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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활 2주일 | 애찬 | 5) 부활 6주일 | 꽃봉헌 |
2) 부활 3주일 | 분리수거와 쓰레기 정리 | 6) 승천후주일 | 차량 봉사 |
3) 부활 4주일 | 잡초제거 | 7) 성령강림주일 | 설거지 |
4) 부활 5주일 | 성물 준비 | 8) 성삼위일체주일 | 건물 수리 |
애찬(愛餐)이라. 사랑의 음식이란 뜻이다. 음식을 만들고 서로 나누는 시간을 우리는 그렇게 부른다. 명사형인 단어 안에 동사를 포함하고 있으며 애찬이 담고 있는 특별한 시간과 공간까지도 의미한다. 그것은 준비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애찬을 맡으면 사람들에게 먹을 기회를 잡게 된다. 사실은 아주 큰 기쁨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그분이 하신 일 중에 가장 큰 기적은 ‘오병이어’의 기적이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을 먹이신 기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오병이어는 작은 양으로 나눠 먹고 사람들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기록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 재료는 한 아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내어놓을 때 일이다. 머리로 투덜거리는 제자들도 있었다. ‘이 많은 이들을 어떻게 먹여살립니까’하고 말이다. 그런데 결과는 모두 배부르게 먹고도 남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사실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는 매일 주일 애찬을 준비하고 나누는 순간에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현대사회는 많은 식솔들에게 밥을 할 기회가 없다. 그래서 사실은 애찬을 맡는다는 것 자체가 신앙의 성장을 의미한다. 사람을 먹일 준비가 되었다 보다 더 큰 마음 내어줌이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애찬은 사람마다 계절마다 메뉴는 다르다. 하지만 수고한 손길은 늘 나누는 순간 빛난다. 어렵게 노력해서 만들어진 메뉴들이 사람들 모두의 몫으로 돌아간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세포 알갱이 하나 하나에게 은총을 베푸는 것이다. 경험도 없는데 애찬을 준비하는 새신자들에게 감탄을 쏟아내는 교우들을 보고 있노라면 도반의 관계란 서로의 사랑을 주고 받는 것이구나 하고 절로 깨달아지게 된다.
애찬의 빛나는 순간을 위해서 수고한 손길은 분명 하느님의 손길이 분명하다. 그 손길을 통해 생명이 살아났기에 가능한 일이다. 당신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기억시키고자 떠나시기 전 마지막 날에 하신 일도 먹이는 일이었다.
최후의 만찬은 그분이 제자들과 함께 한 일이다. 어떤 교회는 디너 처지가 있기도 하다. 먹으며 서로 나누는 순간이 그분과 함께 하는 최고의 시간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떠나가기 전 마지막 순간에 하신 일이 가르치신 것도 아니고 아픈 곳을 낫게 해준 것도 아니라 최후의 만찬이라는 것이기에 애찬은 특별한 위로가 된다. 그 자리는 자기를 배반할 가롯 유다에게도 빵을 주신 자리이기도 하다. 그 분의 품은 그런 것이다.
애찬을 준비하면 그분의 마음이 된다. 그 분의 마음 속에는 모두를 돌아보게 된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모두를 위한 마음으로 애찬을 준비하고 구체적으로 베푼다. 자기의 작은 결정으로 많은 이들이 살아나가고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미사가 완성되는 순간이 여기서 이루어진다. 한 명 한 명이 부활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부활의 에너지를 나눠 가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애찬의 시간은 그 여정을 고스란히 지켜볼 수 있다. 준비하고 베풀고 만찬이 벌어지고 먹고 나간다. 참 다양하고 밀접하게 연계되었다. 우리는 다양한 모습을 지녔으며 한 지체이다. 하느님이 그리 만드셨다. 그러해 각각의 사람들은 모두 주인이며 또한 구성원이다. 이런 특징인 까닭에 모두의 만족을 이루어내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손들은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한 몸’이라는 사실이다. 애찬에서도 그것을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