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각성존 소태산 대종사 비명병서
( 圓覺聖尊 少太山 大宗師 碑銘竝序 )
대범大凡
천지天地에는 사시四時가 순환循環하고
일월日月이 대명代明하므로
만물萬物이 그 생성生成의 도道를 얻게 되고
세상에는 불불佛佛이 계세繼世하고
성성聖聖이 상전相傳하므로
중생衆生이 그 제도濟度의 은恩을 입게 되나니
이는 우주宇宙의 정칙定則이다.
옛날 영산회상靈山會上이 열린 후
정법正法과 상법像法을 지내고
계법季法 시대에 들어와서
바른 도道가 행하지 못하고 삿된 법이 세상에 편만遍滿하여 정신精神이 세력을 잃고
물질物質이 천하天下를 지배하여
생령生靈의 고해苦海가 날로 증심增深하였나니
이것이 곧 구주救主이신 대종사大宗師께서
다시 세상에 출현出現하시게 된 기연機緣이다.
대종사의 성姓은 박朴씨요 휘徽는 중빈重彬이요
소태산少太山은 그 호號이시니
석존 기원釋尊紀元 2918년
신유辛酉(圓紀前 27년1991) 음陰 3월 27일에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에서 탄생하시었다.
부父는 박회경朴晦傾 모母는 유정천兪正天이시요
신라 시조왕新羅始祖王
박혁거세朴赫居世의 후예後裔이시다.
대종사 유시幼時로부터 기상氣像이 늠름凜凜하시고
도량度量이 웅대雄大하시며
모든 사물事物에 매양 사색思索의 정신이 많으시고
한번 하기로 한 일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반드시 실천하는 용단력勇斷力이 있으시었다.
9세시에 우주宇宙의 자연현상自然現象을 보시고
큰 의심(疑心)을 발하시었으나
그 의두疑頭를 풀기로 한즉 생각이 막연漠然하여
도저히 구경처究竟處를 해득解得하기가 어려워
대종사의 우울하신 심경은 날이 갈수록 깊어지시어
처음에는 산신山神에게 다음에는 도사道士에게
의뢰依賴를 구하여 보시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시고
필경은 주소일념晝宵一念이 오직 한 의심뿐으로
점점 계교돈망計較頓忘하는
삼매三昧의 경계境界에 드시었으니
이 사이에 생활의 곤란困難과 심신心身의 피로는
이루 다 말 할 수 없으시었다.
26세 되시던 병진丙辰(圓紀 元年1916)
음陰 3월 26일 이른 아침에
동천東天의 서광曙光을 보시고 정신이 문득 상쾌해지시며
적세積歲에 맺혔던 의두疑頭가 풀리기 시작하여
드디어 대각大覺을 이루시었다.
대종사 대각을 이루신 후
전성前聖의 증오처證悟處를 참고하기 위하시어
제가諸家의 경전經典을 열람閱覽하시다가
금강경金剛經을 보시고 가라사대
서가모니불釋迦牟尼佛은 진실로
성중성聖中聖이라 하시고
이에 부처님에게 연원淵源을 정하시고
다시 현 시국現時局을 관찰觀察하시니
세도世道가 이미 위기危機에 당하여
그 구제사업救濟事業이 시급함을 생각하시고
처음 9인 제자를 얻으시어
최초법어最初法語를 설하신 후
영육쌍전靈肉雙全의 기초基礎를 닦기 위하여
먼저 저축조합貯蓄組合을 설치設置하시어
길룡리 해면海面의 간석지干潟地를 개척開拓하시고
무아봉공無我奉公의 정신을 세우기 위하여
기도서원祈禱誓願을 명命하시었던바
구인이 한 가지 혈인血印의 신성信誠을 바치었다.
기미己未(원기(圓紀 3년1919) 8월에
2,3 제자를 데리시고
석장錫杖을 봉래산蓬萊山에 옮기시어
5년간 주재主宰하시며
교리제도敎理制度의 초안草案을 대략 마치신 후
갑자甲子(圓紀 9년1924) 4월에 하산下山하시어
총부摠部를 차此 신룡리新龍里에 건설하시고
불법연구회佛法硏究會라는 임시 명칭으로
교문敎門을 공개하시어
제자 수십 인으로 더불어 주경야독晝耕夜讀의
간고艱苦한 생활을 하여가며
교리훈련敎理訓練을 시작하시었나니
교리敎理의 대강大綱은
일원一圓을 최고종지最高宗旨로하여
이를 신앙信仰의 대상對象과
수행修行의 표본標本으로 하는 동시에
천만사리千萬事理를 다 이에 통일統一하게 하시고
사은사요四恩四要를 윤리倫理로 하여
종전從前에 미달未達한 모든 윤리를
다 통通하게 하시고
삼학팔조三學八條를 수행修行으로 하여
종전에 편벽偏僻된 일체수행을 병진竝進하게 하시며
다시 영육쌍전靈肉雙全 이사병행理事竝行 처처불상處處佛像
사사불공事事佛供 무시선無時禪 무처선無處禪 등 대체大諦를 밝히시어
사통오달四通五達의 원융圓融한 도道로써
모든 法법을 간이능행簡易能行하게 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교리훈련敎理訓練을 실시하시는 한편으로
다시 생활제도生活制度의 개선改善에 착수하시어
허례산삭虛禮删削과 미신타파迷信打破며
자작자급自作自給과 수지대조收支對照 등 방법으로써
새로운 사업기초를 쌓으시어
춘풍추우春風秋雨 20여 년에 숙야근간夙夜勤懇하시와
일정日政의 압제壓制와 싸워가며
모든 난관難關을 극복하시어
교단건설敎團建設에 오로지 심혈心血을 다하시더니
무상無常이 신속迅速하여
계미癸未(원기 28년1934) 5월 16일에
대중을 모으시고
생사진리生死眞理의 대법문大法門을 최후로 설하신 후
6월 1일에 열반상涅槃相을 보이시니
세수世壽는 53이요 개법開法이 28년이었다.
때에 도중徒衆들은 반호벽용攀號擗踊하여
그칠 줄을 몰랐고
일반사회의 차탄嗟嘆하는 소리
연하여 마지아니하였으며
허공법계虛空法界와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다 같이 오열嗚咽하는 氣像을 보이었다.
그 후 교단敎團은 한결같이 선사先師의 유업을 이어
시국時局의 만난萬難을 겪으며
대중이 일심동진一心同進하던 중
을유乙酉(원기 30년1945) 8월에
민족民族의 해방解放이 되자
신생국운新生國運의 발전과
아울러 교세敎勢가 점차 확창擴暢됨에
병술丙戌(원기 31년1946) 4월에
교명敎名을 원불교圓佛敎라 정하고
이를 천하天下에 공시公示하였다.
오호嗚呼라!
대종사는 일찍이 광겁종성曠劫種聖으로
궁촌변지窮村邊地에 생장하시어
학문學問의 수습修習이 없었으나
문리文理를 스스로 아셨고
사장師張의 지도指導가 없었으나
대도大道를 자각自覺하시었으며
판탕板蕩한 시국을 당하였으나
사업을 주저하지 아니하시고
완강頑强한 중생衆生을 대할지라도
제도濟度의 만능萬能이 구비具備하시었으며
기상氣像은 태산교악泰山喬嶽 같으시나
춘풍화기春風和氣의 자비慈悲가 겸전兼全하시고
처사處事는 뢰뢰락락磊磊落落하시나
세세곡절世世曲節의 진정眞情을 통해 주시며
옛 법을 개조改造하시나 대의大義는 더욱 세우시고
시대의 병病을 바루시나
완고頑固에는 그치지 않게 하시며
만법萬法을 하나에 총섭總攝하시나
분별分別은 오히려 역력歷歷히 밝히시고
하나를 만법萬法에 시용施用하시나
본체本體는 항상 여여如如히 들어내사
안으로는 무상묘의無上妙義의
원리原理에 근거根據하시고
밖으로는 사사물물事事物物의 지류支流까지 통하시어
일원대도一圓大道의 바른 법을
시방삼세十方三世에 한없이 열으시었으니
이른바 백억화신百億化身의 여래如來시요 집군성이대성集群聖而大聖이시라
영천영지永天永地 천만겁千萬劫에 무량한 그 공덕을
만일萬一이라도 표기標記하기 위하여
이 돌을 세우고 이 명銘을 지어 가로대
粤若宗師 曠劫種聖 應化機緣 救世徒衆
自修自覺 經路艱難 建敎事業 平地造山
一圓大道 萬法之母 敎門通達 衆聖共會
二八年間 夙夜勤懇 千萬方便 無量法門
法輪復轉 佛日重輝 人天咸戴 六衆同歸
堅亘三際 橫遍十方 雨露之澤 日月之明
無邊功德 標以斯石 永天永地 慕仰無極
월약종사여 광겁종성으로 응화기연은 구세도중이라
자수자각하니 경로간난이요 건교사업은 평지조산이라
일원대도는 만법지모요 교문통달하니 중성공회라
이팔년간을 숙야근간하니 천만방편이요 무량법문이라
법륜부전하고 불일중휘하니 인천함대하고 육중동귀라
수긍삼제하고 횡변시방하니 우로지택이요 일월지명이라
무변공덕을 표이사석하니 영천영지에 모앙무극이라
圓紀 38년(1953) 4월26일 立
첫댓글 정성이 하늘을 찌르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번 특별기도에 못오신분들도 이곳에 모셔놓은 비문을 많이 보시고 공부 하셨으면 좋겠네요^^*
정초기도 삼일동안 열심히 교무님께 배웠는데 카페에서는 쉽게 배우시겠지요 허나 교무님께 직접 구전심수로 배운것만은 못하지요.. 수긍삼제하고 횡변시방하니 우로지택이요 일월지명이라.( 시간상으로는 삼세에 뻗치고 공간상으로는 시방에 가득 차서..즉 대종사님 공덕과 지혜가 우주에 가득 차니 그은혜가 비와 이슬을 내리심같은 크신 혜택이요 해와 달과 같은 밝음이시라... 정산종사님은 대종사님을 이렇게 추모하셨는데 저희들도 마음깊이 공감될때까지 공부의 표준삼겠습니다.
근무로 인하여 정초기도에 참석하지 못하여 아쉬움이 컸습니다.
올려주신 글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