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책방지기로 삶의 자리를 옮기고 나서 그 미열은 점점 달아오른 듯하다. 읽기와 쓰기는 동전 앞뒷면처럼 다른 그림이지만 혼자서는 독립할 수 없는 필요충분조건이다.
결은 다르지만 좋은 질문과 자기만의 서사로 쓰여 진 책들을 읽을 때면 이 글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읽는 시간만큼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의 크기도 비례해진다.
욕망은 불쑥불쑥 올라오지만, 내가 뭘 쓸 수 있을까? 내 이야기가 글이 될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은 사유하는 물음이 아니라 용기 없는 변명으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맴돌곤 한다.
"외면하지 않고 직시할 용기, 말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서 좀 더 솔직해지려는 노력, 머리에서 머물던 이야기를 손으로 옮겨 적어 보는 실천. 이 세 가지는 꾸준한 글쓰기를 통해서 단련 수 있다."(p121)
솔직하게 나만의 이야기를 쓰면 글이 될까?
누구에게나 웅크린 말들과 차마 말하지 못하는 사연들을 가지고 살아간다. 특히 여성의 삶은 몸으로 견뎌낸 서사(敍事)와 수치와 상처로 얼룩진 마음들이 복잡하게 엉켜있다.
글쓰기가 아픈 나를 치유하고 어딘가로 데려다 줄 것 같은 마음에 뱉어내듯 써 본 적이 있다. 정제되지 않은 단어와 나 보다는 상대를 적으로 만드는 이야기 구조와 민낯으로 떠다니는 감정들이 끓고 있을 뿐이었다.
"글쓰기는 단지 지난 시간을 기록하는 활동이 아니라 경험을 기반으로 끈질긴 사유와 해석을 이어가는 과정이다. 기존의 관념을 비틀어 존재를 자유하는 언어를 구사하고, 경험을 다각도로 해석할 때, 내가 쓴 글은 단지 개인적인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p 61)
서 : 혼자서는 글쓰기가 힘들어요. 모임에라도 가면 강제 될 것 같아서...
정 : 나이가 들어가니 모든 게 담담하고, 불행한 건 아닌데 삶에 생기도 없고, 예전에는 글을 썼 지만 끄집어낼 만한 이야기도 없는 것 같고... 그래도 함께하면 힘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
진 : 읽고 쓰기에 관심이 많아서 글쓰기 책도 여러 권 읽어보고, 글쓰기 수업에도 참여해보고. 글쓰기 언저리에서 서성거렸는데, 늘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아서.
은 : 껍데기를 벗는 것처럼 여성으로 살아온 삶이 다르게 다가오고, 참고 순종하면서 응어리진 마 음을 풀어내고 싶어서.
<아무튼 글쓰기 모임> 첫 시간, 참여하게 된 동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놓았다. 질문은 하나였다. 나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사소하고, 사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가 글이 될 수 있을까. 가치 있는 글이 될 수 있을까.
깊은 우물을 들여다보듯 좀 더 내면으로 내려가서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침묵해야 할 이야기는 없다"
안전한 글쓰기 공동체를 지향하며 나의 솔직함이 너의 솔직함을 불러오고, 서로의 글과 삶을 돌보는 시간이 될 거라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빈 종이 앞에서 망설이는 당신에게 나는 선물하고 싶다. '대책 없음'의 대가 가피의 에너지와 오늘도 글 쓰는 사람인 현서의 에너지를. 예술 소비자에 익숙해진 우리가 예술 생산자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냥 하는 길' 밖에 없으니까." (p 285)
나는 잘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 살기 위해서 오늘도 글을 쓴다.
※ 책소개 : 강영선
제주시 아라동에서 책점방 [아무튼, 책방]을 운영하고 있음
독립출판물+블라인드북+헌책+인문학
아무튼 책을 읽고, 팔고, 글을 쓰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