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장의 여인 - 권혜경
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단풍잎만 채곡 채곡 떨어져 쌓여 있네
세상에 버림받고 사랑마저 물리친 몸
병들어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
나 홀로 재생에 길 찾으며 외로이 살아 가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풀벌레만 애처로이 밤새워 울고 있네
행운의 별을 보고 속삭이던 지난 날의
추억을 더듬어 적막한 이 한밤에
임 뵈올 그날을 생각하며 쓸쓸히 살아가네
권혜경이 노래한 ‘산장의 여인’은 마산 가포동(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있는
국립마산결핵요양소(2002년 5월 국립마산병원으로 변경됨)를 배경으로 탄생했다.
마산 출신 음악가 반야월이 6?25 전쟁 당시 고향에서 방송활동을 할 때 작사한 노래.
‘산장의 여인’에는 반야월이 공연 도중 만난 한 여인의 가슴 아픈 사연이 담겨 있다.
반야월은 위문공연 중 관중석 맨 뒤쪽에서 아름다운 얼굴에 창백한 그림자를 드리운
젊은 여인이 노래를 들으면서 흐느끼고 있었던 것을 보는 순간
아련한 쓰라림 같은 게 가슴에 와 닿았다고 한다.
이 여인은 사랑에 상처를 입고 결핵에 걸려 소나무 숲 우거진 산장병동에 요양 중이었다.
폐결핵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도록 격리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얘기를 들은 반야월은 태평레코드사에서 같이 일했던
작곡가 이재호도 폐결핵을 앓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반야월은 바로 노랫말을 만들어 이재호에게 곡을 붙여달라고 요청했다.
가사를 받은 이재호는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곡을 완성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노래가 가수 권혜경에게 전해졌고,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산장의 여인’이다.
가수 권혜경 씨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각종 병들이 그녀를 공격했고 감당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픈 삶 속에서도 다른 사람을 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2008년 5월25일 노랫말 처럼 충북의 한 산골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향년 77세.
생전에 그녀는 바람이 있다면, 자신의 무덤에 ‘산장의 여인’ 노래비가 세워지는 것이라고 했다.
- 권혜경 여사의 최근 동향을 취재한 대한가수협회 발행, 'The Singers' 창간호에 실린 기사에서 -
가수 권혜경. 그녀의 이름 앞에는 늘 ‘산장의 여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흔히들 노래가 사람의 운명을 바꾼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그러한 경우의 대표적인 가수가 권혜경 씨가 아닌가 싶다.
그 노랫말대로 운명이 바뀌어 지금껏 살아온,
그러나 대중 앞에서는 늘 웃는 모습만을 보여주던 가수, 권혜경
가수 권혜경, 본명 권오명(權五明).
1931년 10월 3일, 세무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2남 4녀 중 셋째 딸로 삼척에서 출생했다.
그녀는 의정부로 이사했는데, 대문을 세 번이나 열어야만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부유하고 엄격한 가정에서 자랐다.
의정부보통학교를 거쳐 서울동구여상을 졸업한 후 부모의 뜻을 따라
당시 조흥은행에 입사해 사회에 첫발을 디딘 그녀는 스물여섯이 되던 해인 56년,
당시 서울중앙방송국(현 KBS) 가수 모집에 응시, 전속가수 3기생으로 발탁된다.
‘사랑이 메아리칠 때’,‘바닷가에서’의 가수 안다성 씨
그리고 영화배우 박노식 씨의 동생인 박노흥 씨 등이 그녀의 방송국 전속가수 동기다.
권혜경 씨는 KBS 전속가수가 된 지 얼마 후 발표하는 ‘산장의 여인’, 단 한 곡으로 신데렐라로
부상한다.
이어 그는 당대 최고 작곡가들인 손목인, 이재호, 손석우, 박춘석 씨 등과 손잡고
라디오 드라마‘호반에서 그들은’의 주제가인‘호반의 벤치’를 강수향 씨와 듀엣을 이뤄 발표했다.
또 그 뒤 59년 신상옥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동심초’의 주제가에서부터
김기덕 감독의 ‘사랑의 길’, 김화랑 감독의 ‘그림자 사랑’을 비롯해
송민도 씨의 노래 ‘나 하나의 사랑’이 모티브가 되어
영화 ‘나 혼자만이’가 제작되었을 때 이 영화 주제가를 취입한다.
아울러 우리나라 드라마 주제가 제1호 ‘청실홍실’ 역시 현인과 함께 콤비를 이뤄 취입했다.
예명 ‘권혜경’은 본인 스스로 지었다.
특히‘벼슬 경(卿)’자를 이름에 선택했을 만큼 엘리트 의식 또한 강했다.
실제로 그녀는 그때까지 가요의 주류를 이루던 트로트 창법과는 다른
클래식한 발성으로 우리 가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권혜경 씨는‘산장의 여인’을 시작으로 인기가수 대열에 들어선 지 2년 뒤인 59년,
그녀 나이 스물아홉 살에 심장판막증 판명을 받으면서 기구한 운명을 맞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행한 음반 취입과 지방 공연 등으로
당시 그의 허리는‘18인치까지 줄어들었을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이러한 투병 속에 연예활동을 하던 전성기의 권혜경은 또다시
후두암까지 선고받는 등 무려 네 가지나 되는 불치의 병마에 시달린다.
그녀의 또 다른 대표곡인 영화‘물새야 울지 마라’의 주제가인‘물새 우는 해변’은
작곡가 박춘석 씨가 투병 중인 권혜경을 배려해 호흡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원곡의 멜로디 일부를 개작까지 해 건네준 곡이다.
당시 치료차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지불해야 했던 치료비가 자그마치 2억5천만원 정도였다고
술회한다.
이러한 삶에 대한 집착의 대가로 그녀는 당시 매스컴의 보도대로 기적적으로 소생하는
듯했지만 또다시 병이 재발하는 등 몇 년간의 가수활동 내내 사투를 반복했다.
권혜경 씨는 지금까지 근 50여 년간 전국 교도소와 소년원을 돌며 사형수, 무기수, 10대 범죄자 등
재소자들을 격려해오면서 수인들 사이에서 지금도 ‘어머니’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있다.
교도소 위문공연, 강연만도 4백여 차례. 이러한 공로로 권혜경 씨는 제34회 세계인권의 날에
인권옹호유공표창을 비롯해 현재까지 표창만도 5백여 회 수상했다.
한때 그녀의 빨간 통굽 하이힐은 이제 고무신으로,
그리고 무스와 스프레이로 치장했던 화려한 헤어스타일은 어느덧 백발로 변했지만
아직도 가발을 네 개나 갖고 있는 멋쟁이라고 스스로 말한다.
권혜경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새삼 인생무상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