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학동 저녁노을
이토록 아름다운 가을인줄 알았다면
쓰라린 멍든 아픔 묻을 수 있으련만
소금강 붉은 노을은 어둠속 사라지네
홍제동사무소 달력 속 수요일에 대한 시
문화가 있는 수요일 말고
수요일의 운세 말고
지난주에도 비가 오고 재차 비가 오는
수요일을 위한 시
밝은데도 우울한 형광등이나
민원전화도 잊게 해주는
믹스커피를 두 잔째 마시는 수요일
그동안 했던 모든 거짓말이 살대가 된 우산을 쓰고
한 발 한 발
푹푹 빠지는 수요일
월요일로 돌아오거나
그림자나 안개를 뒤섞어
숨을 참는 곳으로 사라지지 못해
숨가쁘게 숨을 내쉬는
모든 수요일에 대한 생각
휘발된 줄 알았던 수요일이
목요일 눈으로 내리면
금요일 출근길을 걱정하고
일요일 오후를 생각하다
내일이 아직 오지 않은 수요일
코스모스의 가느다란 추위
산계리 굴참나무 군락의 오래고 큰 나무도 지나고 있을 수요일
군락지 가던 길에 핀 주름꽃 진 자리에도 수요일이 왔을까
한 발 한 발 빠져드는데도
줄기로만 싱싱한
첩첩산중
오래 끓인 잼 같은 수요일
내일 첫눈이 내리는
아버지의 분단, 고성
혈혈단신 실향민 아버지는 고성에 계시네
아버지의 북쪽 그림자는 늘 외로웠네
고향 사람이라 사칭하는 걸 알면서도 입던 외투 벗어주고
고향 말씨만 들어도 돈 꿔주고 밥과 술 퍼주고
그럴 때마다 집안이 시끄러웠네
고성이 오고 갔네, 아버지는 고성 속에 사셨네
휴전선은 멀쩡한데, 아버지만 대형사고 치셨네
보증 잘못 서면서 단칸 월세방에서 쫓겨나고
고성에서 가장 높은 산
중턱으로 기어올라 우리 가족은 군용 천막 치고 살았네
휴전선은 멀쩡한데, 가정불화의 불길은 뜨거웠네
고성이 오고 갔네, 아버지는 고성 속에 사셨네
술만 드시던 분이 과수원지기를 자처하고 나섰네
어린 나도 끌려 나가 아버지를 배웠네
잡초 뽑기, 가지치기, 잡일을 거들어야 했네
내가 당신을 피해 다닌 것도 그때부터였네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부터 당신의 어깨에도 힘이 빠지셨네
아버지는 고성에 계시네
마지막 숨까지 고성에 묻으셨네
영영 휴전선은 열리지 않고
당신 떠나고 십 년은 더 지나서야 알 것 같네
인고의 세월 살며 혼자 견딘 고성, 그리고 가족의 고성들
당신은 분단의 가슴앓이를 하셨던 거였네.
첫댓글 신인상 당선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