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최전선」(은유)
2020년 7월은 만만치 않은 시간들이었다. 유난히 긴 장마는 하루 종일 제습기를 틀어놔도 눅눅한 기운이 집안을 잠식하고, 일상이 되어버린 코로나시대는 빈약한 터전에 비비고 사는 우리네 삶을 서서히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몸과 마음이 서서히 지쳐가던 7월 그날, 한 사람의 죽음은 책임과 무책임, 애도와 가해, 상실과 분노의 경계를 넘나들며 각자가 선 풍경이 어디쯤인가를 여실히 보여주기도 했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시대 흐름에 한 발 걸쳤던, 몸이 기억하는 여성의 삶을 사유(思惟)하는 한 여성으로서 나는 그 죽음을 어느 풍경에서 바라보고 있는지 계속 질문을 던진 시간이었다.
“약자는 달리 약자가 아니다. 자기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갖지 못할 때 누구나 약자다. ....여성의 고통, 성폭력 피해의 고통을 남성의 언어로 설명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피해자의 언어가 필요하다. 자기 언어가 없으면 삶의 지분도 줄어든다.” (p 68)
피해자를 향한 공격을 고인에 대한 애도로 포장되는 남성의 언어들, 짐짓 지나온 업적과 그의 그늘에서 미래를 꿈꾸던 권력의 언어들이 넘쳐나서 나의 질문이 길을 잃기도 했다. 한 사람을 기억하고 애도한다는 것은 영웅 신화 이야기로 전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편에 서서 피해자의 언어로 죽음을 다시 읽을 때 애도는 다시 시작될 것이다.
휘청거리던 7월을 보내는 지금 그래도,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는 헛헛한 마음은 그렇게 한 시대가 저물고 나 역시 그 시대 유물로 사라지리라는 두려움이 있음을 또한 본다.
오늘 책 리뷰는 아무튼 책방에서 진행하고 있는 글쓰기 모임 전반전을 마무리하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읽었던 <글쓰기 최전선> 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려고 했다. 곱씹으며 읽던 중 앞의 문장을 만나면서 잠시 멈췄고 글은 그렇게 시작됐다.
지난 4월 아직은 낯선 사람들과 글쓰기 모임을 시작하면서 이 지면에 이렇게 썼었다. ‘안전한 글쓰기 공동체를 지향하며 나의 솔직함이 너의 솔직함을 불러오고, 서로의 글과 삶을 돌보는 시간이 될 거라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라고. 각자 다섯 편의 글을 쓰고 나눔의 시간을 보낸 지금, 그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고 책방지기는 자평을 해본다.
“글을 쓴다고 문제가 해결되거나 불행한 상황이 뚝딱 바뀌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 줄 한 줄 풀어내면서 내 생각의 꼬이는 부분이 어디인지, 불행하다면 왜 불행한지, 적어도 그 이유는 파악할 수 있었다.”(P 9)
처음엔 쑥스러워서 내밀지 못하고, 이것도 글이 될까하며 꺼내지도 못했던 글들을 다시 읽었다. 어색한 봄에 시작해서 한 여름으로 진입하는 사이, 글들은 자기 색깔을 칠하며 삶을 닮아가고 있었다.
꾹꾹 눌러쓴 문장들 사이로 고통이 견딜 만한 고통이 될 때까지 붙들고 있던 시간과 타인의 시선으로 해석된 고통에서 한 걸음 물러서려는 안간힘이 오롯이 느껴지기도 했다.
무르익는다는 게 이런 것일까?
내 안에만 머물던 것들이 밖으로 나가서 관계와 감응으로 돌아오고, 그 힘을 지렛대 삼아 나를 둘러싼 세상으로 성큼성큼 걸어갈 수 있게 해주는 삶의 방편이 글쓰기임을 조금은 알 듯하다.
우리는 글쓰기 후반전을 준비하며 자기 삶을 자기 시대 안에서 읽어내고 사유하는 길로 걸어가 보기로 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에 대한 질문, 늙어감에 대한 철학, 여성의 언어로 삶을 재해석하는 연습, 사람을 이해하는 인터뷰 등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주제들 앞에서 우리는 ‘함께 - 있음’과 ‘나눔 - 변용’의 후반전에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는 듯하다.
“글 쓰는 일이 작가나 전문가에게 주어지는 소수의 권력이 아니라 자기 삶을 돌아보고 사람답게 살려는 사람이 선택하는 최소한의 권리이길 바란다.” (p 44)
※ 책소개 : 강영선
제주시 아라동에서 책점방 [아무튼, 책방]을 운영하고 있음
독립출판물+블라인드북+헌책+인문학
아무튼 책을 읽고, 팔고, 글을 쓰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