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7/07/23(주) 주일예배 / 제목 : 고난은 유익을 가져다 줍니다 (삼상 23:1~4) p. 448
=============================================================================
(1) 사람들이 다윗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 마당을 탈취하더이다 하니 (2)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3)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 한지라 (4)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
들어가는 말 / 오늘도 이렇게 주님 앞에 나오신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와 능력과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오늘은 사무엘상 23장 1절부터 4절 말씀을 가지고 ‘고난은 유익을 가져다 줍니다’ 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서론 / 세상을 살다보면 기쁘고 즐거울 때도 있으나, 슬프고 괴로울 때도 있습니다. 또 모든 일이 잘되어 형통할 때도 있는 반면에 이상하게도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애간장을 태울 때도 많습니다. 또 건강하게 태어나는 사람도 있으나 이와 반대로 병약하게 태어나 일평생 고통을 몸에 지니고 힘겹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 세상에 고난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누구나 똑같지는 않지만, 예외 없이 크고 작은 고난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위대한 사람들은 고난을 이겨낸 사람들입니다.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 모세, 스데반, 엘리야, 요셉, 에스더,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 사도바울, 그들은 한결같이 고난의 관문을 통과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윗도 동일합니다. 그도 억울한 고난의 세월을 보냈던 그런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자기를 향한 아름다운 섭리와 계획이 있는 것을 믿고 꿋꿋하게 이겨나갔던 인물입니다. 양치는 목동소년이었지만, 어느 날 전쟁터에 심부름 갔다가 블레셋의 거대한 골리앗 장수를 물맷돌로 무찌른 이후에 갑자기 인기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군대의 장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승리가 오히려 그에게 화근이 되었고, 그로 인해서 핍박과 미움을 받는 처지에 떨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보면 다윗의 부모들까지도 동굴 속에 숨어있는 다윗에게 피신해 오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다윗은 그가 누리고 있던 모든 기득권들 영광스런 군대 장군의 직책들, 의지하던 것들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갈 곳이 없고, 머물 곳이 없어서 그는 외국을 전전하고, 천대를 받고, 때로는 미친 행동을 하고, 동굴과 광야에서 부엉이처럼 숨어 지내는 그런 처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런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시편 34:19는 다윗의 시입니다. 동굴 속에서 지은 다윗의 시라고 설명이 붙어 있는데,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 34: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하며 그는 찬양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시편 119편 저자는 누군지는 잘 모르지만 특별히 고난을 많이 당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겪은 고난을 이렇게 간증으로 고백합니다.
(시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난이 오히려 그에게 축복이요, 그에게 유익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바울도 로마서 8:18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롬 8:18) “생각하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내가 지금은 고난을 받지만 고난 때문에 오는 그 후의 아름다운 영광의 모습을 생각하면 고난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많은 고난이 다윗에게 오히려 축복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많은 고난의 세월이 어떻게 다윗에게 축복이 될 수 있었을까요? 고난은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고난을 통해서 배웁니다. 아픔을 통해서 깨닫습니다. 고통을 통해서 느끼는 것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사람이 평안하고 건강할 때에는 별로 깨닫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과 아픔 속에서 몸부림 칠 때, 깨닫는 것이 참 많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고난이 축복이 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고난이 우리에게 새로운 배움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본론 / 왜 고난이 유익이 될까요?
1. 고난은 기도를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에 기도를 생각하게 됩니다. 아무리 기도와 담 쌓아놓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마지막 순간에는 하나님을 부르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기도의 보좌로 초청하시는 것이 고난입니다. 현대 교회의 진정한 위기는 무엇입니까? 시설이 부족해서입니까? 재정이 없어서입니까? 사람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부족하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우리들 자신들의 기도의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너무 바빠서, 아니 기도의 필요성을 못 느껴서, 나는 기도 안 해도 잘 살고 있는데 뭐,’ 하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우리들을 기도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방해물이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고난을 통해서 한걸음 한걸음 기도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방법을 기도를 통해서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은 기도에 관한한 뼈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울 왕이 그를 얼마나 심하게 추격하고 핍박하는지 견딜 수 없었습니다.
사무엘상 21:17에 보니까 다윗은 사울이 두려워서 도망쳤을 때 어디로 피신을 했는지 아십니까? 급한 김에 블레셋의 유명한 도시 중의 하나인 가드로 피신을 했습니다. 가드에는 아기스 라는 왕이 있는데, 이 가드란 도시가 어떤 곳이었냐면, 바로 이 다윗이 물맷돌로 무찌른 장수 골리앗의 고향입니다. 다윗은 아기스 왕에게 가서 사울에게 미움을 받을까봐 두려워서 여기로 피신코자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기스의 신하들은 다윗을 용납해주지 않습니다.
“왕이시여! 이 자가 누구입니까? 이는 이스라엘의 왕, 다윗이 아닙니까? 장자 이스라엘의 왕이 될, 인기있는 장수 다윗이 아닙니까? 그가 골리앗을 무찔렀을 때 이스라엘 여인들은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고 노래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위험한 자를 어찌 받아드리려고 하십니까?”하고 펄쩍 뛰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다윗은 생명의 위협을 느꼈습니다. 그때 그는 다윗답지 않은 행동을 합니다. 갑자기 미친 사람 행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몸을 대문짝에 긁히게 하고, 수염에 침을 흘리고, 미친 소리를 내고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기스 왕이 이 모습을 보고선 ‘왜 미친 사람을 내게 데려 왔느냐? 끌어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그 사건을 통해서 뼈아픈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있었구나. 내가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지했구나.’ 그는 그 때에 잊어버렸던 기도를 깨닫기 시작합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다윗도 연약한 인간인지라 너무너무 위협을 당하니 판단력을 잃어버렸습니다. 거짓말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피신하다가 놉이라는 곳에 걸어갔는데, 거기에는 아비멜렉이라는 제사장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는 너무 굶주렸습니다. 수행원도 없었습니다. 칼도 없었습니다. 그는 아비멜렉에게 가서 ‘내가 너무 굶주렸다. 내가 왕의 특별한 명령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동행자도 없이 이렇게 왔는데, 내게 먹을 것을 주라.’고 했고 아비멜렉은 진설병을 주어서 그로 하여금 배부르게 하였습니다.
다윗이 ‘내가 칼을 미처 가져오지 못했다’고 하니까 그는 또 골리앗이 썼던 그 칼을 다윗에게 내 주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후에 이 아비멜렉과 85명의 제사장이 사울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다윗을 도와주었다는 이유 때문에 생긴 이 엄청난 비극은 다윗의 거짓말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다윗은 이 거짓말과 거짓행동을 통해서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는 이 고통 속에서 하나님만이 진정한 구원자임을 고백합니다.
(시 142:4~5) “오른쪽을 살펴보소서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나의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아보는 이도 없나이다 /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다윗은 사람을 의지할 것이 아니라 이제 하나님만이 그의 피난처가 됨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후로 다윗은 아주 비싼 대가를 치루고 기도를 배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후로는 어떤 일을 결정할 때에 즉흥적으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한 후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예로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것처럼 다윗이 그 옛날의 유대 땅에 블레셋 거민들이 쳐들어와서 공격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의분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먼저 기도하고 물어보았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1~2절) “사람들이 다윗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 마당을 탈취하더이다 하니 /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다윗은 먼저 하나님 앞에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윗과 함께 있던 400여명의 무리들이 다윗을 만류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도 이렇게 도망자의 신세에 불과한데 어떻게 남을 도울 수 있느냐? 너무 위험하지 않느냐? 우리는 그럴 힘도 없다”고 다윗을 만류했습니다. 물론 다윗도 그들의 말을 무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4절)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다윗은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다시 하나님 앞에 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셨습니다. 이제 그는 그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서 그일라를 공격한 블레셋을 쳐서 그들을 내쫓고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다윗의 인생이 조금씩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에 사울 왕이 다윗이 그일라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군사들을 데리고 그일라 성을 포위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은 다시 하나님 앞에 물었습니다. 마침 그와 함께 있던 제사장 아비아달을 통해서 에봇을 가져오게 하고 하나님 앞에 질문하게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삼상 23:10~11말씀입니다.
(삼상 23:10~11) “다윗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사울이 나 때문에 이 성읍을 멸하려고 그일라로 내려오기를 꾀한다 함을 주의 종이 분명히 들었나이다 /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주의 종이 들은 대로 사울이 내려 오겠나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주의 종에게 일러 주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가 내려오리라 하신지라”
이 말을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사울 왕에게 붙이겠습니까? 사울 왕이 나를 잡으러 여기까지 내려오겠습니까?”입니다. 이제 그는 이제 하나님 앞에 묻지 않고서는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인생에서 기도는 너무나 중요한 승리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고난 중에서 배우는 기도가 매우 귀중합니다. 그러므로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고난을 통해서 기도를 배운 다윗처럼 저와 여러분도 기도에 매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 고난이 유익이 될까요? 1. 고난은 기도를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2. 고난은 포용을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22장 1~2절을 보면 (삼상 22:1~2)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지금 아둘람이란 동굴에 숨어있습니다. 동굴은 사람이 거할 만한 곳이 아니지만 다급하기 때문에 동굴 속에 숨어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소문을 듣고 환란당한 자와 빚 진자들과 마음이 원통한자들이 무려 400명이나 다윗에게 모여 들었습니다.
그 당시에 사울왕은 다윗만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의 인생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억울한 일을 당한 마음이 원통한 사람들과 환란당한 사람들과 빚 진자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요즘처럼 카드 빚지고, 은행 빚지고, 경제가 어려워지고 살기가 힘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살 수 없기에 결국 세상을 등지고 산속 깊은 동굴로 몰려왔던 것입니다. 다윗은 그 한사람 한사람을 거절하지 않고 다 받아주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사울이 아니라 다윗에게 희망이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꿔 생각해 보면 이전의 다윗은 군대의 천부장 이었고, 왕의 사위였으며 호화로운 궁전에서 값진 음식을 먹으며 생활했습니다. 그러한 사람이라면 환란당한 사람들과 빚진 자들 같은 인생의 밑바닥을 사는 사람들을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다윗은 가장 낮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도망자이고, 노숙자이고 걸인이며 갈 곳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몰려왔을 때 그들을 이해하고 다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낮추어 그에게 낮은 자들을 보내주셨고, 오합지졸인 그들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셨던 것입니다. 또한 다윗을 통해 그들을 훈련시키고 그들의 상처를 끌어안고 그들을 위로해 주면서 그들을 이스라엘 왕국의 주역들로 준비시켰던 것입니다. 이처럼 고난은 우리에게 사람들을 이해하는 넓은 마음을 주는 것입니다. 동병상련이란 말이 있습니다. 과부의 사정은 과부가 알고, 홀아비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는 말처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고난 속에서 넓은 마음을 가지게 되어 밑바닥 사람들까지도 다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버려진 사람들이 다윗을 만나서 새로운 희망의 씨앗으로 성장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도 바로 그런 곳입니다. 이 세상에 소망이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에게 소망을 걸고 그곳에 몰려든 사람들의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세상에서 버림받고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들, 환란당한 사람들, 마음이 원통한 사람들, 빚 진 사람들이 와서 성도의 따스한 사랑을 체험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새로운 인생으로 변화되어 가는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여러분, 예수님 주위에 있던 사람들 중에 온전한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예수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당시에 비난받던 세리, 갈릴리의 무식한 어부들, 몸 파는 여인들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통해서 새로운 복음의 세계를 이루어 나가셨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비록 힘들고 어려운 삶에 처해 있더라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 새로운 희망의 꿈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주위의 어려운 이웃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서로를 용납하고 사랑할 줄 아는 포용력을 배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성도 여러분, 고난이 귀한 것은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지 않는다는데 있고 영광된 미래를 잉태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고난이 밀려올 때 고난을 피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시고 당당하게 맞서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십시오. 왜냐하면 고난 속에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믿고서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이나 앞으로 만나게 될 고난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다윗처럼 하나님께 기도하며 환경을 포용하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결론핵심 : 고난이 유익이라는 사실을 믿고서 잘 인내하며 극복해 나갑시다.
요약정리 / 왜 고난이 유익이 될까요?
1. 고난은 기도를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2. 고난은 포용을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