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십대였던 시절, 종종 어머니는 밤늦은 시간까지 안방의 스탠드 불을 켜고 타자기를 치곤 했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것 같은 어머니는 낯설면서도 아름다웠다. 어머니가 없을 때, 몰래 그 글자들을 읽어본 적이 있다. 나로서는 의미를 알 수 없고 어렵게만 느껴지던 단어와 문장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머니의 표정, 타자기의 소리, 문장들… 그것들을 꽤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에는 그런 생각들을 못했지만, 어머니의 그 모든 시도가 “새끼거북처럼 등껍질 속에서” “목을 빼고” 다른 세상을 들여다 보고자 하는 무구한 열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딸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독자로서, 외부로 통하는 비상구를 찾아나서는 대신,“탈주소식을 교신하는새 떼처럼” 터널의 내부에서 환한빛을 끌어모으려 했던 어머니의 그 세계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너무 순수해서 징그럽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순간,용기,의지에 대해.
손보미 (소설가)
이 시집은 삶의 연륜에서 우려나는 묵직한 사유에 기반을 두고 자연과 삶의 이면에 깃든 이치와 신비를 찾아 음미하고 사색하는 62편의 매우 인상적인 시들로 채워져 있다. 시인은 첫 시집 이후 주로 자연을 관찰하고 거기에서 삶의 길과 이치를 탐색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이번 시집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심화되어 자연이 지닌 비의와 삶이 지닌 신비한 모습에 더욱 육박해 들어가는 보다 날카로운 시의식이 드러나고 있다. 상투적이고 상식적인 경향에서 멀리 벗어나 있는 시인의 시 세계는 때로는 주술적이고 신화적인가 하면, 때로는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면모를 띠기도 한다. 또한 어떤 때는 고고학적인 색채를 띠기도 하고 연금술적인 상상력을 보이기도 하면서 종횡무진 환상과 이미지 사이를 횡단하기도 한다. 시집 제목 『길 위에서의 질문』처럼 삶과 자연과 우주에 대한 깊은 사유와 철학적이며 종교적(특히 불교적)인 질문을 잔잔하게 던져주는 시집이다. (황치복 해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