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7/08/06(주) 주일예배 / 제목 :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원한다면 (딤후 2:20~22) p.345
=============================================================================
(20)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22)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
들어가는 말 / 오늘도 이렇게 주님 앞에 나오신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와 능력과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오늘은 디모데후서 2장 20절과 22절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원한다면’ 이런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서론 / 한국에서는 정부의 고위직을 맡을 사람을 뽑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인사청문회라는 것을 합니다. 그런데 청문회를 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한 번에 여야가 모두 찬성하여 뽑힌 경우가 극히 드뭅니다. 왜냐하면 부동산 투기와 위장 전입, 탈세 등 ‘탈법과 불법’으로 얼룩진 후보자들의 ‘수준 낮은’ 도덕성이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뽑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만큼 그 자리에 적합한 인물들을 찾기가 어렵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여론조사에 의하면 도덕성보다는 업무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의견은 35.9%이고, 업무능력보다 도덕성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은 46.0%라고 합니다. 그만큼 우리 국민들의 생각에는 정부의 고위직을 맡을 사람은 당연히 업무능력보다는 도덕성을 더 중요하게 본다는 의견입니다. 도덕성이 문제가 되는 사람에게는 과연 이런 사람들에게 나라 살림을 맡겨도 괜찮은지 염려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은 없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나라를 이끌어갈 고위 공직자로 쓰임 받을 사람들은 당연히 국민들의 기대치와 관심이 높기 마련입니다.
어디 한 나라의 일군 뽑는 일에만 이런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크고 작은 단체를 맡아 이끌어갈 인물을 선발하거나 회사의 직원을 뽑을 때도 어디든지 이런 어려움은 있습니다. 그래서 인재를 찾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하기를 ‘사람은 많은데 그 자리에 꼭 맞는 인재는 찾기 어렵다’ 는 말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일군을 찾으실 때는 어떠실까요? 하나님 역시도 일군에 적합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러한 경우에 해당됩니다.
본론 /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1. 우리의 그릇이 깨끗해야 합니다.
우리는 큰 생각을 하며 일하는 사람을 "그릇이 크다"고 말합니다. 또한 포용력이 넓고 일을 크게 벌이는 사람에게는 "큰 그릇"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사람을 그릇에 비유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사람들을 그릇에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바울을 ‘나의 그릇’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행9:15)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사도 바울도 자신의 동역자들을 ‘그릇’으로 표현했습니다. (고후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
이처럼 하나님께 부름을 받고 쓰임 받는 우리들은 ‘그릇’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사용된‘큰 집’이란 ‘교회’를 뜻합니다. 교회를 큰 집에 비유하고 신자들을 그릇에 비유합니다. (20절)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교회는 하나님의 집으로서 대가족을 이루고 있으므로 큰 집입니다. 큰 집에 다양한 그릇이 많은 것처럼 교회는 다양한 은사를 가진 성도들이 모여 이루어졌음을 비유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의 은사와 그들이 맡은 역할과 기능의 다양함을 여러 종류의 그릇들에 비유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잘못 읽으면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누구는 귀하게 쓰임 받고, 누구는 천하게 쓰임 받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는 특별하게 쓰임 받고 누구는 평범하게 쓰임 받는 것 아닌가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금이냐 은이냐 나무냐 하는 재질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금 그릇은 귀한 은사를 받은 사람이고, 나무 그릇은 천한 은사를 받은 사람이라는 뜻도 아닙니다. 그릇의 재질이나 모양마다 쓰이는 곳이 다르듯이 성도들이 받은 은사의 다양성을 말하는 것이지 더 좋고 나쁘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 또 다른 견해 - (롬 9:21~23) 긍휼의 그릇, 진노의 그릇
하나님이 토기장이이시고 사람은 토기로 비유를 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토기인 사람을 빚으시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목적에 맞게 마음대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롬 9: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겠느냐.” 어떤 그릇을 만드느냐는 결정은 토기장이가 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사를 주셔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쓰임 받는 그릇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지 누가 금 그릇이고, 은 그릇이고, 누가 나무 그릇이고, 질 그릇이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귀히 쓸 그릇으로, 천히 쓸 그릇으로 만드실 수 있는 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릇은 만드시는 토기장이에게 항변할 수 없습니다. (롬 9: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토기장이가 토기를 만들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토기를 깨뜨려 버리는 것과 같이 우리 인생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적으로 우리를 사용하신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성경에도 다양하게 쓰임 받은 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복의 근원으로, 하나님이 만민을 복 주시려고 부르신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이 순종하여 복의 통로로 존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는 히브리민족을 선택하시고 해방시켜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는 일에 모세를 크게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복하고 정착하는 일에 여호수아를 귀히 쓰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나라를 견고하게 세우시는데 다윗을 부르시고 준비시켜 귀하게 쓰십니다. 또 교회를 세우시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일에 베드로, 요한 등 열 한 제자를 사용하십니다. 복음을 변증하고 세계 선교의 문을 여는 일에 바울을 크게 사용하십니다.
이처럼 귀하게 쓰임 받은 인물들이 있는가 하면 천하게 쓰신 이도 있습니다. 최초로 범죄하여 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 예배를 잘못 드리고 동생을 시기하여 살인한 가인이나 출애굽의 여정에서 모세에게 반역하며 고라의 무리, 통일 왕국 이스라엘을 둘로 나뉘게 한 장본인 솔로몬과 르호보암, 산당을 짓고 우상숭배를 크게 확산시킨 여로보암도 천하게 쓰임 받은 인물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천하게 쓰임 받은 인물은 예수님을 팔아 먹은 가룟 유다입니다.
이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인물들이 혹은 귀하게 쓰임 받고 혹은 천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사람을 쓰십니다. 어떤 사람은 귀하게 쓰시고 어떤 사람은 천하게 쓰십니다. 어떤 사람은 아주 좋은 상 받을 일에 사용하시고 어떤 사람은 심판 받을 부끄러운 일을 하게 버려두십니다. 반면에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일만 하여 불행하게 만드는 이도 있습니다. 새 신자나 영적으로 어린 사람이 믿음이 자라지 못하도록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흔들어 놓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누구 때문에 교회 가기 싫다.' '누구를 만나서 은혜 받은 것을 다 쏟고 말았다.'하는 말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그릇은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가치가 나타납니다. 귀한 금 그릇도 독약을 담고 있으면 독 그릇이 되고 천한 나무 그릇도 보약을 담고 있으면 보약 그릇이 됩니다. 그릇의 재료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무엇을 담고 있느냐는 것이 그릇의 가치를 높입니다. 바울은 분명 보배를 그릇에 담았다고 하였습니다. 즉 보잘 것 없는 질그릇이지만 복음이라는 보배, 사람을 살려내고 자유케 하는 빛나는 보배를 지닌 보물그릇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어떤 재료로,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던지 간에, 그릇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깨끗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1절 말씀을 보십시오. (21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깨끗함이 쓰임 받는 그릇의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이런 것’이란 거짓 교사들의 행위나 가르침을 말합니다. 이 당시에 교회에 혼란을 가져온 영지주의 이단사상이 만연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이단사상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면 세 가지에 합당한 귀히 쓰는 그릇이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순수하고 온전하게 바치는 행위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때문에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게 되며, 모든 이에게 유익을 끼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 일군들도 귀히 쓰임 받으려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아무리 재능이 많아도, 아무리 유능해도, 경건의 연습을 통해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일에 게으른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일군의 자격을 상실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깨끗하게 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속적으로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사람을 하나님의 일에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1. 우리의 그릇이 깨끗해야 합니다.
2. 청년의 정욕을 피해야 합니다.
(22상)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여기서 피할 것은 청년의 정욕입니다. 이것은 성적인 욕망뿐만 아니라 지나친 식욕과 지식욕과 명예욕 등을 말합니다. 이런 것들을 과감하게 피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한 마디로 죄를 짓게 하는 자리에서 도망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청년의 정욕이기 때문에 피하지 않으면 죄를 짓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피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중에서도 청년들이 빠지기 쉬운 성적인 유혹은 더욱 과감하게 피해야 합니다. 고전 6:18에는 “음행을 피하라”고 하였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특별히 정욕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다른 죄는 싸워서 이기라고 했으나 정욕은 피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죄는 피하는 것이 이기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삼손을 보십시오. 삼손은 드릴라를 피하지 않고 가까이 하면서 이기려고 여러 방법을 썼기 때문에 이기기는커녕 마침내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쓰임 받으려면 무엇보다도 성적인 유혹을 피해야 합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은 야곱의 12아들 중 제일 사랑받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받던 아들이 종으로 팔려가서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온갖 고생을 합니다. 그러나 그는 타고난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최선을 다했더니 오히려 요셉으로 인해서 그 보디발의 집에 굉장한 복이 임했습니다. 그는 어디를 가도 복의 근원이었고 복덩이였습니다.
그래서 이 시위대장이 너무 기뻐서 그를 가정총무로 삼았습니다. 주인을 대신해서 모든 재산을 다 관리하는 청지기 역할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유혹이 왔습니다. 시위대장 보디발의 부인이 젊고 잘생긴 요셉을 유혹하는 것입니다. 우리 남편은 멀리 출장 중에 있고 종들도 밖에 다 일하러 갔으니 너와 나 밖에 우리집에 없다. 나와 동침하자하면서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물론 요셉은 외롭습니다. 그 외로움을 한 여인의 포옹 속에서 풀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냉정하게 거절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계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요셉의 위대한 점입니다. 요셉은 그런 종살이 속에서도 준비되었고 때가 되니 하나님이 그를 들어쓰셔서 애굽의 국무총리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오늘도 정결하고 깨끗한 사람을 쓰십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1. 우리의 그릇이 깨끗해야 합니다. 2. 청년의 정욕을 피해야 합니다.
3. 주님을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해야 합니다.
(22하) “...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따르라’는 말은 ‘추격하다’ 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열정을 가지고 절대 놓칠 수 없다는 확신에 차서 끈질기게 추구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적극적으로 좇으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좇다”는 말은 전쟁터에서 적을, 사냥터에서 짐승을 추격하여 뒤쫓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은 바울의 경험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는 과거 그리스도인들을 사냥한 경험이 있습니다. 바울은 그런 식으로 ‘좇으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좇아야 할까요? 그것은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義)는 하나님의 뜻과 부합되는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데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 삶이고, 경건한 생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겸손하고 전적인 신뢰를 말하는데 하나님의 약속들을 신실하게 믿으며 의심치 않는 것이며, 그것을 주장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은 원수까지도 자비의 대상으로 삼는 형제에 대한 깊은 애정을 말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화평'은 모든 그리스도인들 간의 평화롭고 완전한 상호 이해를 말하는데(마 5:9; 요 13:34; 롬 12:18). 스스로 안정되고 견고한 사람이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은 것입니다. 적이 없고 원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특별히 주님은 이 삶이 혼자서는 어렵다는 것을 아시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하라고 권합니다. '깨끗한 마음'은 '불의에서 떠나고'(19절), '자기를 깨끗하게 한'(21절) 사람들의 내면적인 인격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고, 거룩하게 된 성도들이며, 불의에서 떠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깨끗하게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세속적인 가치가 교회 안에까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영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라고 말합니다. 이 땅의 성공과 번영을 꿈꾸는 사람들을 떠나 하나님의 나라를 갈망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라고 말합니다.
결론 /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이 주는 결론은 ‘하나님은 깨끗한 그릇을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우리의 그릇이 깨끗해야 하고, 청년의 정욕을 피해야 하며, 주님을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평생 동안 하나님께 쓰임 받아 많은 영광을 돌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소망을 가지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최종 인사권자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쓰임 받아야 합니다. 아무쪼록 그런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결론핵심 : 깨끗한 그릇이 되어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됩시다.
요약정리 /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1. 우리의 그릇이 깨끗해야 합니다.
2. 청년의 정욕을 피해야 합니다.
3. 주님을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