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식으로 삽니까 씨앗으로 삽니까?
마태 13:1-9, 18-23
관할사제 조정근 프란시스 신부
사랑하는 원주 성 요셉 교회 교우 여러분, 지난 한 주간 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해 우리 마음의 밭을 아주 정확하게 보여주십니다. 첫째는 마음이 단단하게 굳어 하느님의 말씀이 통 믿어지지 않는 ‘길바닥 같은 마음’입니다. 둘째는 속상한 일이 많아 쉽게 화를 내고 환난이 오면 금방 넘어지는 ‘돌밭 같은 마음’입니다. 셋째는 세상 근심과 돈 버는 재미에 빠져 신앙생활을 등한히 하는, 이른바 ‘안나가 신자’인 ‘가시덤불같은 마음’입니다. 마지막 넷째는 말씀을 들으면 그대로 흡수하는 ‘좋은 땅과 같은 마음’입니다. 날마다 단톡방에 성서 통독을 올리고 묵상하시는 우리 원주교회 교우님들의 모습이 바로 이 좋은 땅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 끝에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마태 13:9) 하며 강력하게 경고하십니다.
1. 들을 귀가 있어야 진짜 신자입니다
똑같은 공간에서 똑같은 설교를 들어도 어떤 분은 은혜를 받고, 어떤 분은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들을 귀가 닫혀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엘리 사제는 성전 안에서 평생을 살았지만 하느님과 먹통이 되었습니다. 오래 믿었다고, 직분을 가졌다고 저절로 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을 줄 알아야 진짜 신자입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톰은 “하늘의 농부이신 주님은 밭을 가리지 않고 말씀을 뿌리신다.돌밭도 가시덤불도 회개하고 성령을 따르면 언제든 좋은 땅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 밭은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마음 밭만 갈다가 말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진짜 열매가 나타나야 합니다.
2. 현재의 양식인가, 미래의 씨앗인가
농부는 아무리 배가 고파 굶어 죽을지언정, 다음 해에 심을 ‘씨종자’는 절대 삶아 먹지 않습니다. 양식은 오늘 현재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고, 씨앗은 내일과 다가올 미래를 위한 것입니다. 양식은 나 하나 먹고 살기 위한 것이지만, 씨앗은 땅에 심겨 모두를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삽니까? 양식만을 위해 사는 사람은 오늘만 보며 육체의요구대로 살아갑니다. 사도 바울로는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면 죽음이 오고 영적인 것에 마음을 쓰면 생명과 평화가 온다”(로마 8:5-6)고 지적했습니다. 주일날 당장의 휴식이라는 ‘양식’을 먹으려고 내 영혼의 ‘씨앗’을 버리거나, 세상의 악한 풍습과 이기심을 따르는 것이 바로 육체를 따라 사는 삶입니다.
3. 무늬만 신자인 ‘붕어빵 신자’를 넘어서
성령을 모신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야 합니다. 요즘 교계에 ‘붕어빵 신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붕어빵 속에 붕어가 없듯, 성당은 오래 다녔는데 인격과 삶 속에 예수님의 생명이 전혀 없는 무늬만 신자를 뜻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예언자 이사야는 하느님 말씀의 강력한 역사를 이렇게 선포합니다.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오면 그리로 다시 돌아가지 않고 땅을 적셔 싹이 돋아나게 하고 자라나게 하여, 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사람에게 양식을 준다. 이처럼 나의 입에서 나가는 말도 내게로 헛되이 돌아오지 않는다. 반드시 내가 뜻한 바를 이루고, 내가 보낸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이사 55:10-11)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눈이 메마른 대지를 적셔 반드시 싹을 틔우듯, 주님의 말씀은 결코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당장 내 삶에 변화가 없는 것 같고 여전히 돌밭같아 보일지라도, 말씀이 내 안에 머무르면 반드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이사 55:13). 내 힘이 아니라, 말씀 스스로가 가진 위대한 구원의 능력 때문입니다.
4. 성령의 바람에 삶의 키를 맡기십시오
우리 성공회의 아름다운 뿌리인 ‘켈트 교회’의 수도승들은 돛도 노도 없는 가죽 배(코라클)를 타고 오직 성령의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선교를 떠났습니다. 낯선 해안에 닿으면 그곳이 척박한 돌밭이든 황무지든 주님이 정해주신 ‘가장 좋은 땅’이자 ‘나의 부활의 장소’로 믿고 평생 말씀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400년 전 신앙의 자유를 찾아 떠난 청교도들도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위기 속에서 미래를 위해 씨종자 가마니를 끝까지 지켜냈습니다. 오늘 나의 배고픔을 달랠 양식을 포기하고 내일을 위한 씨앗을 선택했기에, 그 후손들이 큰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제 에사오처럼 눈앞의 이익과 양식만을 위해 신앙을 타협하지 맙시다. 야곱처럼 미래를 위하여, 내 영혼의 씨앗을 위하여 삽시다. 은혜로우신 하느님께서는 매주 감사성찬례를 통해 우리 마음에 은혜의 말씀을 심어주십니다. 켈트 수도승들처럼, 성령이 이끄시는 이 원주성당과 나의 가정을 부활의 자리로 믿고 결실을 보아야 합니다. 붕어빵 신자의 자리를 과감히 떨쳐버리고, 주님의 말씀을 내 발의 등불로 삼아 30배, 60배, 100배의 풍성한 열매를 맺으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