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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현실을 만들고 싶다]
모든 사람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현실을 잘 이해하여,
스스로의 현실이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지를 깨닫고,
그것을 잘 수정하고 조합하여 새롭게 만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현실이 찾아와, 나는 지금 그것을 체험하게 되었는가?
인간이 처음으로 이러한 부분에 의식을 향하는 것은
주로 자신에게 괴롭거나 불쾌한 현실이 찾아왔을 때이며,
그에 따라 해결해고 극복해야할 테마가 생겼을 때입니다.
그러한 현실이 찾아오는 것은
각자의 마음이나 영혼안에 본래 배움의 테마가 간직되어 있었고
그것이 어느 적절한 시점에 스스로를 일깨울 수 있도록 현실화되도록 짜여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실은 혼의 레벨에서 배움을 위해, 혹은 자신이 만들어낸 부정적 에너지를 해소하고 승화시키고자 만들어지며
때문에 인생에서는 장애물이나 난관으로 느껴집니다. (오라소마 관점으로는 두번째 바틀(도전과선물)과 연결됩니다)
그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하고 실현시켜가는] 현실이라기 보다는,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을 행해가는], [괴롭다고 생각되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극복해가는]
현실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을 충분히 공부하고 통과해온 사람에게는
점차 현실의 구조가 바뀌고, 이제 다른 현실이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극복해야할 과제나 하지 않으면 안되는 에너지는 많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차라리 얼만큼 자신의 기쁨이나 창조를 위해서 현실을 사용할 것인가],
[자신의 영혼이 가질 가능성을 얼만큼 펼쳐갈 것인가, 본래의 영혼의 에너지를 얼만큼 잘 다루어 갈 것인가],
이와 같은 것을 위해 현실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오라소마 관점으로는 첫번째 바틀(사명과 목적)과 연결됩니다.)
이 단계에 접어들면
현실을 통해 자신이 배우는 것은, 단지 부정적 에너지를 해소하거나 승화시키는 작업만이 아니라
본래의 영혼의 가능성과 목적을 행해 가는 작업
더 나아가 신이나 우주의 의지가 자신에게 부여한 사명을 실현하는 작업
이러한 것들을 자신의 현실을 통해 이해해 가게 됩니다.
첫번째 단계에서 현실을 통한 배움의 방식은
무엇인가 불쾌하거나 괴로운 것이 일어났을 때,
[왜 이러한 현실이 나에게 일어나는 것인가, 왜 나는 이런 현실을 체험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나의 마음의 어떤 부분이 이러한 현실을 끌어왔는가]
라는 관점으로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바라보고,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거나 수정하거나 의식을 바꿈에 따라 현실을 즐겁게 만들어가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마음을 수정하고 빛(괴로움에 대한 이해)으로 채워가면서, 두번째 단계에 접어들게 되면
점점 그러한 배움의 에너지는 자신의 마음 속에는 영향을 주지 않게 됩니다.
즉 이때에는 괴로움을 해결해 나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영혼이 창조하고 싶은 것,
자신의 가능성을 좀더 크게 꽃피어나가고 싶은 것,
그러한 에너지가 마음에 흐르게 됩니다.
이 경우 자신의 현실을 바라볼 때,
현실에서 부정적인 측면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항상 긍정적인 측면, 자신의 가능성을 넓히고 높여가는 관점에서 현실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 현실이 자신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
[그렇다면 나의 마음 안에 아직도 낡고 부정적인 에너지가 남아 있는 것이구나. 그것을 찾아내자]
라 생각하는 것은 이 단계에서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발상이 아니라
[나 자신의 잠재능력을 활성화시킴에 따라, 이런 상황을 반드시 개선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그것이 아직 잠자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꼭 활성화 시켜 나가겠다.]
이러한 의식이 두번째 단계에서 적절한 방식이며,
이러한 방식으로 항상 자신을 긍정적으로 파악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을 모두 긍정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쉽게 잘 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원래 많은 사람들에게 현실이란 자신의 주관적으로 파악되고,
주관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을 현실이라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이상,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현실이 좋다, 나쁘다, 재미있다, 재미없다… ]와 같은 여러 판단이 그 안에 들어갑니다.
그렇지만 새로운 시대를 영위해 나가기 위해서는 그러한 가치관을 상당히 수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실은 반드시 불쾌한 것이나 싫은 것, 또는 인간을 괴롭히기 위해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인간의 가능성을 높이고, 인간에게 다양한 체험을 가져와 인간의 마음을 크게 하고,
또 인간의 사랑을 크게 하여 그것을 많은 생명에게 흘려가기 위해,
현실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제 인간은 현실을 그러한 방식으로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파악해,
자기 자신을 성장시키는 흐름에 접어들어 있습니다.
현실을 이러한 관점으로부터 보았을 때,
자신과 현실과의 연결은 지금까지와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우선 현실은 자신의 생각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생각이 출발점이 됩니다.
대우주의 법칙에 따라 올바른 생각(正思)과 염원(正念)을 내고 있으면, 우주의 흐름에 따른 현실이 찾아 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만 맞추어, 자신만(에고)의 이익이 되는 생각과 바램을 내고 있을 때에는,
그것이 우주의 법칙에 맞지 않을 경우 그러한 현실은 잘 나타나지 않게 되며
차라리 자신이 우주의 방향성과 조화롭지 않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해주는 상황이 현실로서 찾아옵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자신에게 나쁜 상황, 안좋은 상황, 잘 안풀린 상황이란,
그러한 현실을 통해 자신이 과거에 우주의 방향성과 맞지 않은 어떠한 생각을 냈는지,
어떤 조화롭지 못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것을 깨닫게 하고자 나타나는 현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위 바람직하지 않은 현실을 단순하게 부정하거나 무시하고 있어도 현실이 좋아질리 없습니다.
차라리 그러한 현실을 적극적으로 응시하고, 자신이 과거에 어떤 에너지를 내었는지, 자신의 어떤 생각이 그러한 현실로서 나타나 왔는지, 그곳을 꼭 조명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자신의 마음의 경향, 생각의 경향을 이해해,
항상 긍정적으로 상대와 모두가 즐겁게되는, 상대와 모두가 기쁘게 되는 파동을 항상 발해 감에 따라 자기 자신의 현실도 순조롭게 전개됩니다.
대우주는 이러한 마음의 반성과 수정을 통해 인간이 즐거운 현실을 만들어가는 것을 오래전부터 가르쳐 왔습니다.
본래의 붓다의 팔정도 또한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한편 현실은 이전의 자신의 생각의 결과물임과 동시에
지금의 자신의 순간순간의 창조력이나 건설적인 생각에 의해 앞으로의 현실이 만들어지는 원인점입니다.
사랑과 빛으로 가득찬 생각,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가져오는 생각을 항상 내고 있으면
현실은 점점 그에 따라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도 즐겁게 되고, 행복감을 느껴 기쁨으로 가득찬 현실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빛과 사랑으로 성장한 인간이라도 그런 즐거운 현실을 체험하고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사람도 있겠지요.
즐겁다는 것도 실은 주관적인 판단이고, 언뜻 보기에 괴로운 체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되도, 본인이 정말로 괴로움을 느끼고 있을지는 알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괴로와하는 일을 그 사람은 즐겁게 받아들여 행하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른 누구도 맡으려고 하지 않는 역할을 그 사람은 솔선수범해 기쁨으로 받아들여 체험하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간이 빛으로 성장하여 항상 기쁨의 파동을 내고 있다면, 실제 그러한 경우가 많아집니다.
주변 사람이 보았을 때 [참 대단하다], [참 힘들겠다]고 말해도,
본인 자신은 실제로는 그러한 감각은 없고,
차라리 기쁨으로 가득 차, 충실감을 가지고 행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즉 주변에서 보는 가치관과 그 사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항상 많은 사람에게 기쁨이나 행복을 가져오려는 사람은, 그러한 기쁨으로 가득 찬 현실을 많이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괴롭다, 재미없다, 이런 생각을 계속 내고 있는 사람은
실제로는 어떠한 현실이 찾아와도 그러한 에너지만을 체험해 갑니다.
다른 누구라도 [참 즐겁다, 참 재미있다] 라 생각한 현실이 그에게 찾아오더라도,
그 사람은 [참 시시하다, 재미없다] 는 파동을 내게 됩니다.
그러므로 현실 그것이 [재미있다, 싫다]와 같이 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것을 체험하고 있는 사람의 가치관이고,
현실 그것이 좋은 현실, 나쁜 현실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지금부터 현실을 컨트롤해, 자신의 의지로 현실을 만들어가게 되면,
점점 이러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게 되어,
자신과 현실을 조금씩 분리하여 볼 수 있게 되고, 그에 따라 자신이 현실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현실 그것에 좋고 나쁨의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며,
또 즐겁다든가 재미없다의 감정이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그것을 체험하는 사람의 마음이 전부라는 것을 점점 깨달아가게 됩니다.
지금까지 [현실 안에 자신이 속해 있다], [현실은 피할 수가 없다],
[현실은 항상 나와 하나가 되어 있다]고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자신과 현실과의 간격이 조금씩 넣어지고,
그 사이에 들어 있는 것이 바로 자신의 마음, 생각, 의지임을 점점 알아 갑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현실을 잘 다루고 조종해 가는 법을 터득하게 되겠지요.
하지만 인간이 현실을 완전하게 자신의 것으로 컨트롤 하기에는 아직도 시간이 걸립니다.
즉 곧바로 모든 것이 자신의 생각대로 되어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을 컨트롤 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실제로는 얼마든지 컨트롤할 수 있으나, 아직은 자신의 마음의 흐름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지 않았을 뿐입니다.
일례로 인간이 자신의 의식 안에 조금이라도
[나의 현실은 컨트롤할 수 없다],[나의 현실은 잘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있으면 그것은 현실화 됩니다.
즉 현실을 컨트롤할 수 없다는 상황을 만들어 내 버립니다.
따라서 우선 현실은 꼭 자신의 수중에 있어,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으로 움직여 간다는 인식을 꼭 가질 필요가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가슴에 와닿는 글 잘 읽었습니다. -()-
이 글이야 말로 인간의 삶에 있어
접할 수 있는 가장 진실한 진리임을
내면의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공명하겠금
빛의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글이군요.
정말이지 너무나도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제게 깊은 울림의 확신을 준.. 글을 작성해
올려주신 목소리님께 가슴 깊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