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들키다 / 박일만
문자가 왔다, 사랑한다고
꼬리에 하트 몇 개 달고 느닷없이 왔다
누굴까, 생소한 번호
너머에서 버튼을 누른 사람은
혹여, 술청에서 잠시 손잡고 놀던 여잘까
노래방에서 낙지처럼 몸 비비던 여잔가
머릿속은 하얗고 기억은 촉수가 낮았다
허랑방탕 시절 하룻밤 풋사랑이었을 거야
애써 갈무리하는데 또 다시 왔다
죄송 …… 잘못 …… 술이 좀 ……
염병할! 지금이 어느 땐데 장난치고 지랄이야!
고목나무에 꽃 필 일 전혀 없거든!
속으로 냅다 질렀는데
갑자기 측은지심이 발동한 거라
얼마나 그리웠으면 다 늦은 시간까지 술을 퍼!
얼마나 못 견뎠으면 손가락 스텝이 엉켜!
그의 사랑이 존경 쪽으로 기우는데
만화방창, 창밖에는 봄꽃들이 향기를 뿜어대고요
죄가 있다면 꽃들이 내 전력을 들춰냈을 뿐
그는 죄가 없고
나에게 내 과거만 들킨 꼴이 되었던 거라
이 죽일 놈의 사랑본능이 죄다
꽃 때문이다, 꽃을 소환하라!
<문학과 사람, 2021. 봄호>
<박일만 시인>
·전북 장수 육십령 출생
·2005년 <현대시> 신인상 등단
·시집 『사람의 무늬』(애지), 『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서정시학),
『뼈의 속도』(실천문학) 등
☞ <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 우수 문학도서 선정
☞ <뼈의 속도> 송수권 시문학상 수상