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의 [피프티 피플]
모두 안녕하지요?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2021년 어떤 시간이 나를 기다리는지도 모른 채 얽히고설킨 무모함으로 시작된 나른한 봄날, 딱 이맘쯤이었다.
그 해 책방 앞 벚꽃이 피고 지기는 했을까? 벗들과 산과 들로 쏘다니며 고사리를 꺾기는 했나?
다이어리에 빼꼭히 적혀있던 누군가의 생일, 약속, 책방 일정이 백지로 비어가는 만큼 나는 아팠고, 긴 터널에 갇혀 있었다.
무엇이 나를 그 어둠에서 걸어 나오게 했는지 잘라서 말할 수는 없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서 곁을 지켜주었던 사람들의 발걸음이었다고 2022년 나는 이야기한다.
“조각 수가 많은 퍼즐을 쏟아두고 오래오래 맞추고 싶습니다. 물체의 명확한 윤곽선이 보이거나, 강렬한 색이 있는 조각은 제자리를 찾기 쉬운데 희미한 하늘색 조각들은 어렵습니다. 그런 조각들을 쥐었을 때 문득 주인공이 없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P486, 작가의 말 중)
처음에는 퍼즐 한 조각을 잃어버렸다고만 생각했다. 그것을 찾기만 한다면 일그러진 일상이 다시 제자리를 찾고 나에게 익숙한 그림을 빈틈없이 그려낼 수 있다는 착각에 매달렸다.
시간이 흘러 내가 어설프게 맞춘 퍼즐 조각은 명확하고, 강렬하고,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삶을 이어오게 했던 심심한 일상들, 꺾였을 때 함께 주저앉아주었던 사람들, 아무리 작은 조각이어도 자신의 위치 안에서만은 완전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호감. 가벼운 호감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일들이 시작되는지. 좋아해서 지키고 싶었던 거리감을 한꺼번에 무너뜨리고 나서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겼는데, 어쩌면 더 좋은 기회가 온 것인지도 몰랐다.” (P 308, 양혜련)
책방지기가 책을 읽지 못하는 시간들로 비어갈 때, 송수정, 이기윤, 권혜정, 조양선, 김성진, 최애선....그리고 사람들로 이어지는 50명 주인공들을 하루하루 만났다.
서로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했던 사람들이 최소한의 선의와 호감과 느슨하지만 서로의 삶을 지탱해주는 ‘연대’의 끈에 이끌려 나도 고유한 이름들을 불러본다.
홍영희, 이수란, 문경순, 김경미, 유현미, 강미선, 최진옥, 강미영......그리고 사람들.
나에게 이름과 삶, 일과 생활의 조각들을 내어준 수많은 주인공들이 있어서 2022년 나는 한 걸음 또 한 걸음 걸어가고 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돌을 멀리 던지는 거라고 생각합시다. 어떻게든 한껏 멀리. 개개인은 착각을 하지요.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사람의 능력이란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돌이 멀리 나가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사실은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시대란 게, 세대란 게 있기 때문입니다.” (P 469)
살다보면 지나온 시간들이 헛헛하고 쳇바퀴 같은 일상이 무색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나이만큼 비례해지는 욕망의 크기가 부끄럽고, 누가 떠밀지 않았지만 스스로 짊어진 짐에 무릎이 꺾이기도 하고, 거대한 세상의 흐름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너무 작아보여서 힘이 들 때가 있다.
그래도 50명 주인공 이야기를 통해 작가가 내밀어 준 응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나는 다시 삶이란 과제 앞에 서성거린다.
“어디에 계시거나 마땅히 누려야 할 안전 속에 계시길 바랍니다. 단단한 곳에 함께 서서야 그다음이 있다는 걸 이 이야기를 처음 썼을 때처럼 믿고 있습니다.”(작가의 말)
※ 책소개 : 강영선
제주시 아라동에서 책점방 [아무튼, 책방]을 운영하고 있음
독립출판물+블라인드북+헌책+인문학
아무튼 책을 읽고, 팔고, 글을 쓰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