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최대 현안인 조선업과 해운업 구조조정에서 산업은행이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주 채권은행으로 채권단을 이끌고 있다. 산은은 이미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이고, 조만간 출자 전환을 통해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이라는 두 해운사의 대주주도 될 예정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산은을 전면에 내세운 구조조정이 과연 성공적일 것인가에 대해 회의론이 제기된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산은이 번번이 부실기업 정리의 전면에 섰지만, 그동안 부실기업에 산소호흡기를 씌워 연명시키는 역할만 했을 뿐 제대로 된 구조조정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산은부터 구조조정 대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산은은 그동안 은행으로서의 경제 논리보다는 정치 논리에 끌려다닌 무기력한 국책은행이었다. 실업과 경기 침체를 우려하는 정부와 정치권의 요구대로 부실기업을 떠안다 보니 어느새 17개 기업, 매출액 기준 48조원대의 거대한 '국책 재벌'이 됐다. 공기업과 금융사를 제외하면 재계 순위 9위의 재벌 그룹과 규모가 맞먹는다.
하지만 산은 관리하에서 3년간 4조5000억원을 쏟아붓고도 결국 법정관리로 가게 된 STX조선해양, 그리고 수조원이 투입됐어도 부채비율이 4000%를 웃도는 대우조선해양이 산은의 부실한 구조조정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대우조선해양은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지난 2000년 산업은행 자회사가 됐다. 산은은 그러나 지난 16년간 대주주로도, 주 채권은행으로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경영진 결정, 대출 규모 등은 모두 정부가 정하다시피 했다. 오정근 건국대 교수는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을 갖는 것이 중요하듯이 구조조정 문제에서는 국책은행인 산은이 정부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산은만의 문제를 넘어 현재 진행 중인 기업 구조조정은 총체적인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구조조정의 걸림돌이 돼 버린
산은과 함께 속기록조차 남기지 않는 서별관회의(비공개 거시경제정책협의회)의 불투명한 의사 결정, 부실이 터지기 직전까지는 정상 기업이라고 평가하는 믿을 수 없는 신용평가사와 회계법인 등도 모두 구조조정의 적(敵)들이다. 이처럼 구조조정의 부실한 인프라들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조선업과 해운업 구조조정은 또 하나의 실패로 기록될 공산이 크다.
첫댓글 해당 업종을 운영해 보지 않아 경험이 전혀 없는 국책은행이 구조조정을 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 보여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