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7/08/13(주) 주일예배 / 제목 : 하나님의 뜻과 믿음 (히 11:20) p.366
=============================================================================
(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
들어가는 말 / 오늘도 이렇게 주님 앞에 나오신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와 능력과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오늘은 히브리서 11장 20절 한절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과 믿음’ 이런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서론 / 이스라엘의 족장들인 아브라함은 175세, 이삭은 180세, 야곱은 147세를 살았습니다. 이삭이 그들 중에 가장 오래 살았지만 창세기 기자는 이삭에게 가장 작은 지면을 할애합니다. 왜냐하면 이삭은 아브라함이나 야곱에 비교할 때 굴곡이 별로 없는 평범한 인생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이삭이 믿음으로 행동하는 모습이 여러 차례 나옵니다. 창세기 22장을 보면 아버지인 아브라함이 번제를 드리려고 이삭을 묶을 때 이삭은 저항 없이 아브라함이 하는 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보니 번제 사건 때문에 이삭이 믿음의 사람이 된 것은 아닙니다. 창세기 26장을 보면 이삭은 우물파기 명수입니다. 그런데 우물을 파서 물을 얻을 때마다 그랄 사람들이 와서 시비를 걸며 우물을 빼앗습니다. 그 우물을 내주고 다른 곳에 가서 또 우물을 파면 또 와서 시비를 겁니다. 이렇게 두 번씩이나 우물을 빼앗겼는데 세 번째 우물을 팔 때는 그랄 사람들이 더 이상 시비를 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비가 붙을 때마다 이삭은 양보했습니다.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보니 우물 사건 때문에 이삭이 믿음의 사람이 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히브리서 기자가 이삭의 믿음을 칭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믿음으로 야곱과 에서를 축복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삭이 믿음으로 야곱과 에서를 축복한 것이 왜 이삭의 대표적인 믿음의 행위가 되었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울러 우리들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본론 / 이삭의 행동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창세기 27장에 언급된 이삭을 보면 그는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삭은 육신의 눈만 어두워진 것이 아니라 영의 눈도 어두워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삭이 저지른 실수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니”(창 27:2) 이삭은 자기가 얼마 살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고 죽기 전에 맏아들 에서를 축복하려고 합니다. 에서에게 장자권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축복은 보통 언제 합니까? 죽기 직전에 자기의 인생을 정리하면서 합니다. 그러나 이삭은 아직 죽을 때가 되지 않았습니다. 에서에게 축복하려던 때 이삭의 나이가 137세쯤 되었을 때입니다. 이삭이 180세에 죽었으니 앞으로 40년 이상 살 날이 남았습니다. 그런데도 곧 죽을 것 같이 조바심을 내다가 실수합니다. 약해져가는 자기의 육신에 연민을 가지게 되어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합니다.
이삭이 저지른 두 번째 실수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삭은 40세에 아버지가 정해준 리브가를 아내로 맞이하였습니다. 그러나 60세가 되기까지 20년간 자식을 갖지 못했습니다. 이에 이삭이 하나님께 간구하니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리브가의 태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쌍둥이를 잉태하였는데 그 아이들이 태중에서 서로 싸우니 당황한 이삭이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며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말씀하십니다.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 25:23). 이는 야곱이 비록 동생으로 태어났지만 하나님의 뜻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뒤를 이어 야곱이 영적인 장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삭이 아들들에게 장자권에 대하여 어려서부터 분명히 알려주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기로 한 사람은 야곱이니, 에서는 야곱을 통하여 은혜를 받고, 야곱은 형 에서를 포용해야 한다고 말해주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삭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후 리브가는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을 낳습니다. 먼저 나온 아들은 피부가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붉음”이라는 의미로 “에서”라고 이름을 지었고, 나중에 나온 아들은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발꿈치를 잡았다”는 뜻의 “야곱”이라고 지었습니다. 분명 하나님께서는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조용한 야곱보다는 활동적인 에서를 더 좋아했고 당연히 그가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생각은 이삭의 고집이 되어 노년에 결국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에서에게 축복하려고 했습니다.
이삭이 저지른 세 번째 실수는 하나님의 방법을 분별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삭은 에서에게 말하기를 사냥을 하여 잡은 고기로 자기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가지고 오라고 합니다. 이는 그 음식을 실컷 먹고 에서를 장자의 축복으로 마음껏 축복하겠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7장에서 반복되는 단어 중의 하나가 ‘별미’입니다. 나의 즐기는 별미(4절), 네 부친이 즐기시는 별미(9절), 그 아비의 즐기는 별미(14절). 이 단어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보다는 자기 입을 더 만족시키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삭은 비록 시력은 약해졌지만 식욕은 여전히 왕성합니다. 이는 말씀을 가까이 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고 먹는 데에만 관심이 있으면 이삭과 같이 되어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장자를 축복하는 의식은 축복을 받는 사람 뿐만이 아니라 그 집안 식구 모두의 경사입니다. 그래서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복을 자식에게 전하는 이 거룩한 의식을 행하기에 앞서서 3일 금식하면서 특별 작정기도를 드린다든지, 아니면 집안 식구들을 모아 놓고 예배를 드리면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 자기를 통하여 자식에게 내려감을 가르친다든지 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삭에게는 그러한 경건한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도리어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실컷 먹고 아내인 리브가와 야곱이 없는 틈을 타서 자기가 좋아하는 아들 에서에게 마음껏 축복해줄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삭은 가정에서 믿음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삭과 에서의 대화를 공교롭게도 리브가가 엿듣게 됩니다. 그래서 에서가 사냥하러 나간 동안에 리브가는 계략을 꾸입니다.
리브가는 야곱을 불러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전하고 남편 이삭을 속이려는 계획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리브가는 집에 있는 짐승으로 급히 별미를 만들어 야곱의 손에 들려 이삭에게 보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남편을 철저하게 속이기 위해서 리브가는 야곱에게 에서의 옷을 입히고 염소새끼의 가죽을 매끈매끈한 야곱의 손과 목에 감습니다. 왜냐하면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기에 손과 목을 털로 위장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삭은 목소리는 야곱의 목소리이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털이 많은 손을 만져보고 옷의 냄새를 맡고서는 에서인줄로 착각하고 식사 후에 그 자리에서 축복합니다.
축복하기를 마치자 야곱이 나가고 에서가 사냥한 고기로 별미를 만들어 가지고 와서 자기를 축복해 달라고 합니다. 그때 이삭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27:33절에 보면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이르되 그러면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라고 놀랍니다. 그러면 이삭이 왜 이렇게 심히 크게 떨었을까요? 그것은 자기는 분명히 에서를 축복했다고 하였는데 사실은 야곱을 축복한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제서야 이삭은 하나님께서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겠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형의 축복을 가로챈 야곱이 얄미워서 분한 마음에 떤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하나님께서 뜻하신 대로 되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에서가 아니라 야곱이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삭은 그렇게 역사하신 하나님이 너무 두려워서 심히 크게 떨었던 것입니다. 이삭이 심히 떨었던 때가 사실은 이삭이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는 순간입니다.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든 이삭이 진정한 의미의 믿음의 여정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빼앗긴 것도 억울한데 하나님의 복도 빼앗겼으니 에서 편에서 볼 때 얼마나 억울하였겠습니까? 그래서 에서는 자기에게도 축복해달라며 울며 매달립니다. 그렇지만 빼앗긴 복은 운다고 또는 화를 낸다고 돌이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에서는 이삭에게 남은 복이라도 달라고 통사정을 하지만 줄 복이 없는 것입니다. 결국 이 일로 인하여 에서는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을 인하여 야곱을 더욱 미워하게 되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는 날에 야곱을 죽이리라고 결심합니다.
창세기에는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는 장면이 27장과 28장에 걸쳐 길게 나와 있는데 히브리서에는 같은 사건을 다루면서 단 한 줄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아버지와 형을 속인 사건에 대하여는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삭의 신앙의 절정은 그가 두 아들을 축복할 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라고 되어 있는데 ‘장차 있을 일’은 과연 무엇을 말할까요?
그것은 야곱이 영적 장자가 되고 야곱의 후손을 통해서 이스라엘 나라가 생기고 그 나라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날 일을 말합니다. 보통 자녀의 이름을 열거할 때 장자부터 먼저 쓰는데 본문을 보면 ‘야곱과 에서’로 나옵니다. 이는 육적으로는 야곱이 에서의 동생이지만 영적으로는 야곱이 에서의 형님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28장을 보면 이삭은 비로소 자신의 의지를 꺾고 야곱을 축복합니다. 이제야 이삭은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고 야곱을 장자로서 마음껏 축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27장 28절과 29절은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축복이라기보다 야곱을 에서로 잘못 알고 축복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28장 3절과 4절에는 형을 피해 도망가는 야곱에게 그가 진짜 영적인 장자인 줄 알고 제대로 축복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족속을 이루라는 축복은 창세기 26:3에서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약속이며 아브라함에게 여러 차례 하셨던 약속이기도 합니다. 이어서 자손과 땅에 대한 축복을 합니다.
이삭은 깨어짐의 경험을 통해서 다시금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됩니다. 에서를 축복하려고 했으나 야곱을 축복하게 되었을 때 이삭은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역사에 대해서 완전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대로 사는 것이 믿음이 있는 삶입니다. 자기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칭찬받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일단 믿음의 길로 가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이전에 우리가 어떤 모습을 가졌든지 상관없이 우리를 믿음의 사람이라고 인정해주십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번제로 죽을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은 여전히 이루어질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죽은 자를 능히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삭도 장차 약속을 이루어주실 것을 믿고 야곱을 축복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도 자녀들을 이런 믿음으로 축복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삭을 통하여 얻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속은 사실을 깨달았을 때 “심히 크게 떨었다”는 것은 단지 속은 것에 대한 분노가 아닙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기 때문에 충격을 받고 심히 크게 떤 것입니다. 자기는 분명히 에서를 축복한다고 하였는데 결과적으로는 야곱을 축복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이삭이 깨달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간이 아무리 고집을 부려도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만이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이삭이 그것을 깨달았을 때 히브리서 기자는 그것을 믿음으로 보았습니다.
결국 이삭이 보여주는 믿음이 무엇입니까? 자기 고집, 자기 계획, 자기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삭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계획에 따랐다면 모든 것들이 순조롭게 풀려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이삭대로 고집을 피우고 리브가는 야곱과 함께 잔꾀를 부리다가 가정이 불화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에서를 피해 외삼촌 집으로 도망쳐야 했고 에서는 야곱을 죽이고 싶을 만큼 분을 냈으며 이삭과 리브가는 사랑하는 둘째 아들을 멀리 보내야만 했습니다.
이삭과 리브가의 만남은 결혼 초기에는 얼마나 아름다웠습니까? 그러나 이삭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서도 계속 에서를 편애하고 장자권을 주고자 했습니다. 게다가 장자권을 주는 귀한 날에도 금식하며 작정기도를 드리거나 예배를 드리면서 언약이 무엇인지를 가르치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아내는 남편을 속이는 관계가 되었고 형은 동생을 죽이려는 험악한 관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가정의 질서가 흐트러집니다. 이것은 단지 이삭 부부 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자칫하면 우리도 진흙탕 속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흙탕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집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그래서 이삭의 불순종으로 집안이 부끄러운 가정이 되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믿음의 사람으로 다시 만들어가셨습니다. 결국 마침내는 이삭의 믿음이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삭이 이제는 믿음으로 야곱과 에서를 축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뜻을 이루겠다고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념이라고 말합니다. 믿음이란 내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삭은 그의 인생 말년에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을 높이 평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였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이 주는 결론은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어떤 모습으로 살았든지 일단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면 그 자리에서 돌아서서 자기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지시기 하루 전에 십자가의 잔이 옮겨지기를 기도했지만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의 우리 모습을 살피면서 우리 고집을 내려놓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아무쪼록 그런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결론핵심 :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며 삽시다.
요약정리 / 이삭의 행동이 주는 교훈
이삭이 저지른 실수 - 하나님의 때와 뜻과 방법을 분별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삭을 통하여 얻는 교훈 -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