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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 능히 업장(業障)을 깨끗하게 함 “또 수보리(須菩提)야 선남자 선여인(善男子 善女人)이 이 경(經)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움으로 만일(萬一) 사람에게 업신(業身)여김을 받게 된다면 이 사람은 전생(前生)의 죄업(罪業)으로 마땅히 악도(惡道)에 떨어질 것이지만. 금생(今生)에 이 사람이 업신(業身)여김을 받음으로써 전생(前生)의 죄업(罪業)이 곧 소멸(消滅)되고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으리라. 수보리(須菩提)야. 내가 과거(過去) 한량없는 아승지겁(阿僧祗劫)을 생각(生角)하니. 연등(燃燈)불을 뵙기 전(前)에도 팔백사천만억 나유타(八百四千萬億 那由他)의 여러 부처님을 만나서 모두 다 공양(供養)하고 받들어 섬겼으며 헛되이 지냄이 없었노라. 만약(萬若) 또 어떤 사람이 앞으로 오는 말세(末世)에 능히 이 경(經)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면 그 얻는 바 공덕(功德)은 내가 저 여러 부처님께 공양(供養)한 공덕(功德)으로는 백분(百分)의 일(一)도 미치지 못하며. 천만억분(千萬億分)과 내지 어떤 산수(算數)의 비유(譬喩)로도 능히 미치지 못하느니라. 수보리(須菩提)야. 만약(萬若) 선남자 선여인(善男子 善女人)이 앞으로 오는 말세(末世)에 이 경(經)을 받아지니며 읽고 외워서 얻는 바 공덕(功德)을 내가 만약(萬若) 다 갖추어 말하면. 혹(或) 어떤 사람은 듣고서 곧 마음이 혼란(混亂)하여 의심(疑心)하고 믿지 않으리라. 수보리(須菩提)야. 마땅히 알아라. 이 경(經)의 뜻은 가히 생각(生角)할 수 없으며 과보(果報)도 또한 가이(可以) 생각(生角)할 수 없느니라.”
제17. 마침내 내가 없다 그 때 수보리(須菩提)가 부처님께 말씀 드리기를.
“세존(世尊)이시여. 선남자 선여인(善男子 善女人)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을 낸 이는 마땅히 어떻게 머물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降伏)받으리까?” 부처님께서 수보리(須菩提)에게 이르시기를. “만약(萬若)선남자 선여인(善男子 善女人)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을 냈다면 마땅히 이와 같이 마음을 낼지니. 내가 마땅히 일체 중생(一切 衆生)을 열반(涅槃)하도록 하지만 실(悉)로 한 중생(衆生)도 열반(涅槃)함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須菩提)야. 만약(萬若) 보살(菩薩)이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이 있으면 곧 보살(菩薩)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왜 그러한가 하면 수보리(須菩提)야. 실(悉)로 진리(眞理)가 없는 것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기 때문이니라.” “수보리(須菩提)야. 어떻게 생각(生角)하느냐. 여래(如來)가 저 연등불(燃燈佛) 처소(處所)에서 진리(眞理)가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었겠느냐?”
“아닙니다. 세존(世尊)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 하신 뜻을 이해(理解)하기에는 부처님께서 저 연등불(燃燈佛) 처소(處所)에서 진리(眞理)가 없었으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었나이다.”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 “그러하고 그러하니라. 수보리(須菩提)야. 실(悉)로 진리(眞理)가 없으므로 여래(如來)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나니라.” 수보리(須菩提)야. 만약(萬若) 나에게 진리(眞理)가 있어서 여래(如來)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은 것이면 연등불(燃燈佛)께서 곧 나에게 수기(授記)를 주시면서 ‘너는 미래(未來) 세상(世上)에 마땅히 부처되어 이름을 석가모니(釋迦牟尼)라 하리라.’ 하시지 않으려니와 실(悉)로 나에게 진리(眞理)가 없으므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었으니 이런 연고(緣故)로 연등(燃燈) 부처님께서 나에게 수기(授記)를 주시면서 말씀하시되. ‘너는 내세(來世)에 마땅히 부처되리니 이름을 석가모니(釋迦牟尼)라 하리라’. 고 하사니라. 왜냐하면 여래(如來)라 하는 것은 곧 진리(眞理) 그 자체(自體)라는 뜻이기 때문이니라. 만약(萬若)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여래(如來)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었다라고 하면 수보리(須菩提)야. 여래(如來)가 얻은 바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가운데는 실(悉)다움도 없고 헛됨도 없느니라. 이런 연고(緣故)로 여래(如來)가 말하기를 일체(一切) 진리(眞理)가 다 이것이 부처님 진리(眞理)라고 하느니라. 수보리(須菩提)야. 비유(譬喩)하면 사람의 몸이 대단히 큰 것과 같느니라.” 수보리(須菩提)가 말씀 드리기를.
“세존(世尊)이시여. 여래(如來)께서 말씀하신 사람의 몸이 대단히 크다는 것도 곧 큰 몸이 아님일새 그 이름이 큰 몸입니다.” “수보리(須菩提)야. 보살(菩薩)도 또한 이와 같아서 만약(萬若) 말하기를. ‘내가 마땅히 한량없는 중생(衆生)을 열반(涅槃)하도록 한다.’ 한다면 곧 보살(菩薩)이라 이름하지 못하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須菩提)야. 실(悉)로 진리(眞理)가 없어야만 보살(菩薩)이라 이름하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체진리(一切眞理)에는 나도 없고 사람도 없고 중생(衆生)도 없고 오래 삶도 없다. 하느니라. 수보리(須菩提)야. 만약(萬若) 보살(菩薩)이 말하기를 ‘내가 마땅히 불국토(佛國土)를 장엄(莊嚴)하리라.’하면 이는 보살(菩薩)이라 이름하지 못하리라. 왜냐하면. 여래(如來)가 말한 불국토(佛國土)를 장엄(莊嚴)한다는 것은 곧 장엄(莊嚴)이 아님일새 그 이름이 장엄(莊嚴)일 뿐이기 때문이니라. 수보리(須菩提)야. 만약(萬若) 보살(菩薩)이 나라고 할 것 없는 진리(眞理)를 통달(通達)한 자(者)이면 여래(如來)는 이를 참다운 보살(菩薩)이라 이름하느니라.”
제18. 일체(一切)를 하나로 봄 “수보리(須菩提)야. 어떻게 생각(生角)하느냐. 여래(如來)에게 육안(肉眼)이 있느냐?”
“그러하옵니다. 세존(世尊)이시여. 여래(如來)에게는 육안(肉眼)이 있습니다.” “수보리(須菩提)야. 어떻게 생각(生角)하느냐. 여래(如來)에게 천안(千眼)이 있느냐?”
“그러하옵니다. 세존(世尊)이시여. 여래(如來)에게는 찬안(千眼)이 있습니다.” “수보리(須菩提)야. 어떻개 생각(生角)하느냐. 여래(如來)에게 혜안(慧眼)이 있느냐?”
“그러하옵니다. 세존(世尊)이시여. 여래(如來)에게는 혜안(慧眼)이 있습니다” “수보리(須菩提)야. 어떻게 생각(生角)하느냐. 여래에게 법안(法眼)이 있느냐?”
“그러하옵니다. 세존(世尊)이시여. 여래(如來)에게 법안(法眼)이 있습니다.” “수보리(須菩提)야. 어떻게 생각(生角)하느냐. 여래(如來)에게 불안(佛眼)이 있느냐?”
“그러하옵니다. 세존(世尊)이시여. 여래(如來)에게는 불안(佛眼)이 있습니다.” “수보리(須菩提)야. 어떻게 생각(生角)하느냐. 애래(如來)에게 불안(佛眼)이 있느냐?”
“그러하옵니다. 세존(世尊)이시여. 여래(如來)에게 불안(佛眼)이 있습니다.” “수보리(須菩提)야. 어떻게 생각(生角)하느냐. 항하(恒河) 가운데 있는 모래를 부처님이 말한 적이 있느냐?”
“그러하옵니다. 세존(世尊)이시여. 여래(如來)께서 모래를 말씀하셨습니다.” “수보리(須菩提)야 어떻게 생각(生角)하느냐. 한 항하(恒河)의 모래 수(數)만큼의 항하(恒河)가 있고. 이 여러 항하(恒河)의 모래 수(數)만큼의 부처님 세계(世界)가 있다 하면 얼마나 많겠느냐?”
“심히 많습니다 세존(世尊)이시여”. 부처님께서 수보리(須菩提)에게 이르시기를. “저 국토(國土) 가운데에 있는 중생(衆生)들의 여러 가지 마음을 여래(如來)는 다 아느니라. 왜냐하면 여래(如來)께서 말씀하시는 여러 가지 마음은 모두 다 마음이 아님일새. 그 이름이 마음일 뿐이기 때문이니라.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수보리(須菩提)야. 과거(過去). 현재(現在). 미래(未來)의 마음을 모두 다 얻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제19. 진리(眞理)의 세계(世界)를 통(通)해 교화(敎化)함 “수보리(須菩提)야. 어떻게 생각(生角)하느냐. 만약(萬若) 어떤 사람이 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에 가득한 칠보(七寶)로써 보시(布施)하면. 이 사람이 이 인연(因緣)으로 복(福)을 얻음이 많겠느냐?”
“그러하옵니다. 세존(世尊)이시여. 이 사람이 이 인연(因緣)으로 복(福)을 얻음이 대단히 많겠습니다.” “수보리(須菩提)야. 만약(萬若) 복덕(福德)이 참으로 있는 것이라면 여래(如來)가 복덕(福德)을 얻음이 많다고 말하지 않으련만 복덕(福德)이 없는 것이므로 여래(如來)가 복덕(福德)을 얻음이 많다고 말하느니라.”
제20.몸을 여의고 모습(模襲)을 여읨 “수보리(須菩提)야. 어떻게 생각(生角)하느냐. 부처를 가이(可以)‘충분(充分)히 갖추어진 형상(形相)이 있는 몸’으로써 볼 수 있느냐?” “아닙니다. 세존(世尊)이시여. 여래(如來)를 마땅히 ‘충분(充分)히 갖추어진 형상(形相)이 있는 몸’ 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如來)께서 말씀하신‘충분(充分)히 갖추어진 형상(形相)이 있는 몸’이란 곧 고정(固定)된 ‘충분(充分)히 갖추어진 형상(形相)이 있는 몸’이 아니고 그 이름이 ‘충분(充分)히 갖추어진 형상(形相)이 있는 몸’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세존(世尊)이시여. 여래(如來)를 ‘충분(充分)히 갖추어진 모든 모습(模襲)’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如來)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모습(模襲)이 충분(充分)히 갖추어 짐’이란 곧 고정(固定)된 ‘모든 모습(模襲)이 충분(充分)히 갖추어짐’이 아니고 그 이름이 ‘모든 모습(模襲)이 충분(充分)히 갖추어짐’ 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제21. 말하는 바는 말이 아님 “수보리(須菩提)야. 너는 여래(如來)가 생각(生角)하되 ‘내가 마땅히 말한 바 진리(眞理)가 있다.’고 하지 말며 그런 생각(生角)을 하지 말아라. 왜냐하면 만약(萬若)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여래(如來)가 말한 진리(眞理)가 있다’.라고 하면 이는 곧 부처님을 비방(誹謗)하는 것이 되나니 능히 내가 말한 바를 알지 못한 까닭이니라. 수보리(須菩提)야. 진리(眞理)의 말이란 것은 진리(眞理)가 없음을 가이(可以) 말함이니 그 이름이 진리(眞理)의 말이니라.” 그때 혜명수보리(慧命須菩提)가 부처님께 말씀 드리기를.
“세존(世尊)이시여. 어떤 중생(衆生)이 오는 세상(世上)에서 이러한 진리(眞理)의 말을 듣고 믿는 마음을 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 “수보리(須菩提)야. 저들은 중생(衆生)이 아니며 중생(衆生) 아님도 아니니라. 왜냐하면 수보리(須菩提)야. ‘중생(衆生)’‘중생(衆生)’이다 하는 것은 여래(如來)가 말하기를 본래 중생(本來衆生)이 아님일새 그 이름이 중생(衆生)일 뿐이니라.”
제22. 진리(眞理)는 가히 얻을 것 없음 수보리(須菩提)가 부처님께 말씀 드리기를.
“세존(世尊)이시여. 부처님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으심은 얻은 바가 없음이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그러하고 그러하니라. 수보리(須菩提)야. 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는 낮은 진리(眞理)에 이르기까지 얻은 바 없음을 가히 얻음이니 이를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 이름하느니라.” 제23. 깨끗한 마음으로 선(善)을 행(行)함 “ 다시(多時) 또 수보리(須菩提)야. 이 진리(眞理)는 평등(平等)하여 높고 낮음이 없으므로 이것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 이름하느니라. 나도 없고 사람도 없고 중생(衆生)도 없고 오래 삶도 없는 것으로써 일체(一切)의 좋은 진리(眞理)를 닦으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느니라. 수보리(須菩提)야. 말한 바 좋은 진리(眞理)가 아님일새 그 이름이 좋은 진리(眞理)이니라.”
제24. 복(福)과 지혜(智慧)는 견줄 수 없음 “수보리(須菩提)야. 만약(萬若)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 가운데 있는 수미산왕(須彌山王)같은 모든 칠보(七寶)무더기를 어떤 사람이 가져다 널리 보시(布施)하더라도 만약(萬若) 어떤 사람이 이 반야바라밀경(般若波羅蜜經 )에서 네 개의 글귀 등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다른 사람을 위해 말해준면 이는 앞의 복덕(福德)으로는 백분(百分)의 일(一)도 미치지 못하며 백천만억분(百千萬億分)과 온갖 산수(算數)의 비유(譬喩)로도 능히 미치지 못하느니라.”
제25. 가르친 곳 없는 가르침 “수보리(須菩提)야. 어떻게 생각(生角)하느냐. 너희들은 여래(如來)가 생각(生角)하되 ‘ 내가 마땅히 중생(衆生)을 제도(濟度)한다.’하지 마라. 수보리(須菩提)야. 이런 생각(生角)을 하지 말아라. 왜냐하면 실(悉)로 제도(濟度)할 중생(衆生)이 없으니 만약(萬若) 여래(如來)가 제도(濟度)할 중생(衆生)이 있다 하면 여래(如來)에게는 곧 나와 사람과 중생(衆生)과 오래 삶이 있음이니라. 수보리(須菩提)야. 여래(如來)가 말하되 나라고 하는 것은 곧 내가 있음이 아니거늘 범부(凡夫)된 사람들이 이것을 내가 있다고 여기나니라. 수보리(須菩提)야. 범부(凡夫)라는 것도 여래(如來)가 말하되 곧 범부(凡夫)가 아님일새 그 이름이 범부(凡夫)니라.”
제26. 진리(眞理)의 몸은 모습(模襲)이 아님 “수보리(須菩提)야. 어떻게 생각(生角)하느냐. 가이(可以) 삼십이상(三十二相)으로써 여래(如來)를 볼 수 있겠느냐?” 수보리(須菩提)가 말씀 드리기를. “그러하고 그러하옵니다. 삼십이상(三十二相)으로써 여래(如來)를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 “수보리(須菩提)야. 만약(萬若) 삼십이상(三十二相)으로써 여래(如來)를 본다면 전륜성왕(轉輪聖王)도 곧 여래(如來)이리라.” 수보리(須菩提)가 부처님께 말씀 드리기를.
“세존(世尊)이시여.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理解)하는 바로는 마땅히 삼십이상(三十二相)으로써 여래(如來)를 볼 수 없습니다.” 그 때 세존(世尊)께서 게송(偈頌)으로 말씀하셨다.
“만약(萬若) 모습(模襲)으로 나를 보거나 음성(音聲)으로써 나를 구(求)하면 이 사람은 삿된 길을 행(行)함이라 능히 여래(如來)를 보지 못하리라.”
제27. 끊어 없앰이 없음 “수보리(須菩提)야. 네가 만약(萬若) 생각(生角)하되. ‘여래(如來)는 충분(充分)히 갖추어진 모습(模襲)을 의지(意志)하지 않는 연고(緣故)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었다!’하느냐. 수보리(須菩提)야 ‘여래(如來)는 충분(充分)히 갖추어진 모습(模襲)을 의지(意志)하지 않는 연고(緣故)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는다!’이런 생각(生角)을 하지 말아라.” “수보리(須菩提)야. 네가 만약(萬若) 생각(生角)하되 ‘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을 낸 사람은 모든 진리(眞理)를 끊어 없앤다.’이런 생각(生角)을 하지 말아라. 왜냐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을 낸 사람은 저 진리(眞理)가 끊어져 없어진 모습(模襲)이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제28. 받지도 않고 탐(貪)하지도 않음 “수보리(須菩提)야. 만약(萬若) 보살(菩薩)이 항하(恒河)의 모래 수(數)와 같은 세계(世界)에 가득 찬 칠보(七寶)를 가지고 보시(布施)하시더라도 만약(萬若) 또 어떤 사람이 일체진리(一切眞理)에나 없음을 알아서 인욕(忍辱)을 얻어이루면 이 보살(菩薩)은 앞의 보살(菩薩)이 얻은 바 공덕(功德)보다 더 높고 훌륭하나니라. 왜냐하면 수보리(須菩提)야. 모든 보살(菩薩)은 복덕(福德)을 받지 않기 때문이니라.” 수보리(須菩提)가 부처님께 말씀 드리기를.
“세존(世尊)이시여. 어찌하여 보살(菩薩)은 복덕(福德)을 받지 않겠습니까?” “수보리(須菩提)야. 보살(菩薩)은 지은 바 복덕(福德)에 마땅히 탐착(貪着)하지 않나니. 이런 연고(緣故)로 복덕(福德)을 받지 않는다고 말하느니라.” 제29. 위의(威儀)가 적정(寂靜)함 “수보리(須菩提)야. 만약(萬若)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여래(如來)는‘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고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한다.’라고 한다면 이 사람은 내가 말한 바 뜻을 알지 못함이니라. 왜냐하면 여래(如來)란 어디로부터 온 바도 없고 또한 가는 바도 없으므로 여래(如來)라 이름하기 때문이니라.” 제30. 이치(理致)와 모습(模襲)은 하나임 “수보리(須菩提)야. 만약(萬若) 선남자 선여인(善男子 善女人)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을 부수어 작은 먼지로 만든다면 어떻게 생각(生角)하느냐. 이 작은 먼지들이 얼마나 많겠느냐?” 수보리(須菩提)가 말씀 드리기를.
“매우 많겠습니다. 세존(世尊)이시여. 왜냐하면 만약(萬若) 이 작은 먼지들이 실(悉 )다운 것이라면 부처님께서 곧 작은 먼지들이라고 말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작은 먼지들은 곧 작은 먼지가 아님일새 그 이름이 작은 먼지들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세존(世尊)이시여. 여래(如來)께서 말씀하신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도 곧 세계(世界)가 아님일새 그 이름이 세계(世界)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만약(萬若) 세계(世界)가 참으로 있는 것이라면 곧 이것이 변(變)함없는 한 모습(模襲)일 것이며 여래(如來)께서 말씀하신 한 모습(模襲)도 곧 한 모습(模襲)이 아님일새 그 이름이 한 모습(模襲)일 뿐입니다.” 수보리(須菩提)야. 한 모습(模襲)이라 하는 것도 곧 가이(可以) 말로는 표현(表現)이 안되거늘 다만 범부(凡夫)된 사람들이 그 일에 탐착(貪着)하느니라.”
제31. 안다는 견해(見解)를 내지 않음 “수보리(須菩提)야. 만약(萬若)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부처님이 아견(我見). 인견(人見). 중생견(衆生見). 수자견(壽者見)을 말하였다 한다면 수보리(須菩提)야. 어떻게 생각(生角)하느냐? 이 사람은 내가 말한 바 뜻을 이해(理解)한 것이냐?”
“아니옵니다. 세존(世尊)이시여. 그 사람은 여래(如來)께서 말씀하신 뜻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존(世尊)께서 말씀하신 아견(我見). 인견(人見). 중생견(衆生見). 수자견(壽者見)은 곧 아견(我見). 인견(人見). 중생견(衆生見). 수자견(壽者見)이 아님일새 그 이름이 아견(我見). 인견(人見). 중생견(衆生見). 수자견(壽者見)이기 때문입니다.” “수보리(須菩提)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의 마음을 낸 자(者)는 일체(一切)의 진리(眞理)에 마땅히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믿고 이해(理解)하여 진리(眞理)의 모습(模襲)이 아님일새 그 이름이 진리(眞理)의 모습(模襲)이니라.” 제32. 변화(變化)하는 것은 참모습(模襲)이 아님 “수보리(須菩提)야. 만약(萬若) 어떤 사람이 한량없는 아승지 세계(阿僧祗 世界)에 가득 찬 칠보(七寶)를 가지고 보시(布施)할지라도 만약(萬若) 또 어떤 선남자 선여인(善男子 善女人)이 있어 보살심(菩薩心 )을 일으켜서 이 경전(經典)을 가지되 네 개의 글귀 등을 받아 지녀 읽고 외우며 다른 사람을 위해 연설(演說)하면 그 복(福)이 더 높고 훌륭하리라. 어떻게 사람들을 위하여 연설(演說)하는가. 모습(模襲)을 취(取)하지 않으므로 항상(恒常) 같고 같아서 흔들리지 아니함이니라. 왜냐하면. 온갖 함이 있는 진리(眞理)는 꿈. 그림자. 꼭두각시. 거품 같으며 이슬 같고 또한 번갯불 같나니 마땅히 이와 같이 볼지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經)을 말씀하시어 마치시니. 장로수보리(長老須菩提)와 여러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憂婆塞). 우바이(憂婆夷)와 일체 세간(一切 世間)의 하는. 사람. 아수라(阿修羅) 등리 부처님의 말씀 하심을 듣고 모두 다 크게 환희(歡喜)하며 믿고 받아지니며 받들어 행(行)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