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29 주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마태 28, 16 ~ 20
나에게는 11명의 서품 동기들이 있다. 부산교구에는 나를 포함 9명, 마산교구는 2명이다. 다들 적어도 20년 이상을 지내왔던 동기 사제이자 친구이자 형이다. 한국에서는 적어도 한달에 한번씩 동기 모임을 가지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같은 사제의 삶을 걸어가는 영적인 형제들이다. 가장 오래 만난 동기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예비 신학생 모임을 통해서 만났고, 그 시간은 올해로 벌써 24년이나 되었다. 그래서 친형제 같고, 그 동기 사제의 부모님은 나의 부모님 만큼이나 가깝게 느껴진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내왔기에 서로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떠한 점을 싫어하는지도 잘 안다.
이러한 동기들 중에 유별나게 가까운 절친과 같은 동기가 한 명이 있다. 처음 신학교에서 만났을 때에는 가장 많이 다투고 싸웠던 친구지만, 지금은 가장 절친한 동기 신부 중에 한 명이 되어버렸다. 한국에서는 월요일만 되면 연락하고, 만나서 운동을 하거나, 서로 고해성사를 해주거나, 시도때도 없이 만나는 시간이 많은 동기이다. 지금도 일주일에 두세번 서로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를 묻고, 때로는 한시간이 넘도록 통화를 하기도 하는 동기이다.
여러분도 이러한 절친과 같은 가족이나 친구나 동료가 있을 것이다. 친한 사이이기에 서로를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것은 쑥스럽거나 잘 안하게 되는 경향이 있지만, 힘들때나 기쁠때면 꼭 서로 연락해서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친구가 있을 것이다.
그러한 친구라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에 꼭 한번씩 언급을 하게 된다. ‘내 친구중에 ??? 이라고 있는데 말이야. 걔는 어떻고, 이러쿵 저러쿵 한다‘하면서 이야기를 하게 된다. 나에게 소중하고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만약 그 사람이 지금 나와 가까운 곳에 있지 않고, 한국에 있든, 캐나다 다른 지역의 먼 곳에 있든 간에 자주 그 사람을 생각하게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주님과 나와의 관계로 이렇듯 절친과 같은 사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처럼 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고, 그렇게 될 수 있을 때 다른 사람에게 증언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주님께 대한 믿음은 나에게 큰 힘이 된다.
오늘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면서 우리는 마태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그 말씀을 내가 실천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를 통해서 깨달은 신앙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주님을 함께 믿읍시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토록 사랑하고 믿는 주님께 필요한 것을 청하고, 좋은 것을 지향하고 생활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 우리는 이 미사를 ‘민족들의 복음화‘. 즉 세상의 모든 민족과 국가, 서로 갈라져 갈등하고 다툼이 있는 모든 공동체의 일치와 사랑을 위해 기도하는 날이다. 그리고 공동체의 일치와 사랑을 이루기 위한 방법이 바로 우리의 믿음을 통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각자 노력하고 기도하는데 큰 의미가 있음을 기억하는 날이다.
오늘 이러한 주일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먼저 나는 얼마나 주님을 내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살아가고 있는지 성찰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나 자신과 나의 가정과 공동체를 위한 기도 뿐만 아니라,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지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기도는 ‘잘 되겠지‘, ‘주님이 알아서 이루어 주시겠지’가 아니라, 내가 지향하고 봉헌하는 기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나의 주변부터 살피고 챙기는 실천이 꼭 전제되기 때문이다.
오늘 이 미사를 통해서 우리나라인 한국이,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주님의 말씀과 사랑을 통해 일치와 평화가 가득하길 기원하도록 하자. 또한 아직 우리처럼 주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살아가지 못하는 이들이, 나와 같은 믿음을 깨달음으로써 신앙으로 일치되고, 기쁨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