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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urai 마두라이
Madurai는 인도 남부에 있는 타밀나두(옛 마드라스)주에 있는 도시이다.
州都 마드라스에 버금가는 제2의 도시(都市)로, 교통망(交通網)이 발달(發達)했으며, 스리랑카와 케랄라 방면으로 가는 철도의 분기점(分岐點)에 있다.
고대부터 드라비다 문화의 중심지로, BC 5세기~AD 11세기까지는 판디아 왕국의 수도였으며, 16세기 중반부터 1743년까지는 나야크(Nayak)왕조의 수도였다고 한다.
Mahatma Gandhi 박물관(博物館)
Madurai에는 인도의 정신적 지주 간디 박물관이 있다
입구에 간디 모형(模型)조각(彫刻)이 서 있고 안에는 간디가 활동(活動)했던 여러 모습을 사진으로 전시해 놓고 설명을 곁 들여 두었다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에 대해서는 너무 잘 알려져 있고 여러 번 나도 설명해 두었기에 굳이 자세한 것은 기록 않겠지만 덧 붙일 것만 써 본다
Mahatma Gandhi 박물관(博物館)
Mahatma Gandhi 박물관(博物館) 에는 간디의 일생에 대해 사진과 설명이 잘 되어 있다 1918년 인도 국민회의의 지도자 역할을 맡은 것을 전후로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鬪爭)의 선봉(先鋒)에 서면서, 간디는 인도의 상징 중 하나가 되었다고 평가된다
그의 종교 사상의 근본은 아힘사(무상해)였고, 인류애에 의한 폭력 부정만이 최후의 승 리임을 확신하고 이를 그대로 정치 활동에 실천하였다 (Mahatma Gandhi 박물관(博物館에 전시되어 있는 그의 기념물품과 기념관 그림들)
Mahatma Gandhi 동상 앞에서(위),1999년 4월 18일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지난 1천 년간의 최고의 혁명(革命)으로 영 국의 식민통치에 저항한 간디의 비폭력(非暴力) 무저항(無抵抗)운동(運動)을 선정하였다마두라이 간디 박물관의 직원들과(아래 사진)
그는 사회적 계급 제도의 타파(打破)에 노력하였으며 불가촉천민의 해방을 실천(實踐)하였다.
그리고 비 폭력 무저항주의는 나에게 3.1독립운동 당시의 일본의 압제 아래 고통받던 조선의 식민시절이 생각난다
영국은 강압적으로 인도를 통치하지 않았지만 이와는 달리 일본제국주의는 우리를 식민지로 억압하고 고문하고 강제로 끌고가고 죽이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주었고 지금도 여전히 반성이나 사과는 없이 우리의 이웃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아리랑♬'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Arirang (아리랑) - Paul Mauriat Orchestra
진실을 사랑하고 기만을 증오(憎惡)하였으며, 사회악(社會惡)에의 철저한 반항(反抗)이 정치 활동의 강한 원동력(原動力)이 되었다.
그는 일생 동안 정치적인 목적을 위한 폭력을 거부(拒否)했는데, 그의 비폭력(非暴力)주의는 나라 안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큰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은 익히 책을 통해서 알고 있다.
1918년 인도 국민회의의 지도자 역할을 맡은 것을 전후로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鬪爭)의 선봉(先鋒)에 서면서, 간디는 인도의 상징 중 하나가 되었다고 평가된다. 또 그 때부터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의 ‘마하트마(Mahatma)’로 불리게 되었다.
인도의 유치원 보모, 선생님, 그리고 유치원생들과 간디 박물관에서
한국에 문자를 보내려고 하니 접속이 안되고 전송이 안 된다.(2016년 당시 카카오 톡이 안되던 시기였다)
전화를 내가 한국에 하면 분당 2780원이고 상대방이 나에게 전화를 하면 내가 2,980원, 즉 3,000원꼴로 내가 지불한다. 그리고 나중 한국에 들어와서 물어 보니 나에게 전화를 해도 통화(通話)가 되지 않더라는 후문(後門)이다.
문자(文字)는 상대방이 나에게 보내는 것은 무료지만, 내가 상대편에게 보내면 한건당 300원이 된다. 창 밖을 보니 하늘은 잔뜩 흐려있는데 비는 오지 않는다.
참고 : 20루피 =340원은 파파야 1개값. 30루피= 510원은 초콜렛 6개 값
간디 박물관에 견학 온 인도의 유치원 생들(맨 위)과 유치원생을 인솔하여 오신 선생님들(아래 그림)
학부모(學父母) 인줄 알았는데 보모(保母)나 유치원(幼稚園) 교사(敎師)란다. 내가 인도 제일의 탈렌트가 된 기분이다 모두들 나를 애워싸고 영어로 질문을 퍼 붓는다. 내가 눈 돌릴 곳이 없다.
MADURAI에서 TEKKADY로
Madurai에서 Crystal Coart를 버스로 Tekkady로 출발하였다 날씨가 흐리고 가끔 구름사이로 햇살이 비친다. 지도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Tamiladu州에서 Kerala州로 넘어간다.
동에서 서로 넘어가니 모처럼 산이 보인다. 구릉(丘陵)에서 시작하여 점차 산으로 산으로 올라간다.
더운 지방이라 남인도의 고원(高原)지대인 이 곳에는 휴양지(休養地), 국립공원(國立公園)이 있다.
4시간 정도 달리니 사방의 풍경이 이제껏 보아온 것과 사뭇 다르다. 인도인들도 우리를 보면 신기한 듯 손을 흔들어 준다.
10시10분, TEKATTY 가는 도중 Ariyas라는 시골 마을에 용변을 보기 위해 버스는 잠시 멈춰섰다. 가게에는 전통적인 인도 시골 할아버지가 앉아 계신다. 진열해 둔 과자류도 앙증맞다. 가게 할아버지와(위)
정글을 한참이나 올라가다보니 11시 40분 경, 갑자기 산 정상부근에 도시가 하나 나타난다.
기후는 이제껏 더위에 시달렸는데 시원하고 공기도 상큼하다.
이 곳이 남인도의 휴양도시 Dekkady라고 하는데향신료 농장을 방문(訪問)했을 때, 그 열대지방에서 생산되는 커피며, 다양한 꽃들. 향신료(香辛料) 재료(材料)가 되는 열매들... 숲속 농장의 맑은 공기에 한참이나 취해 있었
(맨위) Anjana호텔 Lobby에서 종업원(從業員)
외부인과 내부인을 엄격(嚴格)히 제한(制限)하고 구분(區分)하고 있었다. 방 카드가 없다면 엘리베이트 타기도 힘들었다
(중간)카스트제도가 없어지기는 힘이 들 것 같다. 카스트 자체가 性이 되기 때문이다. 한번 계급이 된 부모는 그 자녀들 까지 평생 그 계급으로 자자손손 대를 이어져 내려간다. 사진은 길에서 과일을 팔고 있는 하층계급의 여인
(맨 아래)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이른바 불가촉천민이 있다. ‘마누 법도론’에서는 모든 사람이 태어난 계급과 맞는 역할과 의무를 충실히 이행 하는 것이 종교 생활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길가에 누워있는 불가촉천민. 간디는 인도 인습인 사회적 계급 제도의 타파(打破)에 노력하였으며 불가촉천 민의 해방을 실천(實踐)하였다
(왼쪽)길거리에서 장사하고 계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사진을 함께 찍는 것만으로 좋아 하셨다
Thirumahali Nayak Palace 문 앞에서 미낙쉬라는 물고기 모양의 눈을 가진 여자가 있었다고 한다.(오른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