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구좌읍 행원리 포구
시대 ; 조선
유형 ; 위인선현유적
광해군(光海君)은 1623년 인조반정에 의해 혼란무도(昏亂無道) 실정백출(失政百出)이란 죄로 폐위되어
처음에는 강화도 교동(喬洞)으로 유배되었다.
이어 1637년 유배소를 제주로 옮기려
사중사(事中使), 별장, 내관, 도사, 대전별감, 나인(內人), 서리(書吏), 나장(羅將) 등이 임금을 압송하여
6월 16일 어등포(지금의 행원리 포구)로 입항하여 일박하였다.
이 때 호송 책임자 이원로(李元老)가 왕에게 제주라는 사실을 알리자 깜짝 놀랐고
마중 나온 목사가 "임금이 덕을 쌓지 않으면 주중적국(舟中敵國)이란 사기(史記)의 글을 아시죠?" 하니
눈물이 비오듯 하였다고 한다.
제주성 망경루 서쪽 배소(配所)에서 1641년 7월 1일 67세로 생을 마치니
목사 이시방(李時昉)이 염습하여 호송책임 채유후(蔡裕後)에 의해 8월 18일 출항, 상경하였다.
광해군은 연산군과 달리 성실하고 과단성 있게 정사를 펼쳤으나
당쟁의 와중에서 희생된 임금으로 평가받고 있다.(2007년 2월 현지의 안내 표석)
출처 : http://jejuhistory.co.kr (고영철의 역사교실)
첫댓글 몽생이 님은 어떤 분 입니까?? 제주의 속살을 속속들이 내보이는이유가 뭡니까??
그 속살을 찾아 왜 돌아 다니십니까?? 이 방대한 물량...참 대단하십니다..그저 취미..좋아서..시간이 많아서..ㅎ
그냥 좋아서요~! 원체 가만히 있는걸 못한 성격이라 .... 주어진대로 바람이 부는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