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벗어났을 때 다시 길은 이어진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고 했던가.
4월 끝에서 중단된 책 소개가 두 달을 훌쩍 건너뛰었다. 봄 같지 않은 봄이었다고, 코로나 사피엔스로 살았다고, 하루하루는 성실히 살았는데 빗겨갔다고..... 역시 핑계거리임을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기에 이 자리를 빌려 무언(無言)의 책임을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소설은 무엇보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다”라는 책 띠지 내용이 독자를 솔깃하게 하기도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으며 참~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을 했다.
한국전쟁의 비극과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시대를 관통하며 살았던 미술가이자 작가였던 심시선, 시선으로부터 뻗어 나온 20세기 막바지를 살았던 2세대 명혜, 명준, 경아와 21세기를 살고 있는 3세대 화수와 지수, 우윤, 규림과 해림.
각자의 방식으로 시선과의 추억을 꺼내며 가부장제에 포섭되지 않은 여성이 가장이 될 때, 가족들이 어떤 결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지를 넌지시 나에게 길을 보여 주었다.
“말하는 여자는 미움 받으니까, 뭐 기왕 미움 받고 있는 내가 해버리자. 그런 마음도 있었습니다. 스스로를 아낄 줄 하는 사람들은 노출되는 자리를 신중히 삼갈 줄 아니 누군가는 내 또래 여자들의 이야기를 해야 했지요. 남들이 걷는 길에서 벗어난 내가 자격이 있나 싶으면서도 길에서 벗어나야 길이 보일 때가 있으니 계속 했어요.” (p 325)
딸로,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살아가면서 나는 자꾸 질문을 받는다. 내 취향과 욕망을 쫓아가려는 마음과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죄책감 사이에서 벌어지는 팽팽한 줄다리기는 늘 출구 없는 문 앞에 서 있는 기분이다.
괜찮은 엄마, 괜찮은 아내, 괜찮은 며느리가 아니라 괜찮은 나를 위해 살아가기 위한 길은 시선의 말처럼 그 길에서 벗어났을 때 제대로 나에게 길을 알려줄지도 모른다.
부딪히지 않고서는 틈을 낼 수 없고 그 틈을 새로운 언어로, 새로운 상상으로 균열을 낼 수 있을 때 그 길은 다시 이어질 것이다.
“먼저 죽은 사람들 때문이었다. 애도에서 다음 애도의 웅덩이로 텀벙텀벙 걸으면서도 다 놓아버리지 않은 것은, 내가 먼저 죽은 사람들의 기록관이어서였다. 남은 사람이 기록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도 없을 테니까. 어떤 의미로는 친구들에게 져 술래가 된 것이다. 편을 먹고 내게 미룬 채 먼저들 가버렸다.” (p 239)
21세기를 살아가는 50대 여성인 나는 어디쯤에서 서성거리고 있을까?
젊지도 늙지도 않은 나이란 게, 좋은 게 좋은 거라며 관성에 맞춰 살아도 이상하지 않고, 살아보니 누구도 책임져 주지 않는 노후를 위해 건강과 돈을 쫓아 살아도 누가 뭐라 하지 않고, 뭔가를 시작하기도 끝내지도 못하는 그런 나이.
책방지기로 여유롭게 놀이터 삼아 50대를 그럭저럭 보내려던 내 뒤통수를 20세기를 살았던 시선으로부터, 세게 얻어맞았다.
20세기와 21세기를 걸쳐 살아가는 내 몸이 기억하는 서사(敍事)와 좀처럼 누그러들지 않는 가부장제 벽 앞에서 고군분투하는 지금의 다짐과 나와 딸이 함께 걸어 갈 아직 오지 않은 시간들의 기록관이란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기록은 뒤에 오는 사람들을 위한 발자국이다. 한 점을 찍는 이 글이 허투루 살지 않으려는 2020년 나의 다짐이고, 어느 날 21세기 언저리를 살았던 <영선으로부터,> 기록을 남기고 싶은 욕심이어도 괜찮지 않을까?
※ 책소개 : 강영선
제주시 아라동에서 책점방 [아무튼, 책방]을 운영하고 있음
독립출판물+블라인드북+헌책+인문학
아무튼 책을 읽고, 팔고, 글을 쓰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