸소 실천함으로써 깨닫게 되나니라>
정신과 육체를 연결해 주는 통로, 즉 교량 역할이 바로 호흡이다.
다시 말해 정신을 고르게 잡아 주는 것이 호흡이다.
처음 이 호흡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 호흡방법은 기차놀이 호흡이다.
길게 느릿느릿 가는 기차처럼 의식하며 호흡을 하는 것이다.
또한 육체를 고르게 조절시켜 주는 것은 스트레칭과 바르게 걷는 것이다.
기초적 스트레칭을 바로 맨손체조이고, 고단위 스트레칭을 여러 운동이다. 나에게는 권투(복싱)가 바로 그것이다.
첫댓글 주역강의를 잘 읽어봤습니다. 좋은공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말씀이네요 많은도움이 되어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