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3주일
이방 여인의 지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1.
오늘은 대한성공회가 정한 제8차 여성선교주일입니다. 대한성공회 내 여성선교를 새롭게 세우고자 매년 9월 첫째 주를 여성선교주일로 정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성서정과표에 나와 있는 복음 말씀인데 오늘 말씀과 잘 맞아 떨어집니다.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데다가 놀랄 반한 반전도 함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연극으로 성서를 보게 해주신 모든 분들께 모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
오늘은 무엇보다 시로페니키아 여인의 마음이 눈에 들어옵니다. 엄마의 마음입니다. 환경이 다르지만 우리는 엄마의 마음에 쉽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내 아이가 아프다. 내 아이를 살릴 강한 마음이 사로잡습니다. 그 마음이 국가와 민족이나 종교나 정치를 가로막을 수는 없습니다. 사실은 생명을 함께 살려야겠다는 마음은 우리의 장벽을 뛰어넘게도 합니다.
2-3일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바닷가로 가족들과 함께 난민으로 탈출하던 3살 아이의 주검 사진이 연상됩니다. 시리아는 내전으로 수만명이 탈출하고 있고 유럽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같은 마음이었을 것 같습니다. 죽을 줄 알면서도 탈출하며 난민이 되는 그들은 내 아이를 살리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로 갔는가에 대한 깊은 고뇌를 오게 하는 그 사진으로 유럽의 많은 분들이 난민수용정책에 변화가 일것이라고 하는데요. 정말 그러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이 여인의 눈물과 만납니다. 유럽 한가운데서 일어나는 내전으로 탈출이 이루어지지만 걸어간다고 한들 목숨을 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아이의 주검 사진이 다시 우리들의 냉혹한 현실을 직면하게 합니다.
#3.
아이를 살리고 싶기에 예수님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집니다. 살려달라고 합니다. 살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청합니다. ‘부스러기’입니다. 작은 조각을 청합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여인은 ‘마음이 가난한 자는 하늘나라가 그의 것이다’라는 마음을 이해했다고 여겨집니다. 그 여인의 절박함은 예수님을 찾게 했고 그리고 아주 작은 것으로 아이가 나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상태로 부스러기 조각을 청합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경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릎 꿇을 수 있었습니다. 빵도 빵이고, 빵 부스러기도 빵이다’(Non ham non, uvog’i ham non, 논 함 논, 우보기 함 논) 우즈베키스탄의 속담입니다. 아무리 작은 것도 빵이라는 뜻입니다. 아주 작은 조각이라도 주세요. 내영혼이 나으리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것 만으로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찬례 시간 중 가장 클라이막스를 이룰 때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실 때 하는 말 “한 말씀만 하소서. 내 영혼이 나으리이다” 와 같은 대목입니다.
말씀을 깨달은 자가 당신의 한 조각이면 내 영혼이 낫습니다. 그것은 당신을 이루는 말씀입니다. 와 절묘하게 이루어집니다. 그 여인에게 자녀에게 먼저 주어야지, 강아지에게 줄 수 없다고 외면하는 예수님은 눈이 번쩍 떠집니다. 가족 공동체가 자신을 외면하였고 기적을 행할 수 없었는데, 그 여인에게서는 복음을 이해하고 있음을 다시금 귀로 확인합니다. 결국은 세례자 요한이 자기 머리를 자르고 나서 이루어지는 새시대에 이 여인의 말은 시대의 증조로 읽혔을 것입니다.
#4.
놀라운 신학적인 해석이며 예수와 신학적인 대화를 이어가는 모성에서 시작한 지혜입니다. 지혜는 사람을 살립니다. 지식은 사람을 죽이지만 지혜는 생명을 살리고 사람을 살 게 합니다. 아이를 키울 때의 매뉴얼이 필요합니다.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지만 사실은 가장 필요한 것은 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지혜입니다. 아는 것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 키워야 합니다.
흔히들 여성선교라고 한다면 교회 내의 여성 지위를 새롭게 부여하며 여성의 영역에 대한 재세례작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더불어 여성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필요합니다. 아이를 살리겠다는 엄마의 마음보다 강한 것은 없습니다. 엄마들은 무엇인가를 새롭게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집을 새롭게 꾸미고 옷을 새롭게 하며 먹을 것을 창조해나갑니다. 시간 안에서 끊임없는 창조를 해나갑니다. 이 영역이 여성만의 것이라고 말하라고 하면 저는 반대지만 여성들의 영역은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창조이며 ‘내 아이를 기르다’이며 ‘막힌 것을 뚫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성성은 끊임없이 새롭게 조명받아야 마땅합니다.
#5.
그런데 오늘 그 여인은 생명에 대한 태도를 새롭게 합니다. 그리고 주님에 대한 태도를 새롭게 가져갑니다. 그 여인은 말합니다. 부스러기라도 먹지 않습니까. 성서에서는 이처럼 작은 것에 대한 태도를 새롭게 하는 곳이 많습니다. 부스러기는 아주 작은 것의 나눔을 의미합니다. 성서 곳곳에서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장면은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사실은 가장 큰 것이지요. 이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해준것이 나에게 해준 것이라고 합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면 세상을 구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린 아이의 주머니에서 시작한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오천명을 먹여 살리십니다.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낮아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제자들에게 자기를 거부하거든 그곳의 먼지 하나도 다 털어버리라고 합니다.
소신있게 떠나라고 합니다. 이런 작은 것을 소중히하고자 하는 마음을 이방여인이 어찌 알았을까요.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 이 여인의 믿음은 우리에게 충격과 돌아봄을 하게 합니다. 예수님에게로 마음을 넘길 수 있습니다.
#6.
예수는 돌아보십니다. 그 여인과 눈을 마주칩니다. 여인에게서 불타오르는 복음을 보게 됩니다. 기적은 그 순간 이루어집니다. 네 아이가 살았다라고 말합니다. 진리를 우리를 돌아보게 합니다. 예수님은 장벽을 뛰어넘는 분이시기에 그 여인의 말과 대화하십니다. 그리고 알고 계십니다.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질문하시며 상대해주십니다. 중요한 것들을 보는 눈을 가진 이는 작은 자에게 이렇게 해야 합니다. 돌아보는 삶을 살 준비를 해야 합니다. 다 알고 있다 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에게 탐복합니다.
#7
그리고 그의 제자들이 등장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침묵과 그들의 시선을 바라봅니다. 배우는 자는 말이 없습니다. 오늘 그들은 묵묵히 그 현장에 있습니다. 증인이 됩니다. 그 여인을 외면하는 예수님이 낯설지가 않습니다. 잡는 여인과 대조적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이방여인을 번갈아 가며 쳐다봅니다. 그들은 가르치지 않습니다. 지켜봅니다. 제자된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 현장에 낯선 말이 끼어들지 않게 합니다. 할 말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말을 잃어버린 자들은 결국은 다른 이의 말을 드러나게 하고 들을 귀가 생깁니다. 할 말이 없는 제자들에게서도 배울 거리와 새길 거리가 있습니다.
#8
이로써 이 복음은 믿음의 가장 좋은 모습을 갖추었으며 오늘 우리들을 깨우기에 정말 참 좋은 몫임이 드러났습니다. 한 주간 부스러기, 한 조각 소중히 여기며 예수님처럼 잘 돌아보시고 묵묵히 역할 감당하시고 순간 순간 깨어있고 배우는 제자들처럼 살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러면 하느님 역사의 주인 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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