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대림 3주일 설교
구체적인 걸음, ‘비움’
이쁜이 에스더 사제
성공회원주교회 보좌사제
내 안에 오시는 아기 예수를 기다리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대림 3주일입니다. 모든 분들의 마음에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은 오늘 복음에서 지난 주일에 이어 세례자요한을 더욱 깊이 맞이합니다. 세례자요한은 몰려온 민중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선지자는 구원을 민중들의 삶 한 가운데로 옮겨놓았습니다. 성전에서 가진 자와 권세있는 이들의 몫으로만 넘겨진 하늘나라와 구원을 다시 되돌려줍니다. 요르단강가에서 마음을 고쳐먹는 것으로 그리고 세례를 받으면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느님의 구원을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주는 구체적인 행동이며 우리는 이로써 준비됩니다. 성탄을 맞이할 합당한 자로 우리를 준비시키는 목소리입니다.
세례자요한의 외침은 구원과 내 삶을 구분하여 나와 상관없는 자리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옮겨놓는 것이 아니라 내 자리, 내 마음 깊은 곳에 복음이 찾아온다는 것을 머리로 깨닫게 합니다. 그 외침을 들은 행렬의 걸음이 이어지는 시기가 대림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걸음은 머리에서 가슴까지로의 여정입니다. 그것은 구체적인 행동을 동반한 결심을 뜻합니다. 여정의 종착점에는 고요한 밤, 초라한 마굿간이 있습니다. 가슴 속 깊은 곳의 나의 마굿간이며 곧 아기 예수를 눕힐 말구유도 있습니다. 말구유를 비워두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말먹이로 가득 차 있으면 마리아가 아기 예수님을 눕히지 못합니다.
오늘 복음서에서 말구유를 비우는 일에 대해 이야기 들을 수 있습니다. 자랑스럽게 나서는 이들부터 세례자요한의 퍼붓는 욕설을 듣게 됩니다. ‘독사의 자식들아’라는 말은 우리 식으로 말하면 ‘개xx’란 의미입니다. 아주 심한 욕이고 듣는 즉시 정신이 번쩍 드는 말입니다. 그러니 많은 이들이 어떻게 살아야하는 가를 묻습니다. 그 자리에서 각자의 처지에 맞게 답을 듣습니다.
자기 자리에서 질문합니다. 질문은 무엇인가요. 아이가 세상을 배우기 시작하면 ‘묻기’를 시작합니다. 질문은 배움의 다른 이름입니다. 내게 적용해보고 이해해 본 이후에야 질문은 나옵니다. 천지(天地)를 구분하고 너와 나를 인식해야 질문이 나옵니다. 그리하여 질문은 살아있는 교육인 것입니다. 학교 교실에서 질문이 사라졌다는 것은 결국 교육이 죽었음을 의미합니다. 그저 가르침을 전하기만 하면 생명이 없기 마련이고 죽은 지식으로만 흐르기에 우리는 경계해야 합니다. 그것을 막아주는 것이 질문입니다.
오늘 나선 이들이 구체적인 행동의 방향을 듣습니다. 그리고 실천해야 한다고 합니다. ‘나누어주고, 도리(道理)를 다하고 자기 몫으로 만족하라’고 합니다. 누구나에게 구체적인 행동은 다를 수 있지만 그것은 복음을 맞이하는 이의 구체적인 걸음이란 공통된 답변을 확인하게 됩니다. 말구유를 비우는 과정이며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는 구체적인 여정입니다. 내 머리에서 출발한 여정이 가슴에 비로소 닿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시작하려 합니다.
사도바울은 그 기쁨을 알기에 오늘 필립비인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사람으로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하느님의 평화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복음을 안다는 것은 새로운 힘을 얻는 것이며 진정한 기쁨을 맞이하는 일임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승리자가 되어서 노래하는 환희를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 여정은 우리들의 구체적인 걸음이 동반되어야 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각자가 자기 여정 안에서 구체적인 행동, 비움을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시기를 그리하여 꼭 성탄을 맞이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