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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Arirang
Korean traditional song is ARIRANG
1) UCLA에 울려퍼지는 한국의 음악 '아리랑(ARIRANG)'
UCLA,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버클리, 스탠퍼드 대학과 함께 미 서부의 최고(最高) 명문 대학으로 꼽히며 2014년 미국의 시사(時事)주간지(週刊誌) 〈US뉴스 & 월드리포트〉가 발표한 전미(全美) 종합 대학 순위에서 23위를 차지했다.
내 조카(바로 아래 내동생 딸ㅡ정은지)가 UCLA 의예과 교수로 있다. 인터넷 검색
2006년 내한 공연중인 ‘폴 모리아(Paul Mauriat) .한 민족(民族)의 曲 ARIRANG
프랑스의 作曲家, 編曲家, 指揮者, 피아니스트, 쳄발로 演奏者
본명은 폴 쥘리앙 앙드레 모리아(Paul Julien Andre Mauriat) 내한(來韓) 공연(共演)의 연주곡(演奏曲). 전 좌석(座席) 매진(賣盡)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운 아리랑
2) 우리의 아리랑의 가치(價値)
‘아리랑’은 구전(口傳)으로 전송(傳誦)되고 재창조(再創造)되어 온 서정적(敍情的)이며 대중적(大衆的)인 노래로 여러 전통적(傳統的)인 형태로도 전해지지만 교향곡이나 현대 음악의 형식으로 편곡(編曲)되어서도 전해지기도 한다.
전형적인 아리랑은 부드럽고 서정적인 선율과 함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가시는 님’이라는 여음(餘音)이 반복된다. 아리랑 노래는 이별과 만남, 슬픔과 기쁨, 행복 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아리랑은 가사와 선율에 따라서 다양하게 분류되는데, 현재 알려진 것은 36개 버전으로 지속적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내 어릴적 보았던; 아리랑; 담배와 전통 '아리랑' 문양
아리랑 민요는 사회적(社會的) 관계를 강화(强化)함으로써 상호(相互) 존중(尊重)과 평화로운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있으며,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슬픔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아리랑은 단합의 상징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공연 예술·영화·문학 그리고 기타 현대 예술 장르에서도 민족적 긍지(矜持)와 자부심(自負心)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한민족(韓民族)을 아리랑 민족이라 부른다.
3) UCLA에 울러퍼진 한국의 ARIRANG
UCLA는 지금까지 13명의 노벨 수상자를 배출(輩出)했고, 특히 UCLA 출신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지역적 특색에 맞게 아시아계가 많으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韓國) 전통(傳統) 음악과(音樂科)가 개설(開設)돼 있다.
오래된 건물들이 많은 북캠퍼스와 주로 현대식 건물이 있는 남캠퍼스로 나뉜다. 특별한 목적이 아니라면 너무 광활해 한 번에 전체 시설을 둘러보기는 어렵다.
UCLA정원에서 아리랑 연주를 듣고 있는 학생들과 교직원
또 UCLA의 학생회관인 애커먼 유니언(Ackerman Union)에 들러 UCLA 로고의 다양한 기념품을 구할 수 있다
U-TUBE는 UCLA에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의 한국 전통(傳統)음악과(音樂科) 학생(學生)들의 합주(合奏)로 한국의 어머니 노래 '아리랑'이다. 마음의 감동(感動)이 잔잔히 울려 나온다
UCLA에는 내 조카(정은지교수 내동생'정현성'의 땰) 의대 교수로 있다
한민족은 스스로 집단적으로 아리랑과 동일시하므로 이러한 표현은 적절하다.
아리랑은 사회적 관계를 부드럽게 하고, 사람들이 그들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므로 기쁨을 표현하고 슬픔은 극복(克服)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아리랑을 함께 부르면서 사람들은 서로의 감정을 공유(共有)하며, 어려운 때에 서로 도울 수 있는 힘을 얻는다. 20세기 초 한민족이 시련(試鍊)을 겪었을 당시 아리랑은 새로운 차원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당시 아리랑을 부른다는 것은 한민족으로서는 민족(民族) 정체성(正體性)의 상징(象徵)을 간직한다는 것을 의미하였으며, 아리랑이라는 노래에는 민족 해방에 대한 염원과 확신(確信)이 녹아 있었다.
아리랑은 한민족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느낌을 표현하고 있고 상호 존중을 의미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실은 2000년 SYDNY에서 개최되었던 제27차 올림픽 개막식에서 남한과 북한 선수단이 공동 입장할 때 선수들이 아리랑을 함께 불렀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아리랑을 부르며 민족 분단(分斷)의 아픔과 통일(統一)에 대한 염원(念願)을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다시 말해서, 아리랑은 한민족이라면 누구나 같은 언어를 말하고 공통의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의 증거임 셈이다. 또 다른 무형(無形)문화유산(文化遺産)의 시연에서 흔히 공연되는 아리랑은 이러한 유산의 지속적(持續的)인 전승(傳承)을 돕고 있다.
UCLA에서 울려 퍼졌던 아리랑의 선율이 깊은 여운(餘韻)을 남긴다
4) ARIRANG-TV
해외에 나갔을 때 가장 기분 좋았던 것은 호텔에서 CNN, BBC TV와 함께 보았던 아리랑-TV였다.
아리랑은 정말 나의 분신(分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ARIRANG-TV SCREEN ↑
ARIRANG 국제방송 LOGO
사용(使用)언어(言語) 英語, 中國語, SPAIN어, 韓國語, ARAB語, RUSSIA語, VIETNAM語, 印尼語
개국(開國) ①1997년 2월 3일 TV 국내방송(國內放送) 개국
1999년 8월 12일 TV 해외방송(海外放送) 개국
②네트워크 국제(國際)방송(放送)교류(交流)재단(財團)
③슬로건 The World On arirang
④언어(言語) 영어(英語)
⑤방송(放送) 지역(地域) 全 세계(世界)
⑥본사(本社)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351(서초3동 1467-80)
⑦웹사이트 www.arirang.com
http://www.arirang.com/index.asp
5) 파라과이의 아리랑
파라과이에 울려퍼진 한국 아리랑의 위상 "아리랑 플래시몹에 눈물 흘리는 외국인들
6) 나운규(羅雲奎)와 아리랑
*출생 -1902년 10월 17일 함경북도 회령군 회령읍 이동
(現 함경북도 회령시)
*사망(死亡) 1937년 8월 9일 (향년 34세)
*경기도 경성(京城)부 (現 서울특별시)
*본관(本官) -나주 나씨
*별칭(別稱) -춘사(春史)
*소속(所屬) -대한국민회
*상훈(賞勳) -건국훈장(建國勳章) 애국장 추서
나운규는 1926년 개봉한 영화 <아리랑>에서 주제가인 '아리랑'을 단성사 음악대와 함께 작곡, 작사하였다. '아라리'라는 노랫말을 담은 민요는 각 지역마다 널리 불리워지고 있었고 종류가 많으나, 가장 대중적으로 유명하고 해외에도 소개되고 있는 것은 나운규가 작곡, 작사한 '본조 아리랑(주제가 아리랑)'이다. 영화가 만들어진 뒤, 이 노래는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 남녀노소 할 거 없이 즐겨 불렀다는데, 아리랑이 만들어진 유래에 대해 나운규 본인은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기자
“한동안은 그것이 벌써 10년은 되었지만, 그때 서울이든 시골이든 어디에서든지 어린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즐겨 부르던 아리랑의 이 주제가를 누가 지었어요?”
나운규 曰 :
“내가 지었소이다. 내가 어린 소학생 때에 청진서 회령까지 철도가 놓이기 시작했는데 그때 남쪽에서 오는 노동자들이 철로 길을 닦으면서 ‘아리랑, 아리랑’하고 구슬픈 노래를 부르더군요. ?그것이 어쩐지 가슴을 울려서 길 가다가도 그 노랫소리가 들리면 걸음을 멈추고 한참 들었어요. 그리고는 애련하고 아름답게 넘어가는 그 멜로디를 혼자 외어 보았답니다. (……) 내가 예전에 듣던 그 멜로디를 생각해 내어서 가사를 짓고 곡보는 단성사 음악대에 부탁하여 만들었지요
나운규가 증언하는 바와 같이, 고향 함경북도에서 살던 어린 시절 남쪽에서 올라온 노동자들이 부르던 구슬픈 곡조를 기억하고, 여기서 모티브를 얻어 멜로디는 단성사 음악대가, 가사는 본인이 쓴 창작곡이라는 것이다. 흔히 나운규 아리랑을 '경기 아리랑'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영화가 개봉된 서울이 경기도 지역에 속하기 때문이고, 또한 남쪽에서 올라왔다는 노동자들이 당연히 경기도 출신이겠거니 하는데서 이름 붙인것이다. 하지만, 그 노동요가 현재 그 흔적도 전혀 남아있지 않으며 오직 추정속에서만 존재하는 이상, 나운규의 아리랑은 그가 작사 작곡한 순수 창작곡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1940년대 말에, 성경린·장사훈이 최초의 민요 개론서인 『조선의 민요』에서도 나운규 아리랑을 '본조 아리랑'이라고 체계화시켜 소개하고, 그것이 다른 지역의 아리랑과는 달리 나운규 개인의 노력에 의해 독창적으로 유래한 것임을 명시하고 있다. 한국민속대백과
6) 불쌍한 영혼의 '아리랑'
사진 설명 아래 왼쪽 미츠야마(みすやま ふみひろ 光山文博) 소위, 오른쪽 출격 전의 탁경헌(미츠야마 みすやま) 소위와 도메(とりはな とめ)
앞 사이트에서도 언급했던 이야기로 관심있고 자세히 알고 싶으면 다시 찾아 읽어 보면 좋을 듯 하다
'아리랑'의 아픈 사연. 일본 가고시마 지란(かごしま じらん)에서 카미가제(かみかぜ 神風) 특공대원(特攻隊員)으로 출격한다.
못난 권력자가 나라를 잘 못 다스린 까닭에 죄없는 백성이 내 어머니 KOREA의 '아리랑'을부르며 스스로 저승길을 택해야했다
당시 미쓰야마 후미히로 みすやま ふみひろ (光山文博·한국명 '탁경현') 라는 이도 자주 드나들었다. 아들이 없던 그의 어머니는 아무도 면회 오는 이가 없었던 그와 모자(母子)처럼 가까이 지냈다.
탁경헌님은 경남 사천(四川)출신으로 명문 교토 약학전문학교 재학 중 학도병으로 징집되었다
미츠야마(みすやま ふみひろ 光山文博) 소위는 도미야(とみや) 식당에 와서 도메(とりはな とめ 식당 주인아주머니)에게 "저는 조선사람입니다"라면서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고 한다
당연히 그는 면회오는 사람이 없었다.
6개월간 지란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1945년 5월
"아주머니!"라고 부르면서 식당에 나타났다
도메와 딸들은 미츠야마(みすやま) 소위를 다시 만나 기뻤지만 그것은 카미가제(かみかぜ 神風) 특공대원으로 부임이었던 것이다.
5월11일 출격까지 미츠야마 소위는 몇 번이나 식당을 찾았다 그리고 5월10일 출격 전날에 식당을 찾아와 말했다
노래를 들려 드릴께요" 세 사람앞에 양반자세로 앉은 미츠야마 소위는 고향의 노래를 불렀다.
모자를 길레 눌러 쓰고 비통한 목소리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2절은 일본어로 3절은 한국어로 큰소리로 불렀다. 노래를 들으면서 세사람은 미츠야마 소위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그래도 미츠야마 소위는 노래를 계속 불렀다
왼쪽 위는 지란 마을 풍경, 아래는 미츠야마(みすやま) 소위가 도메에게 주었던 노란색 지갑(みすやま ふみひろ 光山文博)라고 적혀있다. 오른쪽은 도미야(とみや) 식당에 걸려있는 아리랑(アァリラン 노래비)
세 사람은 깊이 눌러 쓴 모자 안쪽에서 눈물이 맺혀 있다고 생각했다.
미츠야마 소위는 도메에게 노란색 지갑과 사진을 선물이라면서 주었다. 딸 둘은 스스로 만든 마스코트를 주었다. 그리고 다 사람의 사진을 주었더니
"감사합니다. 모두 함께 출격하는 것이니 너무 기분 좋습니다"라고 말하면서 크게 손을 흔들고 등화관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도메는 죽을 때까지 미츠야마 소위의 가족을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고 한다.
공격은 폭탄을 달고 적함에 돌격하는 것으로 생환(生還)은 불가능한 것이다 독배를 마시고 미함정으로 그냥 그대로 들여받아 전투기와 함께 충돌하여 이슬처럼 사라진다. 당시 미 해군들이 가장 무서워했던 것이 바로 이 카미가제 특공대 비행기였다
가고시마지란かごしま じらん에서 카미가제 특공대 출격한다. 지금도 지란じらん 에 출격공항이 있다
출격하기 전에 독배를 마시고 미군함과 충돌하여 천황을 위해 죽는다
공격은 폭탄을 달고 적함에 돌격하는 것으로 생환(生還)은 불가능한 것이다
왼쪽 위 사진부터 시계방향 독배 마시고 미함정으로 그냥 그대로 들여 받아 전투기와 함께 충돌하여 이슬처럼 사라진다. 당시 미 해군들이 가장 무서워했던 것이 바로 이 카미가제 특공대 비행기였다
사진위 ↑ 침몰하는 미 군함, 카미가제 전투기가 배에 접근못하도록 대공포를 계속 쏘지만 조종간을 잡고 죽을려고 돌격해 오는 것은 막을 수가 없어 미군 항공모함은 여러차례 화염에 싸이다가 때로는 침몰한다
사진 아래, 지금의 가고시마 かごしま 지란じらん의 호타루ほだる마을의 미츠야마(みすやま ふみひろ 光山文博)소위가 찾던 도미야(とみや)식당과 도메(とりはな とめ) 식당아주머니 가게
후기
중국이 한국에 있어서 어떤 돈재인가.
소국이 감히 대국에게?
중국이 한국세 대한 태도는 노예처럼 생각하는 그릇된 사고를 만든이는 한국의 지도자 한 사람의 저자세였다
물론 동국공정 사드보복 서해침범,김치 한북 태권도 고구려 윤동주 손흥민 모두 조상은 중국것이라해도 말 한 한마디 못하고
서해 한국 영해 들어와3 중국어선들 고기를 씨를 말리는,중국의 거품을 걷혀 갑을관계를 정상화시켜야 한다
[파라과이 아리랑 플래시몹] Paraguay Arirang Flash Mob
2017 10 어떤 지노자(2022 2 10 조선일보)
3불약속 한미일동맹않겠다, MD미사일방어,,사드추가배치않겠다 며 군사주권포기
뻬이징연설 한국은작은나라 중국은 높은 산봉우리 대국으로 섦명2017 10
중국에 과도한 의존결과 사드보복 요소수 금지
새 정부는 수입 다변화 중국의존도 탈피 중국에서 벗어난 자주경제 정책을 펼쳐야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 트럼프 미 대통령 회담에서 2017 4 시진핑
☆"미국 장단에 휩 쓸리지 마라" 왕이 외교부장 2021 6
☆"부샨으로 나오라" 양제츠정치국위원 서울서 보자는 제안을 일축하고 2018 12
☆"소국이 대국에 대항해서 되겠느냐" 천하이 외교부장 한국의 기업인 만난자리 2016 12
☆"한국에 갈테니 서울공항 비우라 대통령 만나겠다"
다이빙궈 국무위원 예고없이 방한하며 2010 11
위의 이야기는 신문을 참조한 나의 견해이다
This is the president
이게 대통령이다
1.The Korean War in Vietnam
The relationship with the United States, which had been estranged for a while, has changed again, and the United States will receive a lot of support from the United States in exchange for fighting for the soldiers' lives.
One of the support was the M-16 automatic rifle
한국의 월남 전 참전으로 인해 잠시 소원해졌던 미국과의 관계가 다시 우호적으로 바뀌었으며.. 군인들이 목숨걸고 싸워 주는 댓가로 많은 지원을 미국으로부터 받게 된다.
그 지원 중의 하나가 "M-16 자동소총" 이었다.
2. The weapons used by Korea were a single-engine carbin and M1 rifle used in World War II, which were not comparable to the M-16 automatic rifle.
At that time, the Korean army was keeping a sharp inter-Korean confrontation with such weapons
한국이 사용하는 무기는 2차대전 때 쓰던 단발식 카빈과 M1 소총으로서 M-16 자동 소총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되는 그야말로 구닥다리 무기였다.
당시 한국군은 그런 무기로 첨예한 남북 대치 상황을 지키고 있었다.
3.As a condition for South Korea to dispatch military troops to Vietnam, all weapons used by the dispatchers in the United States were brought in when they were withdrawn, and the M16 automatic rifle was to be transferred to the country so that they could be manufactured in Korea.
At the time, the US manufacturer of the M-16 automatic rifle was McDonald's Douglas.
한국이 월남전에 군 병력을 파병하는 조건으로 미국에 파병군이 사용하던 무기는 철수시 모두 갖고 들어 오며 더불어 M16 자동 소총을 국내에서 제조할 수 있게 기술 이전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M-16 자동소총의 미국 제조회사는 맥도날드 더글라스 사였다.
4.The urgent US government accepted all of them and the company, McDonald's Douglas, who won the export to Korea, sent an executive to the country that imported their weapons in appreciation.
다급한 미국 정부는 이를 모두 수용했고 더불어 한국으로 수출 건을 따낸 '맥도날드 더글라스' 사는 감사의 뜻으로 자신들의 무기를 수입해 준 나라에 중역을 파견해 인사치레를 했다.
5. "It was summer, I remember it as a summer that was so hot."
I was led by the presidential secretary (McDonald Douglas' executive), and went to Park Chung-hee's office.
And the sight of the office in the door opened by the secretary made his eyes doubtful.
The president saw a man in a pile of papers on a large desk, writing something with one hand and fanning with the other, looking several times bigger than himself
He was President Park Chung-hee.
It was a poor situation that I could not believe that the president of a country was.
No matter how poor the country is, it was hard to think of him as the president.
But when I looked up at his eyes looking at me, I could feel the contradictions of the present time disappearing in me.
He was wearing a suit jacket hung from a hanger to be polite, knowing that a guest had come.
It was only then that I realized he was looking at his office in a running outfit.
Sir! David Simpson from McDonald's, USA.
As soon as the secretary introduced me, I got up and was polite to the president.
"Thank you for coming from a far place, sit down."
그가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한나라의 대통령의 모습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초라한 상황이었다.
아무리 가난한 국가라지만 그의 선치(先痔)는 도저히 대통령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을 보았을 때, 지금 까지의 모순이 내 안에서 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여름이었었다. 그것도 너무도 더웠던 여름으로 기억을 한다."
나는(맥도날드 더글라스 사의 중역) 대통령 비서관의 안내를 받아 박정희 대통령 집무실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비서관이 열어주는 문 안의 집무실의 광경은 두 눈을 의심케 만들었다.
대통령은 커다란 책상 위에 어지러이 놓여진 서류더미 속에 자신보다 몇 배 커 보이는 책상에서 한 손으로는 무언가를 적고 다른 한 손으로는 부채질을 하면서 있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그는 손님이 온 것을 알고 예의를 차리기 위해 옷걸이에 걸린 양복 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그가 러닝 차림으로 집무를 보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각하!!! 미국 맥도널드 사에서 오신 데이빗 심슨 씨입니다."
비서가 나를 소개함과 동시에 나는 일어나 대통령에게 예의를 갖추었다.
"먼 곳에서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소, 앉으시오."
6. Whether it was due to the heat of midsummer or the tension I felt for the first time in my life. I knew that my hand was unconsciously tied with a tightly tied tie.
"Ah!!!!I think I've been rude.In this spacious room alone, I think it's a waste to blow air conditioners in a country where there's no drop of oil.I don't want this debt. It is not fresh compared to the people who burn the flesh in this hot sun. "
"Look, secretary!!!! Why don't you turn on the air conditioner with a guest here?"
한여름의 더위 때문인지,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긴장 탓인지..나는 무의식적으로 굳게 매어진 넥타이로 손이 가고 있음을 알았다.
"아!!! 내가 결례를 한 것 같소이다.나 혼자 있는 이 넓은 방에서 그것도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에어컨을 튼다는 것은 큰 낭비인 것 같아서요..나는 이 부채 하나면 바랄게 없지만 말이오. 이 뜨거운 볕 아래서 살을 태우며 일하는 국민들에 비하면 신선놀음 아니겠소.."
"이보게, 비서관!!! 손님이 오셨는데 에어컨을 켜는 게 어떻겠나?"
I only then found that there was no common air-conditioning wind blowing in the office of the so-called president of a country.
And I could see that something was different from the president of many backward countries I have met so far.
I could feel the smallness of his words that I couldn’t answer.
"Oh, yes, sir..." The secretary worked the air conditioner and I was able to talk to the president about work."
Maybe that's why.
나는 그제야 소위 한 나라의 대통령 집무실에 그 흔한 에어컨 바람 하나 불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만나봤던 여러 후진국의 대통령과는 무언가 다른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의 말에 제대로 대꾸할 수 없을 만큼 작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
"아, 네.. 각하.."
비서관이 에어컨을 작동하고 비로소 나는 대통령과 업무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7. I told him the purpose of my visit to Korea as scheduled.
"Ma'am!
I am grateful that Korea has decided to import our M-16 rifles this time, and I hope this will greatly help Korea's national defense. "
And this is a small holiness of our company.I put an envelope of checks in front of him
"What is this?"
He (President Park Chung-hee) picked up the envelope and began to look at the contents.
"Well, a million dollars. That's a lot I can't touch on my salary.
A smile lingered on his face, which was cold.
I could not hide my disappointment, knowing that he was a normal person who liked money, no matter what other people were.
I found the disappointment very different from the feeling of awe (the feeling) I first felt about him.
"Ma'am! This money is a small respect that you see in our company, so please accept it."
The president laughed, closed his eyes, opened them.
예정대로 내가 한국을 방문한 목적을 그에게 이야기를 했다.
"각하! 이번에 한국이 저희 M-16소총의 수입을 결정해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드립니다. 이것이 한국의 국가방위에 크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저희 회사의 작은 성의라고 하면서..나는 준비해온 수표가 든 봉투를 그의 앞에 내밀었다
"이게 무엇이오?"
그(박정희대통령)는 봉투를 들어 그 내용을 살피기 시작했다.
"흠.. 100만 달러라~ 내 봉급으로는 만져보기 힘든 금액이구려.."
차갑게만 느껴지던 그의 얼굴에 웃음기가 머물렀다.
나는 그도 역시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것 없이 돈을 좋아하는 보통 사람임을 알고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 실망이 처음 그에 대해 느꼈던 경외(敬畏)의 느낌과는 많이 다름을 알게 되었다.
"각하!!! 이 돈은 저희 회사에서 각하에게 보이는 작은 성의입니다. 그러니 부디 받아 주십시요."
대통령은 웃음을 지으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뜨며.. 나에게 말했다.
8."Hey! Let me ask you something."
"Yes, sir!"
"Do you really give me this money?"
Yes, sir, that's right.
“Then there’s one condition instead of receiving.”
"Yes, sir, say it... sir!"
"이보시오!!! 하나만 물읍시다."
"예, 각하!"
"이 돈 정말 날 주는 것이오?"
"예. 각하, 맞습니다."
"그럼 받는 대신 조건이 하나 있소."
"네, 말씀하십시오.. 각하!"
9.He held the envelope with the check back out to me, and looked back at the envelope and said to me, wondering.
"Now this one million is my money, and I want to make a deal with your company with my money because it's my money.
Please send more M16 rifles to Korea than this money. I want guns rather than money, can you do that?
I believe that you will do enough. "
I was wide-eyed by my wonders.
"This million dollars you gave me is neither my money nor yours... This money is now swapped for the sweat and blood of my sons, my brothers and my children, who are fighting in the south of the country. How can you use such money to fill my ship as president of a country?"
Take this money back.Instead, send us this gun as much as this money.
그는 수표가 든 봉투를 나에게 다시 내밀었다. 그리고 다시 되 돌아온 봉투를 보며 의아해 하고 있는 나를 향해 말했다.
"자~ 이 돈 100만 달러는 내 돈이오. 내 돈이니까 내 돈을 가지고 당신 회사와 거래를 하고 싶소.
이 돈만큼 M16 소총을 한국으로 더 보내 주시오. 난 돈 보다는 총으로 받았으면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소?
당신이라면 충분히 해 주리라 믿고 제안하는 것이오."
나는 의아함에 눈이 크게 떠졌다.
"당신이 나에게 준 이 100만 달러는 내 돈도 그렇다고 당신 돈도 아니오.. 이 돈은 지금 내 형제, 내 자식들이 천리 타향 월남에서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는 내 아들들의 땀과 피와 바꾼 것이오. 그런 돈을 어찌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내 배를 채우는데 사용할 수 있겠소?"
"이 돈은 다시 가져가시오.대신 이 돈만큼의 총을 우리에게 보내 주시오."
10, I was surprised by his suggestion, so I jumped up and said, “I’m sorry.
"Yes, sir. Sir! I'll make sure you send me another one million dollars worth of rifles."
.I saw his smile, quite different from what I had just seen. A father’s smile, not the president of a country.
So he felt that the people of Korea were his brothers.
나는 그의 제안에 놀랐다. 그래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각하! 반드시 100만 달러 어치의 소총을 더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나는 방금 전과는 사뭇 다른 그의 웃음을 보았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아닌 한 아버지의 웃음을..
그렇게 그에게는 한국의 국민들이 자신의 형제들이요. 자식들임을 느꼈다.
11. I looked around the office once more with the guidance of the secretary who was walking out and saw the leader of a small but so big country who took off his suit jacket and quietly turned off his hand-held air conditioner. Korea is the president of a small and unfamiliar country, but I felt some respect for him.
. 배웅하는 비서관의 안내를 받아 집무실을 다시 한 번 둘러본 나의 눈에는 양복저고리를 벗으며 조용히 손수 에어컨을 끄는 작지만 너무나 크게 보이는 참다운 한 나라의 지도자를 보았다. 한국이란 작고 낯선 나라의 대통령이지만 그에게 왠지 모를 존경심을 느껴졌다.
(Writing by David Simpson, executive director of Douglas McDonald (MD)
(더글라스 맥도날드(MD)社 중역 데이빗 심슨. 씀)
아리랑>은 무슨 뜻일까요?
아리랑은 작가 미상의 우리나라 민요로써 남녀노소 누구나 잘 알고 부르는 노래입니다.
우리는 아리랑을 흔히 사랑에 버림받은 어느 한 맺힌
여인의 슬픔을 표현한 노래로 대충 그리알고 생각하는데 아리랑이라는 <민요 속에는> 큰 뜻이 담겨 있습니다.
원래 참뜻은, <참 나를 깨달아 >인간 완성에 이르는 기쁨을 노래한 <깨달음의 노래> 입니다.
<"아"(我)는> 참된 나(眞我)를 의미합니다.
<"리"(理)는> 알다, 다스리다, 통한다는 뜻입니다.
<"랑"(朗)은> 즐겁다, 다스리다 란 뜻입니다. 그래서
아리랑(我理朗)은 <참된 나(眞我)를 찾는 즐거움>이라는 의미입니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는 것은 나를 찾기 위해 깨달음의 언덕을 넘어간다는 의미이고,
"고개를 넘어간다"는 것은 <피안의 언덕>을 넘어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나를 버리고가시는 님은 십리도못 가서발병 난다."의 뜻은
진리를 외면하는 자는 얼마 못가서 고통을 받는다는 뜻으로, 진리를 외면하고 오욕락(五慾樂)을 쫓아 생활하는 자는 그 과보(果報)로 얼마 못 가서 고통에 빠진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아리랑에 대한 사연들과 그 뜻입니다. 어찌 한국인이라면 '아리랑'을 잊을 수 있을까?
↗클릭하면 '세계여행' 일기장으로~
https://cafe.daum.net/cho-rok/C8To/109
첫댓글 오浪은 일제(日帝)로부터 해방(解放)된지 77년 되는 해입니다(1945, 8, 15)
일본(日本)의 대한(對韓) 강제(强制)침범(侵犯), 수탈(收奪), 나라를 빼앗아 얼마나 많은 애국(愛國) 국민(國民)들이 죽었는지 모릅니다
해방(解放), 광복절(光復節) 하면 나는 늘 우리 민족(民族)의 노래 아리랑을 생각합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잊어서는 안될 우리의 노래 아리랑
Today is liberation from militarism Japan(1945, 8, 15)
Japan taken away Korean's sovereignty, forcing, involvement, plundering and many killed
Korea a fighter for national independence
Considering liberation. Independence Day of Korea
I remember all the time the nation's song♪ Arirang
never truly memorable occasion do not mind the song
ARIRA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