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로 들어서는 11월부터의 독일 날씨는 늘 짙은 안개, 가랑비, 진눈깨비까지 졸졸 따라 다니는 칙칙한 날들로 이어지다가
어느 땐 폭설이 내리기도 한다. 거의 빛을 못 보는 날들이 수두룩하다.
한국에서 온 한 초등 학생이 독일 고모네에 한 달 정도 머물다 한 얘기를 직접 들었다;
‚고모 독일은 원래 햇빛이 없는 나라 이예요’ 라고!
이런 을씨년스러운 11월의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다. 한 통의 전화가 울렸는데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독일인 에스토아 박사 였다. 독일의
콜 수상 때에 높은 관직에 계시다 은퇴하신 독신녀시다.
이 분은 김치를 참 좋아하시는데 그 세월도 자그마치
60여 년 되었다. 뮌스터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기숙사생활을
할 때, 한 한국인이 공동부엌에서 늘 이상한(?) 음식 하나를 만들곤 했었는데
그게 바로 김치였고, 그 때 매료되었던 그 김치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기숙사에
함께 기거하면서 김치 만들었던 주인공은 신부로서 공부할 때인 고 김수환
추기경 이었다. 말하자면 이 분은 고 김수환
추기경과는 뮌스터 대학 동기동창간이다.
(그간 에스토아 박사도 나의 주선으로 한국여행을 갔었을 때 생 전의 김수환
추기경님을 만났다).
이 분의 전화용건은 베를린에서 온 한 예수회 신부가 M시에 묻힌 옛
동료들의 묘지를 찾는데 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내가 예수회 신부들과 친분이 두터웠던 C박사 묘를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회 신부들의 묘 위치도 잘 알고 있었다.
이 묘지공원에 대해 잠시만; 낮은 언덕바지를 낀 이 M시의 거대한 공원묘지에는 세기의 신학자인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1884-1976)과 유명한 종교학자이자 신학자인 루톨프 오토(Rudolf
Otto:1869-1937)도 묻힌 곳이다.
1800년대의 유대인들의 비석도 현존하는 이
곳의 무덤들은 계절마다 살아 있는 자의 손에 의해 다른 꽃으로 갈아 입혀진다. 이른 봄에는 주로 ‘스티프 뮈터헨’(Stiefmütterchen)이, 5월 중순 경이
되면 빨간색, 보라색, 노란색, 하얀색의 베고니에(Begonie) 밭을 이룬다. 독일 특유의 잿빛하늘과 삭막함과 황량함이 극도로 치닫는 11월이
되면 일제히 에리카(Erika)로 뒤 덮인다. 이 붉은 에리카는
성탄 소나무 가지와 짝을 이루어 겨울 내내 공원 묘지를 훤하게 밝힌다.
독일인들의 사시사철 산책코스
이기도 한 이 곳은 ‘오늘은 나, 내일은 너’라는 글귀를 진지하게 명상할 수 있는 장소다. 무덤 속의 혼들이 ‘오늘은 나’에 속한다면, 살아있는 자들은 대비적으로
‘내일은 너’가 된다. 말하자면 죽은 자 쪽에서 우리들은
지금 이렇게 땅속에서 잠자고 있지만, 내일 언젠가 너희들도 우리처럼 이렇게 땅속에 눕는다는 사실을 알리는
문구다. 좌우지간 살아있을 때 잘 살아라! 라는 뜻을 넌지시
던져 주는 곳 이기도 하니 어찌 엄숙하고 진지한 명상이 되지 않겠는가?
드디어 나는 노신부와 에스토아 박사를 예수회 신부들의 묘지로 인도했다.
그
노신부는 무덤들을 보자 말자 감회에 젖어서 각 비석에 새겨진 옛 동료신부들의 이름 하나 하나를 다정스러이 부르면서 생전 모습과 성격까지 무덤 속에서
건져 올리기 시작했다:
“여기 잠든 이 신부는 영어선생이었고, 저
신부는 문학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기에 성당에서 교리보다는 문학강의를 더 좋아했고, 여기 이 신부는 살아
생전에 강론을 너무 길게 하다 보니 신자들이 많이 지루해 했었지만 그 신부는 살아 생전에 유명한 강론가/설교가로
명성을 날렸다고! 이들 생 전의 모습들을 특징적으로 솔솔 나열 하던 것을 듣고 있었던 나는 죽은 이
들은 이 노 신부의 독백을 과연 천국에서 듣고는 있었을지? 아니 천국이 정말 있는지? 하지만 이런 교리를 믿는다는 할지라도 죽은 후 어느 누구도 ‘천국이
이렇더라’고 구체적으로 알려준 이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십 년
전 쯤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1978-2005)이 서거했을
때도 교리는 교리 일뿐이라는 사실을 진하게 느꼈다. 당시 독일에서도 이 교황서거에 대해 정말 귀가 따갑도록
연일 방송했다. 필자는 호기심 때문에 방송들을 자세히 분석해 보았다.
‘아!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우리 교황이 드디어 성서에 나오는 천국으로 가셨다’는
이 말을 은연 중에 기대하면서 한번 듣고 싶었던 거다. 당시 내가 들은 방송 범위 내에서는 전혀 이런
언급이 없었고, 오직 이 분의 죽음만을 애도 할 뿐이었다.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최고’라는 말을 다시 한번 실감했던 터다.
나는
다시 그 노신부를 지긋이 바라 보았다. 이제 그는 마치 옛 예수회 동료들을 다시 만나기나 한 듯이 이들을
조심스럽게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 찍고 있는 이 노 신부의 모습이 나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오늘은 나’와 살아있는 ‘내일은 너’ 사이의 아름다운 우정 교류로 다가왔다.
(((-월간 에세이에 실렸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