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환의 시집 『아무에게도 해독되지 않는 문장』은 두 가지 욕망에 가로놓여진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하나는 ‘지금 여기’에 살기이며 다른 하나는 ‘지금 여기’로부터의 탈주가 그것이다. 이 시집 전체를 규율하는 ‘문명비판’이라는 것도 기실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와 그 끈이 닿아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라는 세계가 가상의 것일 수밖에 없다는 자각은 너머의 세계에 대한 지향을 보여준다.
「시인의 말」은 이 시집의 속성을 규정해 놓고 있다. ‘부르고 싶은 노래는 늘 먼 데서 들려오고/아무도 제 상처를 다 울지 못하네“. ” 먼 데“서 들려오는 노래란 ’지금 여기‘에서 부를 수 없는 노래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그것은 그가 부르고 싶은 노래가 현실적 자각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는 것이 현대예술의 대표적인 미학적 방법론이라면 이환의 시도 발상의 측면에서는 유사하다. 보이지 않는 길을 찾아 더듬거리며 나가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니 세상을 다 울 수 없는 일이다. 울면서 가는 길이 그에게는 시의 길이다.
현대 미학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다양한 해석의 과정이다. 근원적 진리로의 회귀란 없으며 다양한 해석을 통해 진리에 다가갈 뿐이라는 논리가 그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아무에게도 해독되지 않는 문장이고 싶다“는 욕망은 바로 관습에 물든 세계로부터 탈주하는 한 형식이 된다. 끝내 단일한 놀리로 해석되지 않는 세계를 그림으로써 탐구의 대상으로 남고 싶다는 욕망은 예술의 한 과제에 해당할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고정된 형식이나 내용으로부터는 거리를 가지게 된다. ’한 발 다가가면 한 발 멀어지고‘ 싶은 욕망은 끝없이 해석을 요구한다. ”나는 당신의 오독이 즐겁다“는 도발적인 발언은 시적 주체의 지향을 보여준다.
이환의 시는 사물에 대한 치열한 인식의 결과물이다. 그것이 시적으로 성공하였느냐 실패하였느냐의 문제는 당연히 해석의 문제로 남게 된다. ’지금 여기‘의 문제에 대한 철학적 접근은 오늘날 우리 시에서 그리 흔치 않은 형식이다. 그러나 진정한 예술은 늘 흔치 않은 것에서 비롯된다. 어떤 부류에 소속되기보다는 스스로가 부류가 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우대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