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내가 못보고 몰라도 그 사람은 잘 살고 있길 바랄 수 있잖아 실제로 잘 살 수도 있고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삶이 있는 거지.. 또 언젠간 만날 수 있겠지 하는 희망도 있는 건데 이게 죽음이랑 같은 선에 설 수가 있나..?! 심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사람 같아 5살 어린 아이 정도면 저렇게 생각하는 게 이해가 감
엇... 단순히 사람이 아니라 그 인물의 과거모습이라면 이해가 확 된다. 예를들어 내가 너무 좋아했던 모습이 특정 시점을 기준으로 확 변해버려서 더 이상 찾을수없고, 앞으로도 그 모습을 볼 수 없을 확률이 99% 이상이라면... 그건 어쩌면 죽은거나 다름없을지도 모르지...
물리적으로 만나지 못한다는 점만 동일하지 않을까. 산사람이라면 무엇이든 공유하고 있는것이 있지. 일절 소통이 없더라도, 존재 자체를 모를지라도 최소한 같은 하늘은 공유하잖아. 이 연장선으로 공동체 의식, 이타심 같은 것들이 발현 되는듯해. 반면 죽음은 정말 아무것도 공유할수가 없어. 함께 보낸 과거조차 나 혼자만의 회상일뿐. 현재형도 미래형도 없이 과거형만 있을 뿐이야.
의미론적 관점으론 비록 살아는 있지만 더이상 그 무엇조차 공유할 수 없을 것 같은 타인이 있을 때, 차라리 죽었다고 생각하는게 마음 편할수도 있을 것 같긴해. 이 경우는 그사람이 정말 미친듯이 밉거나, 아니면 미친듯이 그립거나 그렇겠지. 개인적으론 그래도 죽은 사람을 그리워 하는것 만큼의 먹먹함은 아니더라. 살아있어도 내 마음속에선 죽었거나, 죽었어도 내 마음속에선 살아있는 사람..정말 내 마음에 달린 것 같아. 간만에 여러 각도로 생각해보게 되네.
나는 그 친구의 장례식도 못갔으니 믿기지 않아서 걔가 살아있는것 만 같은데 못만나는 느낌이었어 몇년간.. 이제는 진짜 없다는 게 확실해졌지만
당연히 차이가 있지요..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라면 살아있다면 만나지않더라도 어느정도 미운 감정 서운한 감정이 있겠지만 죽었다고 하면 그냥 미운 감정이 사라질것같아 용서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냥 더이상 미워하진 않을듯…
그 사람의 삶이 끝났다는 거잖아.. 당연히 다르지 뭔솔 너무 자기중심적 사고같은데...
암만생각해도 웃김 그럼 보이는 귀신은 살아있단말인가..!
자기 입장에서 생각해도... 미래의 가능성이라는 것만으로도 다르지
목소리가 점점 기억이 안나
내가 기억하는 그 사람이 내안에서 사라져
그게 죽음
대충 뭘 말하고 싶은지는 알겠음
어차피 영원히 못보는데 죽은 거랑 뭐가 다르냐 그걸 말하고싶은듯 근데 차이는 있지
저렇게 따지면 이산가족들은 어떻게 살라는겨.... 죽음이랑 못보는거랑은 아예 느끼는 감정자체가 다름ㅜ
그사람입장에선 다르겠지만 내입장에선 차이가없겟지
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내가 못보고 몰라도 그 사람은 잘 살고 있길 바랄 수 있잖아 실제로 잘 살 수도 있고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삶이 있는 거지.. 또 언젠간 만날 수 있겠지 하는 희망도 있는 건데 이게 죽음이랑 같은 선에 설 수가 있나..?! 심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사람 같아 5살 어린 아이 정도면 저렇게 생각하는 게 이해가 감
그럼 연예인 다 죽었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살아 있는 거라면
언젠가는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이 세상에 존재의 유무가 다르지.. 만나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
어디선가 잘 살고 있으리라는 희망이 존재를 구분하는 거라면 크리스천에게 죽음은 비기독교인과 다르게 느껴질까
가능성의문제임. 미래는 모르는 것이므로.
엇... 단순히 사람이 아니라 그 인물의 과거모습이라면 이해가 확 된다. 예를들어 내가 너무 좋아했던 모습이 특정 시점을 기준으로 확 변해버려서 더 이상 찾을수없고, 앞으로도 그 모습을 볼 수 없을 확률이 99% 이상이라면... 그건 어쩌면 죽은거나 다름없을지도 모르지...
”존재“라는게 직접 만날수있어야 가치가 있는것인가? 아닌데.... 존재 그 자체로 의미가 죽음과는 완전 다른것인데 왜 차이가 없지
22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데...
뭐지 양자역학이야? 관측하기 전엔 존재하지 않는 사람임???
물리적으로 만나지 못한다는 점만 동일하지 않을까. 산사람이라면 무엇이든 공유하고 있는것이 있지. 일절 소통이 없더라도, 존재 자체를 모를지라도 최소한 같은 하늘은 공유하잖아. 이 연장선으로 공동체 의식, 이타심 같은 것들이 발현 되는듯해. 반면 죽음은 정말 아무것도 공유할수가 없어. 함께 보낸 과거조차 나 혼자만의 회상일뿐. 현재형도 미래형도 없이 과거형만 있을 뿐이야.
의미론적 관점으론 비록 살아는 있지만 더이상 그 무엇조차 공유할 수 없을 것 같은 타인이 있을 때, 차라리 죽었다고 생각하는게 마음 편할수도 있을 것 같긴해. 이 경우는 그사람이 정말 미친듯이 밉거나, 아니면 미친듯이 그립거나 그렇겠지. 개인적으론 그래도 죽은 사람을 그리워 하는것 만큼의 먹먹함은 아니더라. 살아있어도 내 마음속에선 죽었거나, 죽었어도 내 마음속에선 살아있는 사람..정말 내 마음에 달린 것 같아. 간만에 여러 각도로 생각해보게 되네.
세상의 존재 유무. 내가알지 못해도살아있는것과 아예 사라진것 차이.
그 사람이 내게 어떤 존재냐에 따라서 느껴지는 감정자체가 다르겠지.
영원히 볼 수 없더라도 어떤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내게 안도를 주고 언젠가는 기적처럼 한번쯤 볼수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주기도 할테니까.
ㅋㅋ'나' 를 말하는건가
너무 자신 위주의 판단 기법
죽었다 라는 사실을 알면 되게 슬픔/
살았지만영원히못만나는 사람은 '알아서잘살겟지'하고 안슬픔
오 본문도 댓글도 다 흥미롭다...!
그 사람이 어딘가에서 행복도 느끼며 나랑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거라는것과.. 그 사람은 영원히 그때 그시간에 멈춰있다는게 너무너무 다르지
가능성의 차이임
내가 아무리 없는 사람이라 친대도 만의 만의 만약의 확률로 만날 수도 있는걸
만나지 않는 게 꼭 '못'의 아쉬움이 아닐 수 있으니 그냥 그럴 가능성이라고 하는 게 낫겠음
실제로 진짜 힘들었던 지도교수 졸업 후였는데도 떠올리면 지긋지긋할 정도로 끔찍하게 싫었는데 돌아가신 뒤로는 정말 나에게 무의 존재가 됐거든
만나지 않을 수 있는 것과 아예 못 만나는 건 다르다고 봄
영원히 못만나더라도 어딘가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괜찮은데, 죽었다는 건 진짜로 영원한 이별이라 너무 다름
세상 어딘가에 존재 한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음
후자는 영원한 작별
존재자체가 있음과없음의 차이는 다르니까 어딘가에서라도 잘살고있단생각만으로도 위로가되지
삶을 영위하는 동반자의 느낌인것같음
내가 볼 수 있느냐 없느냐와 그 사람이 자기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완전 차이가 있는데.. 저건 세상이 본인 중심인 관점인것 같음.
죽었다는건 그 사람은 시간이 멈췄잖아
영원히 못만난다고 해도 그사람은 흘러갈건데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경험해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관점차이 같음..
공감을 아무리 잘해주는 사람이라 해도 이게 어.. 다르더라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