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추수감사주일 설교
#1.
일년 중 가장 열매 맺는 계절 한 가운데 우리는 추수감사주일을 정하고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가만히 돌아봅니다. (잠시 침묵) 감사한 일들이 많으신지요? 감사한 사람들이 많으신가요. 많은 것들이 떠오른다면 수고하시며 한해 잘 보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한 마음만큼 자기를 알고 자기를 돌아보는 일도 드물 것입니다. 이유는 자기가 부족함을 알아야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돌아보지 못하는 자는 모든 것이 당연하고 자기의 의에 의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없는 사람은 하느님이 나를 채워주시는 것들로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것이 하나도 없는데 모두 받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받으셨나요? 미모, 체력, 차분함, 손재주, 자유함.
#2.
각자가 받는 선물은 다 다릅니다. 각자가 받은 자리에서 감사한 것들도 다 다를 것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우리는 다른 사람들입니다. 사과보고 왜 수세미가 안됐냐고 하고 은행나무 보고 왜 노라냐고 빨개지지 않냐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 다른 열매를 맺을 운명을 타고 났습니다. 어떤 분들은 내 열매는 없다. 하시지만 그런 분은 없습니다. 도토리라고 해도 그 도토리 덕에 사는 짐승들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큰 열매도 다 각자의 소용만큼의 쓰임 이외에는 자기 가치를 발휘하지 못합니다. 각각은 열매맺는 시기도 다 다릅니다. 일찍 열매 맺는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자주 사용한 손, 저는 오른손잡이인데 이 손만이 귀하다 보면 어리석습니다. 그손을 씻어주는 것은 왼손입니다. 그손의 균형을 잡아주는 것은 왼손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불교 경전에 나오는 우담바라.는 3000년에 한번 핍니다. 여래나 전륜성왕이 태어날 때 인류를 구원할 자가 우리식이면 메시아가 태어날 때 한번 피는 꽃입니다. 그 꽃이 실재로 있는지 없는 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기다림 끝에 피는 꽃이 갖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합니다. 각각의 다른 색채를 가진 이들, 시기는 다르지만 꼭 피어내는 꽃들을 보면서 우리는 배웁니다. 서로에게 잣대로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내 색을 잘 내는 데 집중하기 때문에 그러면서도 어울리는 것입니다.
#3.
이 대목에서 우리는 집중하고자 합니다. 왜 다르게 만드셨나 하는 것입니다. 아주 골고루 풍성하게 차려진 한 식탁에 앉아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육식을 좋아하는 이들만 있다고 가정 해볼 때 그 식탁에 고기가 다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 지 그 결과는 너무 뻔 하게 나옵니다. 또 풀만 먹는 이가 있다고 생각해보면 어떻게 될 지 다 알 수 있습니다. 결국은 우리가 다 다르게 만들어진 이유는 식탁의 음식이 부족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골고루 다 없어지면서 다음 식탁을 기다릴 배부른 이도 생겨나고 다음번 식탁에 앉을 이도 도울 수 있고 요리할 수 있는 이도 만들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조율 가운데 있으며 그것을 기뻐합니다. 우리들이 평화를 바란다.고 합니다. 거리에 서는 이들도 있고 구호를 외치는 이들도 있습니다. 또한 가진 것을 나누는 이들도 있습니다. 또한 자기 것을 양보하기도 합니다. 또한 침묵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자기 입을 닫는 것이지요. 이럴 때 우리는 평화를 위해서 그리 합니다. 그럴 때 그것은 평화를 바라는 마음에서 모두 발로한 것이지만 행동은 다 다릅니다. 그 분의 손바닥 안에 있으며 계획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평화를 빌 수 있습니다. 각자가 쓰임이 다른 것은 조율이며 그분의 계획입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우리를 완성하고 보호합니다. 평화로운 길은 이처럼 다른 선물을 받은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은 우리를 이런 부족함으로 깨닫게 합니다.
#4.
성경 구절 가운데 하느님의 의를 구하라고 핵심적인 문구로 떠오릅니다. 하느님의 의라고 어렵게 표현하시니 각자는 이것을 깨닫고자 노력합니다. 그리고 정말 하느님의 의라는 이름으로 수천 수만 가지의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이대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물론 구하지 않는다 하면 그건 논할 가치가 없지만 해석 하느님의 의를 해석하려고 애쓰는 가운데 그 가운데 맞고 틀림이라기보다는 그 길 가운데서 우리는 그분의 뜻을 알게 됩니다. 모든 언어로도 표현할 수 있으며 모든 언어로 다 담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2독서에서도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자기 혀를 억누르지 못하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 해석을 다양하게 하니 세상은 아름답게 알록달록 물듭니다.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해서 문제가 청소년들이 거리에 나섰다고 하는데 사실은 한가지만 있다면 역사는 흐르지 못하게 되고 건강함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무슨 해석이 옳다는 말을 구지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야기를 하면 끝이 없으니 나중에 열변을 토하기로 합니다.
이 세상은 인간만이 그분의 영광을 빛내기 위해서 애를 쓰는 것이 아니라 우주만물이 나뭇잎들이 땅속의 벌레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일을 합니다. 노동을 하고 생태계를 유지하면서 자기 일을 합니다. 그것이 감사합니다. 하느님의 의는 그래서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당신의 의를 알려주세요. 저 말고 하느님 의를 저에게 구할 수 있게 해주세요. 하고 말입니다. 그런 분들은 실수가 없고 내 안의 빛으로 다른 이들과 만날 수 있습니다.
#5.
감사가 없는 분들은 하느님의 의를 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을 자기 안의 어둠으로 만납니다. 내 짐을 내가 지는 게 아니고 기댑니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남에게 자꾸만 지라고 합니다. 단죄하는 것이 그런 이유입니다. 그리고 화살이 모두 남을 향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를 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들의 삶이 그분의 의를 구하는 삶이어야 하며 또한 내 것이 아닌 것을 아는 것. 비우는 날들 그것은 처음 내 자리로 돌아가는 자리임을 알아야 합니다. 가장 기쁜 것은 새 스케치북을 받는 일입니다. 다시 할 수 있는 것. 스케치북 날마다 새 하루를 받습니다. 날마다 새 순간을 받습니다. 날마다 새 사람을 만납니다. 그사람의 전 관계와 전 인연은 이미 과거이며 지금 여기는 늘 내게 선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기회를 선물로 받고 늘 비움을 선물로 받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미 가득차 있다면 그건 옳은 것이 아닙니다.
#6.
여러분은 어떤 것에 감사하십니까. 저는 부족한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그래서 제 것을 온전히 다 내어놓는 일들이 감사합니다. 포기할 수 있고 그래서 잠들 수 있고 걱정을 그만할 수 있는 것. 그래서 신뢰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내 한계임을 알게 되는 것이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그것은 내가 새 스케치북을 받는 일이며 내가 나를 새롭게 세례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홀로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함께 구도하는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죄하지 않고 늘 새롭게 남을 대해주는 동역자들이 필요합니다. 또한 새롭게 시작하는 그이를 새눈으로 봐줄 수 있어야 합니다. 어제의 그가 아니라 오늘의 그로 전혀 모르는 이를 마주하고 감사함을 선물로 주어야 합니다. 그런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나의 세례이며 그분의 세례이며 지역의 세례일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는 그런 선물을 할 수도 있는 존재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