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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성시대 잠만자고출근
‘자경아.’
‘예?’
‘요수의 목숨을 끊어놓지 않고 단지 봉인만 하는 연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퇴치사로서 첫 배움이었다.
요수는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봉인하는 것.
그 차이는 극명했다.
전자는 이 땅에서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고 후자는 이 땅에서 잠재우는 것이다.
‘요수를 죽인다면.’
‘예.’
‘신을 죽일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예?’
‘신과 요수는 본디 한 끗 차이니까.’
신은 하늘이 사람에게 선사한 보답.
요수는 하늘이 사람에게 내리는 재앙.
하늘은 그저 이 땅에 씨앗을 뿌려, 자라난 씨앗이 신이 될지 요수가 될지, 그것을 점치는 존재라 하였다.
‘신이 사라진 땅에는 더는 풀이 자라지 않고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된다 하였다.’
‘어렵습니다.’
‘언젠가는 이해하게 될 게다.’
첫째 절이 끝나가고 있었다.
나라의 동쪽, 들녘 색 꽃의 봉오리가 오므라진 들판.
이곳이 옛적 왕께서 장군에게 하사한 땅이며, 대개 수하라라고 부르지만 이곳의 정식 명칭은 삽곳이었다.
큰 강줄기를 끼고 있는 땅은 기름져, 소달구지 끄는 이는 하루 여섯 끼를 먹는다고 하였고, 아흐레 묵은 외지인이 포동포동한 돼지가 되어 떠났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그 지주의 덩치를 능히 짐작하고 남음이라.
웃전이랍시고 인사를 드려야 할 텐데.
소만한 등판에 살집은 삐져나온 채로, 좁은 교의에 끼어 앉아 나를 내려다볼 게 분명했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면 요수를 가루로 만들라는 것이 아니라, 동생의 병을 고쳐달라고 의뢰한 점이었다.
“문을 열어라!”
영화로운 황옥을 깎아 만든 문을 지나치자, 그 사치스러움이 혀를 내두르는 석영 색의 계단이 나왔다.
천 년 묵은 거목의 가지를 모아 만든 기둥 옆, 붉은 비단을 발끝으로 끌고 다니는 수십의 종이 지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뒤꼍으로 모시랍니다.”
살다 살다 저런 사내는 처음이었다.
범인과 구별되는 잿빛 눈동자에, 타락보다 깨끗한 피부를 한 사내가 수하라의 대지주라는 명성에 걸맞게 오뚝한 콧날을 지녔다니.
사내로 살았다.
하여 본디 내가 지닌 감정은 들어낸 지 오래인데.
웃을 때마다 휘어지는 눈매나 뽕나무의 열매처럼 붉은 입술은 고혹적이고, 어설프게 걸친 옷깃 사이로 다부진 어깨가 보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아니, 아니.”
내 어깨로 향긋한 봄바람이 훅 쏟아졌다.
그림자가 드리워지더니, 어깨에 얹어진 팔이 나를 제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대외적으로 나는 사내였다.
신장이 작은 나를 무시하는 이는 있었어도, 첫판부터 대뜸 안는 경우는 없었다.
“딱딱하게 굴 필요 없어.”
용모가 곱다 하여 심성까지 고운 것은 아닐 터.
들떠있던 마음이 폭삭 사그라들었다.
“동생의 안위가 걱정되어 사방 천지에서 사람을 모으신 것 아니십니까.”
늘 사내처럼 보이고자 했다.
하여 꾸며낸 목소리로 느릿느릿 말하는 게 습관이 들었다.
지주는 무시하는 듯했다가, 내 느린 말이 끝날 때 즈음이 되어서야 제 팔걸이가 된 나를 내려 보았다.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지주의 눈은 나에게 박혀있었다.
“어떤 요수입니까.”
“언제부터입니까.”
“무엇을.”
“그 흉터. 요수에게 당한 것 말입니다.”
이 고귀하고 아리따운 사내는 요수의 원한을 샀다.
그건 분명했다.
요수의 원한은 질기기 그지없었다.
표식의 의의는, 두고두고 갚는다는 뜻이었다.
원한은 대를 이어서 가기도 하며, 그 요수가 봉인당한 후에도 이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내 예상이 맞았는지.
싸늘하게 얼굴을 굳힌 지주가 나를 보며 비웃었다.
“누구인지 말하면.”
“너 따위가 무엇을 할 수 있는데.”
“나를 경멸했지 않아?”
“요수를 퇴치하라고 저를 불렀으니 맡은 바 소임을 다 하고, 정당한 값을 받고 떠날 것입니다.”
내 어머니 같은 이를 도우려고, 내 울분을 뿌리부터 솎아내기 위해서. 나는 퇴치사가 되었다.
고향에 아버지를 두고 온 독종이었다.
이쪽은 완벽한 의뢰인이었다.
값을 흥정하고 후려칠 만큼 가난하지 않았다.
지주는 차고 넘치는 쪽이었다.
이 자의 울분을 풀어주고, 응당한 값을 받아 갈 예정이었다.
상부상조.
나쁠 것 없었다.
“꺼내줄 수 있나.”
“예?”
“나를 꺼내줘.”
“이 나락 속에서.”
발밑이 가라앉는 듯했다.
나락.
그는 자신이 속한 곳을 나락이라고 하였다.
가슴이 한순간 허물어져, 지위나 신분을 막론하고 가여웠다.
“예.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송덕에서 가르침을 받은 자경이라고 합니다.”
“자경.”
그가 혀를 굴려 내 이름을 입에 담았다.
자경. 자경. 자경.
그는 세 번이나 내 이름을 혀 안에서 굴려댔다.
처음 이름을 받아먹은 사람처럼.
“삽곳 양 가의, 기석.”
양기석.
지주는 보답하듯 이름을 알려줬다.
그는 가만히 앉아 내 표정을 헤아렸다.
높으신 분의 이름자는 부를 수도 없고, 불러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능청스레 아부를 떨쏘냐.
그러면 그러시냐. 농을 칠 수도 없는 노릇.
기석이라는 이 사내가 따로 말을 하지 않았기에.
나와 그는 한참 서로를 마주 보았다.
의뢰인을 멀리해라.
스승의 당부가 매일 나를 꼬집었다.
하나 무뎌졌다.
여인도 사내도 아니었다.
신분도 지위도 없었다.
그의 어깨를 밀치며, 서로를 가르치며.
너무 가까운 것인가.
거리를 두어야 하나. 다짐하고 다그쳐도.
나는 지주가 ‘나와 놀자’하면 물렁물렁한 타래과 같았다.
지주와 강가에 나가 낚시 내기하는 날이었다.
미끼를 설렁설렁 흔들며 심란해하고 있을 무렵.
햇살 조각 나눠가진 수면이 일렁거렸다.
낚싯대를 끌어 올린 지주가 환히 웃었다.
두툼한 민물고기였다.
“내가 또 졌습니다.”
토라지고 시무룩한 게 아니었다.
그저 사실을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때 지주가 잡은 물고기를 들이밀었다.
“줄까.”
“제가 잡을 겁니다.”
그는 무표정이었다.
나는 갈증 났다.
목이 말랐다.
조용한 여름의 강가, 나는 피어오르는 이 감정이 거북했다.
나는 다른 사내보다 작고, 뼈대가 얇아도 의심받지 않았다.
내 꼴을 보면 알 수가 있다.
넉넉하고 칙칙한 윗도리에, 천으로 감싸 밋밋한 가슴에, 천둥벌거숭이처럼 짧고 덥수룩한 머리에, 수면에 비친 내 얼굴은 사내애였다.
비천한 여인도 행색은 갖춘다.
그걸 갖추지 않은 여인은 없었다.
그러므로 나의 감정은 등딱지 잃은 달팽이였다.
나아가기보다 죽어야 했다.
그에게 봉인된 요수만 잠재우면, 그가 일상을 되찾으면.
나는 고향으로 내려갈 사람이었다.
그의 요수와 순장해야 할 감정.
내 첫 열병은 그렇게 심드렁했다.
“자경아.”
“그리 부르지 말라 했을 텐데.”
“너 계집이지.”
“네가 나를 잡아먹는 그 순간. 네 배 속에서라도 봉인술을 외워 함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래?”
“왜, 기쁜 것이냐?”
“나락으로 같이 떨어져 준다는 이는 네가 처음이라.”
<책소개>
칠흑 같은 시대. 요수를 봉인하는 퇴치사가 되기 위해 사내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을 살려준다면 부와 명예를 안겨다 준다는 수하라의 지주를 만나고, 그에게서 강한 요수의 기운을 느낀다.
“저는 송덕에서 가르침을 받은 자경이라고 합니다.”
이 자는 과연 사람일까. 요수일까.
“나를 꺼내줘.”
“…….”
“이 나락 속에서.”
결국 요수이든 사람이든. 나는 그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
“나는 네 그 무모함이 좋아.”
“뭐?”
“네 요사스러운 기운도 좋고. 그 머리 아픈 노랫말도 좋아.”
요사스럽다니. 난생처음 들어 본 말에 어처구니가 없어 입술을 깨물었는데.
요수는 술이 넘실거리게 따른 잔을 내 앞으로 밀었다.
“자경아.”
“그리 부르지 말라 했을 텐데.”
“너 계집이지.”
요수는 천천히 흐느적거리는 뱀처럼 미끄러져 내 앞으로 다가와, 그 사특한 손을 내 턱에 가져다 댔다.
위험한 자였다. 한데 나는 왜…….
이 자를 거부할 수가 없는 것일까.
“나와 몸을 섞으면 섞을수록, 우리의 기운이 만나 나를 잠재울 수 있어.”
나락으로 끌어내릴 듯, 음험한 목소리가 귓가로 흘러들어왔다.
“다 잠재우면. 그때 나를 봉인해.”
여러 해를 사는 나무여 - 디키탈리스
🔞19금임, 전 플랫폼 구매가능
정식사이트에서 봅시다😎
#로맨스판타지 #동양풍로판 #남장여주 #성장여주 #집착남 #후회남 #퇴치사 #인외
(본문의 내용은 작품에서 발췌했습니다. 문제 시 알려주세요.)
전부터 꼭 한번 소개하고 싶었던 소설인데, 오랜만에 재탕하다가 벅차올라서 이제야 올리네 ㅠ
작가님이 글을 너무너무 잘쓰셔.. 스토리도 재밌고, 여주가 성장해 나가는 모습도 좋았어
절절한 로맨스, 독특한 세계관의 동양 판타지를 보고 싶은 여시들에게 추천할게^_^
근데 이거 웹툰화 예정이라는데 언제 나오려는지 모르겠네
희란국연가
요한은 티테를 사랑한다
잠자는 바다
페르세포네를 위하여
답장을 주세요, 왕자님
누가 도로시를 죽였을까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절벽에 뜨는 달
사마귀가 친구에게
폐하, 또 죽이진 말아주세요
악역의 엔딩은 죽음뿐
메리 사이코
30호
문제 시, 수정 또는 삭제
첫댓글 아 이거 존잼
오 제목이 익숙하다
아 이거 재미있어 필력도 좋아
구매완..감사함니다
여시 맛잘알이네. 디키탈리스님 글 중에 이거 젤 좋아해!! 5탕은 한듯. 하 또 읽으러가야겠다. 이전에 추천한것들도 내취향이랑 겹치는거 많던데 추천 많이 해줘!! 요즘 로테기왔거든ㅜㅜ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5.05.09 07:52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5.05.09 18:06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5.05.09 18:20
나 이거 읽었는데 ㅋㅋ첨 보는거 같네 다시 재탕 해야겠다 엄청 재밌게 봤는데
구매 완
오 재밌겠다 웹툰도 나오면 좋겠다 언제나오려나
벌써맛있는데
이거 진짜 최고지 이건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아 뭔가 머리속에 영상으로 하나하나 그려지고 배경음악도 있었으면 좋겠거든.. 아 근데 다른 추천 라인업도 쩐다!! 사야지
이거 완결 났어? 안났으면 시작하고싶지않아 ㅠㅠㅋㅋㅋㅋ
3권?인가 까지 있는 완결 웹소야!
이거 진짜 후루룩 잘 읽었어
헐 미쳤다 안그래도 이거 얼마전에 봐서 여운에 허덕이는중...
이거 보는 내내 마음이 을마나 아프던지..하아..맴찢ㅠ
나만그랬나봐ㅠ
추천도 고마워요 여시
ㄹㅈㄷ 존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