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를 쓴 사람은 예수님의 친동생이요, 유대인들로 부터 <의인 야고보>로 불리웠고, 사도들로 부터도 신임을 받아 예루살렘 초대 지도자(감독)로 있었으며, 바울로부터도 <기둥과 같은 야고보>로 불리울 만큼(갈2:9) 당시에 매우 신뢰를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사도들의 모임에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받은 자이기도 하였습니다.(갈2:9)
그러한 야고보가 "흩어진 열두지파"(약1;1)에게 쓴 서신이 바로 야고보서입니다.
그는 야고보서를 쓰면서 자신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약1:1)이라고 불렀습니다. 얼마든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아우 또는 형제라고 불러도 될만한 위치에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그 만큼 도드라지기를 싫어하는 사람, 즉 겸손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행위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마르틴 루터 조차도 한 때는 이 서신을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것을 후회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야고보서를 이해할 수 있게 되기 까지는 얼마큼의 신앙의 성숙이 있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야고보는 다음과 같이 <행위>의 소중함을 역설했습니다.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아브라함)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약2:22)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약2:24)
"영혼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26)
야고보가 행함을 강조하게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야고보는 회당에서 부자는 우대를 받고, 가난한 자는 박대받는 모습을 예로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면, 너희 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약2:2-4)
부자와 가난한 자를 구별하여 부자는 존귀하게, 가난한 자는 비천하게 여기는 자체가 <악한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것이 악한 생각인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것은 율법을 범하는 것인데, 그것도 가장 큰 율법을 범한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 하는 것이거니와..."(약2:8)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법을 <최고의 법>이라고 했는데, 원어로는 <바실리코스 노모스> 즉, "왕같은 법"이란 뜻입니다.
영어 성경에는 <royal law>로 되어 있습니다.
운동 경기장에 수많은 관중석들이 있지만 가장 권위있는 자리는 <로얄박스>라고 합니다. 왕이나 대통령 같은 최고의 지위에 있는 분들이 그 자리에 앉습니다. 꿀 중에서도 <로얄 꿀>이 있습니다. 이것은 여왕벌이 먹는 꿀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율법(계명)중에서도 가장 탁월한 법이 있는데, 바로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형제를 차별함으로서 이 법을 위반했으니 얼마나 무서운 죄를 지은 것이겠습니까?
율법의 속성은 진주 목걸이와 같습니다. 어느 한 군데만 끊어져도 모두 쏟아지고 맙니다. 쓸모가 없어진다는말입니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였을지라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되느니라."(2:9-11)
이러므로 사람을 차별했다는 것은 사랑의 계명을 범했으니 온 율법을 범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약2:9)
왜 그렇습니까? 사람을 외모로 차별했으니 <royal law>, 즉 왕같은 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판단하고 차별하는 죄는 이렇게 무섭습니다.
야고보는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죄인지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약4:11-12)
야고보가 이 말씀을 하는 것은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하고, 차별하는 것은 입법자이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이며, 재판장이신 하나님의 자리에 앉는 행위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법을 지키는 자일 뿐이지 형제를 판단하고, 재판하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비록 진리를 떠난 자 조차도 판단하고 비방하려고 하지말고, 그를 구원하기 위해 힘써야 할 것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약5: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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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가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된 것을 알고 있었을까요?
그렇다면 님의 말이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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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어볼걸 물어 봐야지요.....
저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싫어해요
십일조 잘 못내니까.....
돈좀있는 교인들을 우대하고 집사 장로
자리 내주고 그러잔아요....
삯군들 하루이틀 겪어봅니까?
십계명 할례 십일조 지키는
자칭유대인들은 차별해도 됩니다
이사람들은 형제가 아님니다
사도바울도 이러한 자들을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갈렙님 음녀의 기준이 뭔지 아시죠?
신약시대에 구약율법을 탄 혼합한 술을
자기도 마시고 또 교인들에게 마시라고
주는 자를 음녀라고 합니다
일명 "팔마코스"라고 하고 "술객"이라고도
합니다
유황불못에서도 가장뜨거운 상석을
차지하는 자들이죠
군림하는 맛으로 사는 자들이라고
보면됩니다
아무말잔치 는 그만
음녀란
음녀는 계17장에서 "네가 본 그 여인은 이 세상 왕들을 다스리는 큰 도시를 뜻한다.”
계18장에서
그녀가 당하는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끔찍하다! 끔찍하다! 강한 바빌론 성이 이렇게 되다니! 순식간에 멸망이 찾아 왔구나.”
@조영노
조앵무세님?
로마서 7장 1절부터 읽어보쇼....
음녀가 뭔지 알고나서 댓글을 해야지...
요한일서만 읽지말고 성경을 두루두루
읽으셔 ~~
@베냐민 정신 나갔나
계시록이 요한일서가 이니올시다
그리고 음녀는 짐승을 타고 있는 큰 도시를 말하는 것이지
음녀가 율법을 무시하고 유일신 신봉자들을 죽여서 피를 마시는 존재올시다
개뿔 아는 것이 그렇게 없으면 누구에게도 댓글 달지 마시라
보는 내 얼굴이 확근거린다
계는 성경 요한계시록 의 약자여 요한일서가아니구
계시록17-18장 읽어봐
음녀가 뭔지 나왔으니
에구 한심하긴
한 번이나 읽어봤을까?
신사참배 교인들은 절대 요한계시록 안 보지
그곳에 우상숭배는 천국에 못들어 간다고 했거든
행함은 믿음의 증거이고,
믿음은 행함의 원동력이고.....
이 둘을 분리하는 것은 믿음도 모르고 행함도 모른다는 증거겠지요! ㅎㅎ
개독 먹사는 영이 아닌 진리가 아닌 육신을 미혹하는 마귀 종이지요
믿음 자체가 완전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미혹을 전하는 개먹사이지요
왜 미혹하는 마귀 믿음인지 하나씩 증명해 볼까요
개독처럼 자기들 믿음과 다르면 증거도 영지주의 이단이라 뒤집어 씌우고
국힘당과 반대면 증거없이 빨갱이라 뒤집어 씌우는 악마 중에 악마이지요
나 역시 증거없이 개먹사를 미혹하는 마귀의 종이라 하며 나 역시 악마이지만
저는 성경으로 하나씩 미혹하는 마귀의 종이라 증거를 학실하게 댈 수 있지요
미혹하는 개독교 믿음을 분별하여 예수께 인도하려고
수 없이 글을 올려지만
최고의 법 사랑이 바로 미혹하는 빗나간 믿음에서 깨닫게 분별하게 하여 회개케 하려고 했지만
다 귀를 막고 듣지 않고 오히려 반박하며 공격하지요
스데반을 돌을 더진듯 아사야를 톱으로 켜듯 공격하지요
미혹하는 대표적이 것이 하나님을 위하라 하며
물질적 십일조부터 헌신 희생을 시키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고 진노 하는것이
사람이 하나님을 위한다는 것인데
마귀 먹사새끼는 하나님을 위하라 하며 자기 이득을 취하지요
미혹의 화신 개먹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