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의 다섯번째 발현
(99주년 행사 베티성지입니다)
1917년 9월13일.
성모님의 발현시각이 가까워지자 나는 히야친타와 프란치스코를 데리고 코바 다 이리아로갔다.
그러나 우리 주위로 몰려드는 군중때문에 쉽게 나아가지 못했다.
길은 사람들로 붐볐고 군중은 우리에게 말을 걸려고 아우성이었다.
인간적인 존경이나 존중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신사나 숙녀를 가릴것없이 모두 우리에게 가까이 오기위해 서로 밀치고있었고 자기들의 소원을 부탁해달라고 우리앞에 무릎을 꿇기까지 했다. 우리에게 가까이 올 수없는 사람들은 멀리서 소리를 지르기도했다.
어떤 사람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불구인 내 아들을 고쳐 주시길 성모님께 구하여달라"고 소리쳤다."눈먼 내 아들을,,,,," "귀머거리인 내 아들을 .....""내 남편과 아들이 전쟁에서 돌아올 수 있길........."
하면서 모두들 아우성이었고 어떤 사람들은 "성모남께서 이 죄인을 회개시켜주시도록........." "결핵을........."등의 말을 전해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마치 세상의 모든 병자들이 거기 모인것같았다.우리가 지나가는 것을 보기위해 나무나 언덕위로 올라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는 말을 거는 사람들에게 응해주려했고 먼지 바닥위에 무릎꿇은 사람들을 일의키려고 애를 썼다.
그런 와중에서도 우리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것은 우리앞에 서서 군중을 뚫고 길을 열어준 어느 신사 덕분이었다.
알주스트렐, 파티마의 코바 다 이리아의 좁은 길을 보면서 주님께서 거리를 지나가실때 군중이 환호하며 그 분의 길을 가득 메웠을 광경을 그려보았다. 그리고 주님께 감사드리면서 착한 포루투칼 국민들의 신앙을 바쳤다. 그들이 초라한 우리 세 아이에게 그토록 자신들을 낮출 수있었던것은 하느님의 어머니와 직접적으로 얘기를 나눌수 있는 우리의 은혜를 인정했기 때문이리라.
이러한 이야기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것은 펜이 제멋대로 움직인 결과의 객담이다. 그러나 노트를 아끼기위해 찢지는 않겠다.
우리는 그러한 군중을 헤치고 겨우 코바다 이리아에 도착했다. 떡갈나무 가까이에 도착하여 거기 모인 사람들과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기 시작했다. 조금후 우리는 섬광을 보았고 예의 그 떡갈나무 위에 성모님께서 나타나셨다.
"전쟁이 끝나도록 계속해서 묵주기도를 바쳐라. 10월에는 주님께서도 오실것이고 통고의 성모와 가르멜의 성모도 함께 올 것이다.
요셉성인도 아기예수와 함께오셔서 세상을 축복해 주실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너희들의 희생을 대단히 흡족히 여기신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들이 잠자리에서까지 그 끈을 메고있는것을 좋아하지 않으신다. 낮동안만 메고 있도록해라."
그때 우리들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한 희생으로 굵은 밧줄을 맨살에 묶고있었다.
"귀먹어리, 벙어리등 병자들을 고쳐주시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래 고쳐주겠다. 그러나 그들중 어떤이는 고쳐줄 수없단다. 10월에는 모든 사람들이 믿을 수 있도록 기적을 보여주겠다.
그러고는 전과 다름없이 성모님께서는 자태를 감추셨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