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영성 4) 성물준비 영성
이 에스더 사제
그리스도인은 거룩함에 대한 ‘쫓음’을 가진 이들이다. 그 쫓음의 방향은 나를 돌아서게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 앞에 서게 한다. 그토록 ‘회개하라’했던 요단강의 외침도 사실은 이 쫓음을 상기시키는 일이었다. ‘회심’의 본질은 나를 일깨우는 거룩함의 ‘기억’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태초부터 그 분의 형상을 닮도록 만들어 졌으며 ‘참 좋았다’는 칭찬과 만물을 다스렸으며 직접 대화한 인간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우리들은 선한 분에게서 왔음을 금방 알 수 있고 그것은 거룩함에 대한 일깨움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당연하다.
세상에는 유혹이 많다. 그분에게 내 몸과 마음을 돌이키지 못하도록 유혹하는 것들이 많은 데 그것들에게서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장치들이 필요하다. 우리는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모여 함께 기도하며 이런 거룩함을 더욱 깊게 새긴다.
좋은 기회 중에 하나는 성물을 준비하는 봉사를 맡는 일이다. 성물을 준비하는 일은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루어진다.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돌이켜 그분을 향해 문을 여는 것이다. 내가 교회에 발을 디디는 순간 그곳은 이제 성역이 되고 나를 태초의 모습으로 회복시켜주는 것이다.
제대를 보고 인사를 하고 나의 죄를 씻고 그러기 위해 함께 드리는 공기도를 위해 성물을 닦고 순서를 정해놓고 간결하게 열을 맞추어 놓는다. 그 일을 하면 내 마음은 하나로 모아지고 흩어졌던 생각들은 오직 하나 다른 이들을 향해 있다. 내 마음의 방향이 오로지 그분에게 집중하게 된다.
사실 성물을 만지는 일은 모든 이들이 도착하기 전에 끝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기에 잘 드러나지 않는 일이며 그 존재 자체가 드러난다면 그것이 오히려 흠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거룩함이 더욱 깊은 것이다. 성물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을 하기에 그것을 빛내는 일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빛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성작을 닦는다. 성작은 오직 내 손길로 닦아지며 내 수고로 빛을 낸다. 내 자국을 놓지 않는 것이 도전의 덕목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자국없음, 오로지 그리스도만이 드러나는 영광이 그곳에서 빛난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갈2:20상)이기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준비하는 손길은 기도가 분명한 것이다.
얼마전 햇살지역아동센터 장소를 빌려 강독회를 진행하러 간 적이 있다. 늦은 밤 아이들이 다가고 났는데 선생님이 한 아이를 씻겨주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아이가 따돌림당하는 것이 걱정돼 홀로 씻겨주는 것이다. 마치 성작을 아무도 모르게 닦는 것도 이 마음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드러나지 않음 선함은 닦는 이(결국은 돕는 이 아닌가)를 더욱 거룩하게 만든다.
성공회에서는 아주 특별하게 주일마다 감사성찬례를 함께 드린다. 이를 위해서는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다. 대전례를 따르려고 하면 공동의 노력과 준비가 필수이고 종류가 더 많아진다. 자칫 준비를 놓쳐버리면 성찬례의 흐름을 방해하기 쉬워서 각별한 협동이 필요하다. 어찌보면 모든 것은 그분을 만나는 과정이며 가장 하이라이트를 차지하는 일이며 마무리하는 마지막까지 감동을 동반하기 위한 모두의 수고이다. 혼자서 할 수 없다. 우리들의 성찬례가 아름다운 것은 모두의 합의 아래 이루어지는 점이다. 우리는 이렇게 어렵게 준비한 성찬례를 그리스도인 누구에게나로 연다.
나만을 위해 차려놓으신 자리가 아님을 확실하게 못 박으며 또한 우리들의 성물은 주님의 몸이기 위해서는 낯선이의 초대가 허용되는 것이다. 나는 그중에서도 두 가지 성물 준비를 참 좋아한다. 그 하나는 초 깍기다. 한 층 흘러내린 자신의 몸을 태워 불을 밝히는 초를 정리하다보면 그 초에 대한 기도가 절로 이루어진다. 그 촛물은 그 이전에 누군가의 눈물의 자국이며 역사이기에 훗날 내가 기억하고 치워지는 것이다. 눈물의 대한 기억은 신앙을 더욱 굳건히 한다. “나는 그대가 눈물을 흘리던 일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그대를 만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딤후1:3)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 분은 마지막날 식사 때 “ 나를 기억하여”(고전11:25)라고 했을 것이다.
초 깍기 뿐 아니다. 모든 성물 봉사는 그분의 몸을 만지는 일이며 그분을 기억하는 일들이다. 한 가지씩 성물 준비 봉사에 참여해 보시라. 자격이 안되었다고 손사래 칠 필요가 없다. 누구나에게 열려있는 은총이 당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목격할 것이며 성찬례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