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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7일 오후 5시, 서강대학교 다산관 301호에서 개최된
2009 한국사회포럼 '한국사회 이중 위기와 기본소득' 자유토론에서
금 민(사회대안포럼 운영위원장) 님이 발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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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의 위기, 해법으로서의 기본소득
금 민 (사회대안포럼 운영위원장)
I. 이중의 위기
2009년 한국 사회는 이중의 위기에 처해 있다. 그 하나는 경제위기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의 위기이다. 비록 미국발 세계경제위기는 각국의 경기부양책에 힘입어 저점을 통과하고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지만 세계경제가 성장세로 돌아섰다고 단언할 여건은 아직 아니다.
한국 경제는 전년 동기에 대비해서 2008년 4사분기의 -3.4%, 2009년 1사분기의 -4.2%, 2사분기의 -2.5%까지 3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2010년 이후에 대한 전망도 한국이 OECD 국가들 중에서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OECD의 낙관이나 2010년 성장률을 2.5%로 높여 잡고 2011년 성장률을 5.2%로 예측하는 IMF의 낙관이 적중하기 위해서는 우선 세계경제 회복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와 같은 예측에는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는 한국 경제가 글로벌 위기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하지만 회복 국면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라는 가정이 깔려 있다. 물론 한국 경제위기는 글로벌 위기의 일부로서 신자유주의 위기의 세계적 차원과 맞물려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좀 더 주목해야 할 점은 글로벌 경제에 대한 의존성은 곧 내수성장의 취약성을 의미하고, 그 결과 세계경제 위기는 한국경제의 특수한 위기를 생산한다는 점이다.
한국경제 위기는 내수 위기, 서민경제의 위기로 나타난다. 세계경제위기의 가혹한 조정 국면 속에서 살아남은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가 예상외의 실적을 올렸다고 해서 내수가 좋아진 것도 아니고 서민경제의 위기가 해소된 것도 아니다. 글로벌 위기에도 불구하고 유독 한국경제만 몇몇 수출기업에 의존하여 잘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실적의 배경에는 환율효과와 각국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 정책의 효과가 작용했다. 인플레이션의 우려로 하반기에 이와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면 사정은 낙관적이지만도 않다. 오히려 지금과 같은 마이너스 성장의 시대에 그와 같은 유독 좋은 실적은 1997년 이래로 심화되어 온 한국경제의 수출과 내수 불균형이 더욱 심화되었음을 뜻한다.
세계 교역량의 감소로 인해 초일류 기업을 제외하고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경제회생을 위해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내수, 그중에서도 민간 소비일 수밖에 없다. MB정부도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부자감세 정책과 한국은행이 성장률을 0.5%정도 끌어올린 것으로 추정하는 자동차 세제혜택은 내수 확대를 위한 MB정부의 재정정책이다. 그런데 문제는 부자 감세와 사회복지 삭감이 초래할 사회양극화의 심화만이 아니다. 과연 그와 같은 감세 정책이 민간소비로 이어질 것인가 역시 문제가 된다.
위에서 살펴 본 것처럼, 경제위기는 글로벌 연관성이라는 보편적 차원뿐만 아니라 한국경제 특유의 수출 내수 불균형과 MB정부의 재정정책과 관련된 특수한 수준도 가지고 있다. 한국경제위기의 특수성을 세계경제 위기의 보편성의 수준으로 해소하는 것은 올바른 이해 방식이 아니다. 그러한 이해방식은 서민경제의 위기와 MB정부의 반서민적 재정정책이라는 위기의 한국적 특수성을 도외시하게 만든다. 글로벌 호황을 기다리는 것도, 한국의 수출 대기업들이 잘해 주기를 바라는 것도 경제위기의 극복책이 아니다. 오히려 세계경제 위기 속에서 한국경제의 구조전환을 도모하는 것이 위기에 대한 올바른 극복책일 것이다.
반면에, 민주주의의 위기와 관련해서는 위기의 세계적 수준, 위기의 보편성에 대한 인식이 중요해진다. 현재 한국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는 1987년 이전으로의 퇴행의 문제도 아니며 단지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와 같은 정치적 자유권의 축소에 국한된 문제도 아니다. 한국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는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민주주의 위기의 일반적인 증상을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신자유주의 시대란 사회국가와 사회공공성의 파괴의 시대이고, 공공적 복지체계가 시장화되고 잔여화되는 시대이며, 그 결과 그 이전에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접근 가능했던 공공서비스가 시장에서 구입해야만 하는 것으로 바뀐 시대라는 문제와 직결된다.
신자유주의는 국민주권자라는 보편적 자격에 입각한 당연한 권리가 시장재로 탈바꿈된 시대이다. 신자유주의 특유의 시장지상주의는 국민주권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침식하고 민주주의를 형해화한다. 국민의 사회경제적 최소공통성이 파괴되어 사회양극화가 심화되고 그 결과 두 종류의 국민으로 분할될 때, 국민주권은 선거권으로 축소되고 민주공화국은 명목상의 규정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신자유주의는 단순히 경제의 문제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 문제, 민주공화국과 민주주의의 문제이다.
한국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는 신자유주의의 일반적 관철이며 1997년 이래로의 신자유주의 경제의 필연적인 정치적 귀결이다.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와는 달리 MB정부의 노골적인 사영화, 영리화 정책, 복지삭감을 통해 과거와 같은 착시현상은 사라졌다. 하지만 또 다른 착시현상이 등장했는데 그것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보수정권의 등장에 의한 민주주의 후퇴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방식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와 같은 정치적 자유권의 문제에 국한되어 이해하도록 만든다. 그런데 MB의 미디어법의 경우도 그 핵심은 특정 방송사 길들이기가 아니라 시장지상주의에 의한 언론다양성과 공공성의 침식이다. 한국에서 민주주의 위기의 극복방향은 1987년 민주주의의 회복이 아니라 1997년 이래로의 신자유주의 극복의 문제와 불가분의 연관을 가지고 있다.
이중의 위기라는 말은 분석을 대신하는 수사가 아니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위기와 경제적 위기와 상관관계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며, 이를 동시에 교차해서 해결하는 대안이 필요할 것이다. 아래에서는 기본소득을 그와 같은 대안으로서 검토할 것이다.
II. 민주주의의 위기 그리고 위기극복의 대안으로서의 기본소득
1. 국민 모두의 보편적 복지의 실현은 민주주의 위기의 극복방향
1987년 체제는 이른바 형식적 민주주의의 성취, 즉 대통령 직선제와 정치적 자유권의 획득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이 체제는 최소한 두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하나는 결선투표제의 미비로 말미암아 정치적 대표성의 확보가 불충분하며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의 실시가 매우 부분적이었기 때문에 다양한 정치 세력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1987년 체제가 최소한 1987년 헌법에 담겨 있는 사회헌법, 경제헌법의 실현조차 뒤로 미뤄 온 체제라는 점이다. 1987년 체제는 처음부터 경제력의 재벌 집중의 기초 위에 출발하였으며 1997년 이후로는 신자유주의의 관철 속에서 현상적으로 사회양극화를 낳았고, 그 본질에 있어서 이는 국민의 사회경제적 공통성의 파괴, 정치적 국민주권의 사회경제적 조건의 상실을 의미했다. 점증하는 사회양극화에 직면하여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비롯하여 1987년 헌법의 사회조항을 부분적으로나마 실현하려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노력은 진행되는 사태에 비추어 볼 때 부족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고, MB정부에 의해서 더욱 노골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국가와 사회의 비시장적 수준 일체의 전면적인 해체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상태를 결코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없다. 비록 선거 절차와 같은 민주주의의 형식적 요소는 그대로 남아 있다 하더라도 사회적 시민권(social citizenship)의 성격과 질을 결정하는 기본적인 요소인 공공 서비스는 상업화(commercialization)되어 사회국가와 공공적 복지체계가 잔여화(residualized)된 상태, 복지가 국민이라는 보편적 자격과 지위 때문에 주어지는 '보편적 권리'가 아니라 가난, 질병, 장애 등과 같은 특수한 처지를 고려한 '국가의 시혜'가 되고 그마저 노동연계성의 강화와 시장화를 통해 축소되는 상태를 결코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국민주권의 원리이며, 정치적 국민주권의 전제조건은 국민이라는 보편적 자격에 입각한 제반 권리들이고, 사회적 권리 역시 그러한 의미에서의 보편적인 권리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권리와 정치적 국민주권을 국민이라는 보편적 자격이라는 하나의 뿌리에서 통일적으로 이해하지 않을 때, 민주주의는 작은 정부와 규제 받지 않는 자본주의와 등치되며 선거 실시 여부로 축소된다.
물론 이와 같은 상태를 '비민주주의'(non-democracy)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이러한 상태에서도 소(訴)를 제기할 권리, 재산권 등 소극적 권리는 여전히 보호되며, 무엇보다도 선거는 분명 존재하고 정부를 교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회복이나 반독재는 분명 올바른 극복 방향이라고 볼 수는 없다.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또한 '비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도 없는 이와 같은 상태는 사회복지국가를 경험한 서구의 경우 민주주의 황금기의 이후라는 의미에서 '포스트민주주의'(post-democracy)라 부를 만하다. 그런데 서구의 경우에도 포디즘과 케인즈주의에 입각한 완전고용사회로의 복귀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포스트민주주의'의 극복은 과거의 황금기로 회귀하는 원환운동이 될 수 없다. 하물며 그와 같은 사회복지국가를 경험하지 못한 한국의 경우 '복귀'나 '회복'이라는 방향설정은 타당하지 않다. 1987년을 기억의 공동체로 삼는 복고적 원환운동은 우리가 민주주의의 '후퇴'나 '미완성'을 말할 때 그 요체가 무엇인가를 은폐할 뿐이다. '위기' 또는 '후퇴'의 본령은 사회적 권리와 정치적 국민주권의 상호연관성의 지속적인 해체에 있기 때문이다.
'포스트민주주의'의 극복책은 더 많은 민주주의, 서민중심의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정치적 국민주권의 사회경제적 기초의 확보라는 방향에서 찾아야 한다. 민주공화국은 '국민 모두의 국가'(res publica)이어야 하고 물, 전기, 가스, 생태환경과 같은 공공의 것에 대한 수탈과 공공성의 파괴는 중단되어야 한다. '공동의 것은 인민의 것이다!'(Res publica res populi). 국가는 국민 모두에게 의료, 주거, 교육, 보육, 노후에 있어서의 기본복지를 보장해야 하며 국민이라면 단지 '국민'이라는 보편적인 자격에 입각하여 누구나 그와 같은 복지를 권리로서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서 국민이라면 '국민'이라는 보편적인 자격에 입각하여 누구나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기본복지의 보장이 신자유주의 이전의 서구 사회민주주의의 성과라면 기본소득은 한 걸음 더 나아간 민주주의, 신자유주의 이후 변화된 세계에서의 사회경제적 국민주권의 실현 방식일 것이다. 국민 모두의 보편적 복지의 두 축인 기본복지의 보장과 기본소득을 떠나서 민주주의 위기의 극복은 불가능하다.
2. 사회연대의 복지관과 보편적 복지 이념의 차별성
복지와 민주주의의 직접적 연관성을 부인하는 생각 속에는 복지에 관한 낡은 관념, 즉 선별적이고 시혜적인 복지관, 영국의 구빈법 이래로의 전통적인 복지관이 은폐되어 있다. 민주주의는 국민이라는 '보편적 자격'에 근거한 평등한 참정의 문제이지만, 복지는 약자에 대한 사회적 연대의 원리로서 보편적인 자격이 아니라 개별적 사회구성원의 '특수한 처지'와 관련된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이처럼 민주주의와 복지가 각각 '평등의 원리'와 '연대의 원리', '보편적 자격'의 문제와 '특수한 처지'의 문제로서 상호 구별되며, 비록 상호 보완적일 수는 있지만 그 원리에 있어서 결코 동일하지 않은 영역으로 파악될 때, 국민 모두의 보편적 복지의 이념은 설 땅을 잃어버리게 된다. 보편적 복지는 수급자의 '특수한 처지'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의 원리처럼 오직 국민 또는 사회구성원이라는 '보편적인 자격'에 근거한 복지이기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론과 사회연대의 복지론, 양자는 원리상 차별적이다. 이와 같은 차별성은 복지 재원을 얼마만큼 마련할 것인가, 또는 어떤 방식으로 재원을 조달할 것인가의 문제 이전에 존재하는 사회철학적 차별성이다.
복지를 빈곤이나 질병, 실업 등과 같은 개별적 사회구성원의 '특수한 처지'에 대한 사회적 연대의 문제로 이해할 경우, 이와 같은 ‘연대의 복지관’은 시장이 잘 기능하고 사회적 부의 생산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며 경제적 분배의 공정성이 보장된다면 복지 지출은 줄어들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그다지 상충될 이유가 없다. 국민 모두의 '좋은 삶'은 일차적으로 시장의 문제가 될 것이며, 복지제도는 설령 그 지출액이 증대하는 경우에조차 원리상 잔여화(residualized) 된다. 사회연대의 복지도 보편적 복지 이념처럼 복지가 필수불가결하다고 생각하지만, 이와 같은 공통점은 반복지주의와의 비교에서 나오는 공통성일 뿐이다. 사회연대의 복지에서 복지는 시혜성과 선별성을 벗어날 수 없으며, 국민(정치적 시민)이라는 보편적 자격에 입각한 권리로서 파악되지 않는다. 반면에 보편적 복지 이념에 입각할 경우, 복지는 국민주권의 전제조건이 되며 무조건적으로 충족시켜야 하는 국가정당성의 조건이 된다. 곧 보편적 복지관에 입각할 때 복지는 민주주의의 전제조건이기에 결코 잔여화 될 수 없다. 보편적 복지의 이념은 민주주의의 문제를 정치 영역에 한정시키지 않고 사회적 권리와 같은 포괄적인 시민권의 문제로 확장시킨다. 사회연대의 복지관은 복지 원리와 민주주의 원리의 상동성(相同性)과 무관하지만 보편적 복지의 이념의 요체는 그와 같은 상동성에 놓여 있다.
3. 기본소득과 민주주의의 원리적 상동성(相同性)
정치적 국민주권은 평등의 원리에 기초한다. 부자이건 가난한 사람이건 누구나 평등한 선거권을 가진다. 마찬가지로 기본소득 역시 평등의 원리에 기초한다. 부자이건 가난한 사람이건 재산 유무나 정도와 상관없이 동일한 액수의 기본소득을 지급받는다. 경제적 조건과 상관없이 오직 사회구성원이라는 자격에만 관련되는 기본소득 구상과 더불어 국민 모두의 보편적 복지에 관한 논의는 좀 더 포괄적인 차원으로 발전한다. 기본소득을 통해 보편적 복지의 국민주권적 차원이 열린다. 기본소득은 구빈(救貧)을 위해 지급되는 국가의 시혜(施惠)나 사회적 자선(慈善)이 아니라 모두가 대등한 사회구성원 또는 국민이라는 보편적 자격으로부터 비롯되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기본소득은 같은 원리 위에 기초한다. 기본소득 도입은 시혜적인 복지를 보편적인 복지로 바꾸고, 복지와 국민주권의 통일을 형성한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국민주권 원칙을 지키고 민주공화국의 형해화를 막기 위해서는 기본소득이 필수불가결하다. 민주주의 위기의 극복은 오직 복지 원리와 민주주의 원리의 상동성(相同性)의 제도적 실현을 통해서 가능한 일이며 기본소득 제도는 이와 같은 상동성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III. 한국에서 경제위기의 특수한 측면과 기본소득의 경제대안으로서의 가능성
한국 사회는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고용 없는 성장', 사회양극화의 시대를 거쳐 왔으며, 작년 이래로 세계경제 위기의 여파로 마이너스 성장의 시대를 경유하고 있다. 경제성장률이 2%를 가정할 때 신규 취업자 수는 0%이고, 이는 대학 졸업자 중에서 신규 취업자 수는 정년퇴직자의 수와 일치한다는 뜻이다. 경제성장률이 0%라면 취업률은 마이너스이고, 마이너스 성장이라면 줄어드는 일자리가 더 많게 된다. 이처럼 시장으로부터의 낙오자가 증가하고 실업자와 비정규직이 증가하는 시대에 국민 모두에게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복지대안이자 경제대안이 된다. 복지대안으로서 기본소득의 의의는 완전고용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일자리의 질이 떨어지는 사회에서 보편수당의 지급 없이 영역별 기본복지의 보장만으로는 국민 모두의 '좋은 삶'이 불가능하다는 점과 관련된다. 기본소득은 소비지출의 측면에서 국민 모두의 사회경제적 최소공통성을 보장한다.
기본소득의 경제대안으로서의 가능성은 무엇일까? 그 대답은 복지에 기초한 성장, 국민 모두의 '좋은 삶'을 목표로 하는 성장을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신자유주의 경제와는 질적으로 구별되는 경제운영 방식이 요구되며, 기본소득은 감세나 재래의 국가재정확대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유효수요의 지속적 확대를 통하여 '국민 모두에게 좋은 성장'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감세 또는 공공사업이나 현물 서비스형 복지의 공급과 같은 재래식 재정확대와는 달리 지급된 기본소득은 거의 모두 민간소비로 전환된다. 민간소비의 유지와 확대를 위해서는 가장 좋은 대책이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기본소득은 글로벌 경기의 부침과 관계없이 일정수준의 내수를 창출함으로써 세계경제에 연동된 경기침체의 심화를 방지해준다. 결론적으로, 수출과 내수의 불균형의 문제와 부자감세 정책의 의문스러운 경제적 효과라는 현재 한국경제 위기의 특수한 측면은 기본소득 도입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IV. 맺는 말: 두 개의 위기, 하나의 대안 그리고 그 너머로
위에서는 기본소득 도입이 민주주의의 위기와 경제위기라는 두 개의 위기를 해소하는 하나의 대안임을 살펴보았다. 아래에서는 기본소득은 두 개의 위기를 극복하고 그 너머로 나아가기 위한 경로라는 점에 대하여 살펴볼 것이다. 기본소득은 전후 자본주의의 황금기에서 완전고용을 가능하게 해 주었던 조건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시대에서 일자리 없는 사람들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전개할 수 있으며 기본소득을 통해 그들의 활동은 인정되어야 한다는 요구이다. 기본소득은 고용에 연계된 사회보장은 사각지대를 남긴다는 경고에 대한 반응이며, 임금노동이 축소되는 사회에서 임금노동 이외에 사회적 필요노동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형식들이 등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세계 경제공황이 진행되는 시점에서도 사회적 논쟁은 일자리 지키기와 임금삭감형 일자리 나누기의 대립구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러한 사정에서 기본소득은 사회발전의 또 다른 방향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기본소득 도입을 통해 임금노동을 수행하지 않고 기본소득만을 지급받는 사람들의 일과 활동이 사회적 필요노동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형식들이 발전할 가능성을 열린다. 물론 이 경우에도 사회적 필요노동의 인정과 분배는 주로 시장에서 이루어질 것이기에 그와 같은 노동이 얼마만큼 경제적으로 인정받을 것인가는 별도의 문제일 것이지만, 예컨대 임금 없이 일하고 이윤을 나누는 기본소득 수령자들의 협동조합과 같은 경제공동체가 등장할 수 있다. 기본소득은 물론 '사회적 필요노동의 사회'라는 의미에서의 노동사회를 채 넘어서지 못한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임금노동 중심의 사회'로서 노동사회를 넘어선 방향성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충분한 기본소득'의 도입은 자본주의 경제의 틀 안에서 '사회적 경제'를 수립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